"키워드 : 함안"
검색결과 총 12건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에 있는 공립고등학교.
함안고등학교 (咸安高等學校)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에 있는 공립고등학교.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북촌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함안초등학교 (咸安初等學校)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북촌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말이산의 구릉지대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구덩식돌방무덤·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함안 말이산 고분군 (咸安 末伊山 古墳群)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말이산의 구릉지대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구덩식돌방무덤·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함안 월촌리 야철지는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에 있는 고려시대 철 생산과 관련된 작업장이 있던 제철유적이다. 시굴 조사 결과 조사지역에서 제철 행위가 이루어졌던 유구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다량의 슬래그가 출토되어 조사지역 인근에서 철 생산과 관련된 작업장이 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조사 사례가 많지 않은 고려시대 철 생산지 자료로서 함안 지역은 물론 중세 제철 관련 연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함안 월촌리 야철지 (咸安 月村里 冶鐵址)
함안 월촌리 야철지는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에 있는 고려시대 철 생산과 관련된 작업장이 있던 제철유적이다. 시굴 조사 결과 조사지역에서 제철 행위가 이루어졌던 유구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다량의 슬래그가 출토되어 조사지역 인근에서 철 생산과 관련된 작업장이 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조사 사례가 많지 않은 고려시대 철 생산지 자료로서 함안 지역은 물론 중세 제철 관련 연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도림서원은 1672년 정구를 추모하기 위해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대산리에 건립한 서원이다. 함안군수로 재임하는 동안 지역 학풍을 크게 진작시킨 정구를 기리는 제향처로 출발하였고, 이후 3명의 향현을 추향해 향촌의 중심 기구로서 역할을 하다가 서원훼철령 때 철폐되었다. 현재 복설이 되지 못한 채 유허비만이 서 있다.
도림서원 (道林書院)
도림서원은 1672년 정구를 추모하기 위해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대산리에 건립한 서원이다. 함안군수로 재임하는 동안 지역 학풍을 크게 진작시킨 정구를 기리는 제향처로 출발하였고, 이후 3명의 향현을 추향해 향촌의 중심 기구로서 역할을 하다가 서원훼철령 때 철폐되었다. 현재 복설이 되지 못한 채 유허비만이 서 있다.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석교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불상.
영주 석교리 석조 여래 입상 (榮州 石橋里 石造 如來 立像)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석교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불상.
이방실장군묘(李芳實將軍墓)는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에 있는 고려 후기 무신 이방실의 무덤이다. 이방실은 고려 후기 2차에 걸친 홍건적의 침입을 격퇴한 공로로 중서시랑평장사에 올랐으나, 이른바 ‘삼원수(三元帥) 살해 사건’ 당시 죽임을 당하고 이곳에 안장되었다. 묘역은 후대에 정비되어 본래의 모습은 남아 있지 않으나 고려 후기 무신 이방실의 생애와 업적을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이방실 장군 묘 (李芳實 將軍 墓)
이방실장군묘(李芳實將軍墓)는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에 있는 고려 후기 무신 이방실의 무덤이다. 이방실은 고려 후기 2차에 걸친 홍건적의 침입을 격퇴한 공로로 중서시랑평장사에 올랐으나, 이른바 ‘삼원수(三元帥) 살해 사건’ 당시 죽임을 당하고 이곳에 안장되었다. 묘역은 후대에 정비되어 본래의 모습은 남아 있지 않으나 고려 후기 무신 이방실의 생애와 업적을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생존한 문인, 문태관의 시·서(書)·기문·제문 등을 수록한 시문집.
중산문집 (重山文集)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생존한 문인, 문태관의 시·서(書)·기문·제문 등을 수록한 시문집.
박상엽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0일 함안군 군북 장날에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하였다. 군북 장터에 모인 3,000여 명이 합세해 출동한 일본군과 대치하고 투석전을 벌이면서 주재소를 파괴하던 중 일본 군경의 무차별 발포가 이어졌다. 선두에 서서 격렬한 만세시위를 전개하던 박상엽은 일본 군경의 흉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박상엽 (朴尙燁)
박상엽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0일 함안군 군북 장날에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하였다. 군북 장터에 모인 3,000여 명이 합세해 출동한 일본군과 대치하고 투석전을 벌이면서 주재소를 파괴하던 중 일본 군경의 무차별 발포가 이어졌다. 선두에 서서 격렬한 만세시위를 전개하던 박상엽은 일본 군경의 흉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박원개는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0일 군북시장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군북 장터에 모여 만세시위를 전개하고 군북 경찰주재소를 파괴하는 등 격렬히 대항하다 일제 군경의 총격을 받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박원개 (朴元介)
박원개는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0일 군북시장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군북 장터에 모여 만세시위를 전개하고 군북 경찰주재소를 파괴하는 등 격렬히 대항하다 일제 군경의 총격을 받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서한종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읍에서 일어난 3 · 1 만세시위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9일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읍 함안시장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대는 함안읍에 모여 독립만세를 외치며 함안경찰서와 주재소로 행진하였고, 함안군청 · 등기소 · 우편국 등을 습격하였으며, 일본 수비대의 무력 진압에 극력 저항하였다. 시위 참여 인사 색출 과정에서 체포되어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순국하였다.
서한종 (徐漢鍾)
서한종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읍에서 일어난 3 · 1 만세시위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9일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읍 함안시장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대는 함안읍에 모여 독립만세를 외치며 함안경찰서와 주재소로 행진하였고, 함안군청 · 등기소 · 우편국 등을 습격하였으며, 일본 수비대의 무력 진압에 극력 저항하였다. 시위 참여 인사 색출 과정에서 체포되어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순국하였다.
이원필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3 · 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0일 함안군 군북면 군북시장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3 · 1운동 소식을 접하고 군북에서도 만세시위를 벌일 것을 계획 · 준비하였다. 3월 20일 군북시장에 모인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눠주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대의 선두에서 시장을 행진하다 일제 헌병과 투석전을 벌였고, 총격을 받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이원필 (李元弼)
이원필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3 · 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0일 함안군 군북면 군북시장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3 · 1운동 소식을 접하고 군북에서도 만세시위를 벌일 것을 계획 · 준비하였다. 3월 20일 군북시장에 모인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눠주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대의 선두에서 시장을 행진하다 일제 헌병과 투석전을 벌였고, 총격을 받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