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호수돈여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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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중구 선화동에 있는 사립여자고등학교.
호수돈여자고등학교 (好壽敦女子高等學校)
대전광역시 중구 선화동에 있는 사립여자고등학교.
일제강점기 양성학교 교사, 기전여학교 교사 등을 역임한 교육자. 개신교인, 여성운동가.
방애인 (方愛人)
일제강점기 양성학교 교사, 기전여학교 교사 등을 역임한 교육자. 개신교인, 여성운동가.
신관빈은 1919년 경기도 개성군에서 3·1운동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감리교 전도사로 활동하였으며, 1919년 2월 28일 개성에 도착한 독립선언서를 3월 1일에 전도사 어윤희와 함께 개성군 송도면 만월정·북본정·동본정 일대에서 배포하였다. 1919년 4월 1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으며,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신관빈 (申寬彬)
신관빈은 1919년 경기도 개성군에서 3·1운동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감리교 전도사로 활동하였으며, 1919년 2월 28일 개성에 도착한 독립선언서를 3월 1일에 전도사 어윤희와 함께 개성군 송도면 만월정·북본정·동본정 일대에서 배포하였다. 1919년 4월 1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으며,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심영식은 일제강점기에 경기도 개성군의 3·1운동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호수돈여학교 기예과를 졸업하였으며, 1919년 3월 3일에 호수돈여학교 학생들이 주도한 개성 최초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3월 4일에는 송도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촉발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검거되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심영식 (沈永植)
심영식은 일제강점기에 경기도 개성군의 3·1운동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호수돈여학교 기예과를 졸업하였으며, 1919년 3월 3일에 호수돈여학교 학생들이 주도한 개성 최초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3월 4일에는 송도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촉발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검거되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조화벽은 일제강점기 개성 호수돈여학교와 강원도 양양군 양양면에서 3·1운동을 주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호수돈여학교 학생을 중심으로 전개된 1919년 3월 3일 개성 만세시위를 주도하였고, 이어 독립선언서를 고향인 양양군 양양면에 전달하여 4월 4일 남문리 장터 만세시위의 도화선 역할을 하였다. 이후 영명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하며 유관순의 두 동생을 돌보았으며, 1923년 유관순의 오빠 유우석과 결혼하였다. 1932년 고향으로 돌아가 정명학원을 설립하고 남편의 독립운동을 후원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조화벽 (趙和璧)
조화벽은 일제강점기 개성 호수돈여학교와 강원도 양양군 양양면에서 3·1운동을 주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호수돈여학교 학생을 중심으로 전개된 1919년 3월 3일 개성 만세시위를 주도하였고, 이어 독립선언서를 고향인 양양군 양양면에 전달하여 4월 4일 남문리 장터 만세시위의 도화선 역할을 하였다. 이후 영명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하며 유관순의 두 동생을 돌보았으며, 1923년 유관순의 오빠 유우석과 결혼하였다. 1932년 고향으로 돌아가 정명학원을 설립하고 남편의 독립운동을 후원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나은주는 일제강점기 개성 호수돈여학교와 황해도 금천군 백마면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개성 호수돈여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3일 교내에서 학생들과 함께 독립가와 찬송가를 부르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어 4월 2일과 3일에는 황해도 금천군 백마면에서 수백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고 구금자 석방을 위해 활동하였다. 이후 일본 헌병들의 주도자 검거 과정에서 체포되어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나은주 (羅恩周)
나은주는 일제강점기 개성 호수돈여학교와 황해도 금천군 백마면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개성 호수돈여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3일 교내에서 학생들과 함께 독립가와 찬송가를 부르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어 4월 2일과 3일에는 황해도 금천군 백마면에서 수백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고 구금자 석방을 위해 활동하였다. 이후 일본 헌병들의 주도자 검거 과정에서 체포되어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