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인(京主人)
이에 대해 정약용(丁若鏞)은 영주인(營主人)과 함께 경주인을 나라 안의 큰 폐단으로 규정하고 이와 함께 경주인역가 폐지를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이 논하였다. 즉, “저리(邸吏)의 폐단은 향리보다 심하다. 내가 어릴 적에 경주인이라는 자를 보았는데, 모두 노예나 하천(下賤)으로서 무뢰하고 비천한 자였다. 그런데 수십 년 이래로 이 기풍이 크게 무너져, 경주인 자리를 매매하는 값이 혹 8,000냥이나 되며 영주인의 자리는 1만냥에 이르기도 한다. 대개 그 역가가 날로 증가되어 전보다 100배나 되었는데, 이것은 이익이 100배요, 백성을 벗겨낸 물건이 100배임을 알 수 있다. 이리하여 경저와 영저는 모두 포악하고 간사한 자가 차지하고, 기름진 관청의 아전과 권세 있는 가문의 청지기로서, 비단옷에 얼굴이 깎은 옥 같은 자가 곧 저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