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흑산도는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에 속하는 섬이다. 우리나라 최서남단에 위치한 흑산면의 주섬이면서 어업전진기다. 대흑산도 주변은 홍도, 가거도, 대둔도, 다물도, 영산도와 같은 크고 작은 100여 개가 흑산군도를 이루며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이다. 홍도 등 많은 관광객이 찾는 섬으로 여기서 잡히는 홍어는 유명한 특산물로 잘 알려져 있고 가요 「흑산도아가씨」로 유명하다. 산과 바다가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인다 하여 흑산도(黑山島)라 부르고 대흑산도를 흑산도라 한다. 흑산도항 주변의 마을 지붕은 온통 파랑색으로 칠해 바다색을 상징하고 있다.
송나라 사신 서긍이 기록한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서 흑산도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기록에 보면 흑산은 백산( 홍도로 추정) 동남쪽에 있어 바라보일 정도로 가깝다고 되어 있다. 산이 역광일 때는 그늘져 검게 보여 흑산이라 불렸던 것일 수도 있다. 큰 산이라는 뜻의 순우리말 ‘걺미’ 혹은 ‘검뫼’를 한자로 흑산(黑山)이라 표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일설에는 주변의 암석이 어두운 주2 주3이 많은 산과 바다가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인다 하여 흑산도(黑山島)라 부른다. 대흑산도는 원 흑산도를 중심지로 부르는 말이고, 소흑산도는 가거도를 말한다.
동경 125°26′, 북위 34°41′에 위치하며 대흑산도를 주도로 하여 홍도(紅島) · 대둔도(大芚島) · 영산도(永山島) · 다물도(多物島) 등이 흑산군도를 이룬다. 흑산도는 섬 전체가 산지를 이루고 있어 서쪽에 깃대봉(378m), 북쪽에 상라봉(象羅峰, 227m), 남쪽에 선유봉(仙遊峰, 300m)을 비롯하여 대모산, 칠락산(七樂山, 272m), 반달봉, 문암산(問岩山, 400m), 옥녀봉(玉女峰, 274.5m) 등 해발고도가 높은 큰 산들이 동북-서남 방향과 북서-남동 방향으로 산열을 이루고 있다. 대흑산도는 선캄브리안기의 편암류로 이루어져 있으며 흑운모 편마암 및 화강암이 부분적으로 분포하고 있고 주4 변성퇴적암과 화산암류도 분포하고 있다. 이러한 암석은 홍도와 달리 어둡게 보인다는 점에서 흑산과 관련이 있다. 섬의 윤곽은 대체로 북동-남서 방향의 직사각형이고 북쪽은 곶과 만으로 그리고 영산도로 둘러싸여 남쪽의 강한 바람과 주5을 주17 수 있는 천혜의 피항지로 항구와 양식에 적합하다. 산이 대체로 높고 경사가 가파른 암석해안이 많아 일주도로가 없다. 지난 10년간 흑산도 지역의 연평균기온은 13.3℃이고, 연평균 강수량은 1,100mm이다.
진리 지석묘군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사람이 입도한 것은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 장보고 시대를 거쳐 고려시대 1018년(현종 9)에 지역의 명칭을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흑산현이 되었다. 그 후 왜구의 침탈로 1363년(공민왕 12)에는 섬 주민을 영산강 하류 남포( 영산포)로 집단이주 시켜 공도(空島)가 되었다. 임진왜란 후 다시 주민들의 정착하기 시작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군사적 요충지로 인식되어 1682년(숙종 8)에 흑산진이 설치되었다가, 1888년 흑산진으로 승격하여 주7를 두고 서해진(西海鎭)을 감시하였다. 하지만 1896년(고종 건양 1)에 흑산진이 폐지되고 흑산군이 설치되었다. 군 1향교 원칙에 따라 흑산향교가 건립되었다.
1791년(정조 5)에는 대둔도 수리 출신 김이수가 격쟁(擊錚) 원정(原情)으로 닥나무 세금의 감면을 받았던 섬이고, 1801년(순조 1)에는 신유사화로 귀양 온 정약용의 형 정약전이 흑산도에 1816년까지 유배를 하였다. 그는 최근 영화 「자산어보」로도 유명한 저서 『자산어보(慈山魚譜)』를 1814년에 남겨 흑산도 일대 해산물 및 어류 연구의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이를 기념하는 흑산도 자산문화관이 세워졌다. 또한 1876년(고종 13)에는 주8을 반대한 면암 최익현이 유배를 와 그 유허비가 있기도 하다.
나주목에 편입되어 흑산도라 칭하고 1896년에 지도군에 편입되었다가 일제강점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무안군 흑산면에 편입되었다. 이후 1969년 무안군에서 신안군의 분군으로 신안군에 편입되었다.
대흑산도의 면적은 21.7㎢이며 이 중 전은 각각 1.51㎢이고 답은 0.03㎢가 있다. 해안선 연장은 59.2㎞으로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 속한다.
총 가구수는 1221호(진리 391호, 예리 548호, 비리 148호, 심리 59호, 사리 75호)이며, 총 인구는 2057명(남 2057명, 여 1140명)으로 남초현상이 심하다. 이를 리별로 보면 진리가 615명(남 350명, 여 265명) 예리는 950명(남 544명, 여 406명)이고 비리는 270명(남136명, 여 134명), 심리는 95명(남 48명, 여 47명), 사리는 127명(남 62명, 여 65명)으로 항구가 중심지인 예리와 진리의 남초현상이 심하다.
1면 5개의 법정리와 자연마을 11개로 이루어진 흑산면의 중심 섬이다. 흑산항에서 목포연안여객터미널까지 99.5㎞로 왕래하고 있다. 공공기관으로는 파출소, 해경파출소, 우체국, 소방파출소, 흑산도기상대, 신안수협 흑산지점, 도초농협 흑산지점, 목포지방해양수산청 흑산출장소, 흑산발전소, KT흑산중계소, 다도해 해상 서부국립공원 흑산도분소 등이 밀집해 있어 흑산면의 최대 섬이다. 교육시설로는 유치원과 흑산초등학교, 흑산중학교가 있고, 도서관은 박유천도서관을 비롯 3곳이며, 박득순미술관이 있다. 의료시설은 보건지소 2개소 이외 의원 1곳, 약국 1곳이 있으며 내연발전으로 전기가 인입되며 지방상수도가 설치되어 있다. 저수지 3곳은 모두 식수 취수원으로 주로 이용되고, 하수종말처리장 4곳과 공원 1곳이 있다.
동력어선은 많은 356척으로 홍어를 비롯한 어업 활동이 활발한 곳이다. 승용차와 화물차는 각각 351대, 191대와 농어촌버스와 택시가 각각 3대, 6대씩 있어 흑산면에서 가장 보유량이 많다. 서비스 시설로는 대형마트 1곳, 일반음식점 49곳, 휴게음식점 7곳, 노래방 1곳, 유흥음식점 6곳이 있다. 세탁소 2곳, 이미용소가 5곳, 호텔과 리조트 각각 1곳씩, 모델 및 여관은 10곳이고 민박 34곳과 당구장 6곳도 있다. 국가어항이 1곳, 지방어항 2곳, 주9 1곳, 어촌정주항이 6곳이며 주10과 주11 각각 5곳과 연안여객터미널이 있다. 방파제 시설은 8군데이다. 종교시설은 교회 6곳, 성당 1곳, 사찰 1곳이 있고, 마을회관 2개소와 경로당 8개소가 있다. 그 외, 예리선착장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1.5km 지점을 가면 철새 표본을 전시한 철새전시관과 예리항 부근에 국립공원연구원 조류연구센터가 홍도에서 이전해 신축했다.
유적지로는 대흑산도의 진리 2구에는 반월성(半月城)이 있는데, 성(城)의 생김새가 반월 모양을 하고 있다. 이것은 길이 2,300m, 높이 0.5∼2m로, 신라시대 장보고가 왜구들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쌓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진리 너머에 상라산성이 남아 있다. 흑산도의 둘레길은 여객터미널 근처 10분 거리에 야외 고래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방파제를 통해 흑산도항등대와 내영산도 석주대문을 갈 수 있는 길이 있고, 흑산도항 주변을 걸을 수 있는 해안누리길인 진리해안길과 상라봉 굽이길을 따라 흑산도아가씨 노래비와 전망대를 함께 볼 수 있는 길이 있다.
대흑산도의 주요 상록활엽수림은 구실잣밤나무 군락, 후박나무 군락, 붉가시나무 군락, 동백나무 군락 등이 있다. ‘신안 흑산 홍어잡이 어업’이 제11호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홍어잡이 어업’은 흑산도 일대 주12 어장에서 행해지는 전통 주13이다. 긴 낚싯줄에 여러 개의 낚싯바늘을 달아 홍어를 잡는 주14)로 미끼를 끼우지 않고 미늘이 없는 낚싯바늘(걸낙)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흑산도 예리에는 2015년 12월 울릉공항과 함께 건설계획이 발표된 소형 공항이 2027년 개항을 목표로 건립 중이다. 흑산공항은 활주로 길이 1,200m, 폭 35m 규모로 소형 항공기가 취항할 수 있는 소규모 공항이다. 공항이 완공되면 서울에서 흑산도까지 8시간 이상 걸리던 것이 1시간 내외로 단축될 수 있어 수도권 관광객 유치와 섬 내의 응급환자 수송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의 경관 훼손과 많은 철새들과 희귀식물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논란도 있다. 연륙된 신안 압해도의 송공항에서 주15(3시간30분)이 하루 2차례 왕복 운항하고, 목포연안여객터미널에서 주16이 하루 4~5차례 운항(2시간)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