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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은 조선후기 『경세유표』, 『흠흠신서』, 『목민심서』 등을 저술한 유학자이자 실학자이다. 1762년(영조 38)에 태어나 1836년(헌종 2)에 사망했다. 남인 가문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성호 이익의 학문을 접하면서 개혁사상의 세례를 받았다. 정조 재위기에는 관료로 봉사하면서 과학자로서의 면모도 보였다. 이 시기에 천주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장기간의 유배생활을 했다. 유배 중에 당시 사회의 피폐상을 직접 확인하면서 그에 대한 개혁안을 정리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사상을 포괄하는 거대한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정약용 (丁若鏞)
정약용은 조선후기 『경세유표』, 『흠흠신서』, 『목민심서』 등을 저술한 유학자이자 실학자이다. 1762년(영조 38)에 태어나 1836년(헌종 2)에 사망했다. 남인 가문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성호 이익의 학문을 접하면서 개혁사상의 세례를 받았다. 정조 재위기에는 관료로 봉사하면서 과학자로서의 면모도 보였다. 이 시기에 천주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장기간의 유배생활을 했다. 유배 중에 당시 사회의 피폐상을 직접 확인하면서 그에 대한 개혁안을 정리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사상을 포괄하는 거대한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속담은 예부터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짧은 문장의 비유적인 말로, 경험을 통해 얻게 된 삶의 지혜와 교훈, 경계해야 할 일 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말이다. 이와 같은 내용의 말은 대체로 특정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의 특별한 문화적, 사회적 관념과 태도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속담은 구술 전승되면서 어느 정도 굳어진 일종의 관용적 어구라고 할 수 있는데 관용어구에는 속담 이외에도 격언이나 잠언 류의 말, 수수께끼, 속신(俗信)과 금기(禁忌)에 관한 말 등이 있다.
속담 (俗談)
속담은 예부터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짧은 문장의 비유적인 말로, 경험을 통해 얻게 된 삶의 지혜와 교훈, 경계해야 할 일 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말이다. 이와 같은 내용의 말은 대체로 특정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의 특별한 문화적, 사회적 관념과 태도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속담은 구술 전승되면서 어느 정도 굳어진 일종의 관용적 어구라고 할 수 있는데 관용어구에는 속담 이외에도 격언이나 잠언 류의 말, 수수께끼, 속신(俗信)과 금기(禁忌)에 관한 말 등이 있다.
일제강점기는 우리나라가 일본제국주의에 의하여 식민통치를 당한 35년간(1910∼1945)의 시대이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정책은 사회·경제적 수탈에 그치지 않고 민족의 말살까지 목표로 했다는 점에서 가장 폭압적이고 무단적이었으며 악랄한 것이었다. 일제는 역사왜곡을 통한 정신문화의 개조, 한국어 사용 억제, 민족문화유산 파괴를 서슴지 않았다. 이에 맞선 항일독립투쟁은 전세계 약소민족의 모범이 될 정도로 완강하고 줄기차게 전개되어 광복을 이루어냈다. 일제강점이 우리 역사에 끼친 해독은 참으로 심대한 것이어서 남북분단까지 초래했다.
일제강점기 (日帝强占期)
일제강점기는 우리나라가 일본제국주의에 의하여 식민통치를 당한 35년간(1910∼1945)의 시대이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정책은 사회·경제적 수탈에 그치지 않고 민족의 말살까지 목표로 했다는 점에서 가장 폭압적이고 무단적이었으며 악랄한 것이었다. 일제는 역사왜곡을 통한 정신문화의 개조, 한국어 사용 억제, 민족문화유산 파괴를 서슴지 않았다. 이에 맞선 항일독립투쟁은 전세계 약소민족의 모범이 될 정도로 완강하고 줄기차게 전개되어 광복을 이루어냈다. 일제강점이 우리 역사에 끼친 해독은 참으로 심대한 것이어서 남북분단까지 초래했다.
유관순은 일제강점기 아우내 3·1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02년에 태어나 1920년에 사망했다.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나 1916년 선교사의 추천으로 이화학당에 편입했다. 3·1만세운동에 참여하여 붙잡혔으나 곧 석방되었다. 전국적으로 휴교령이 내리자 고향으로 돌아와 서울 소식을 전한 후 4월 1일 병천시장에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다. 검거되어 투옥 중에도 옥중만세운동을 벌였고, 오랫동안 계속된 고문과 영양실조로 18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유관순 (柳寬順)
유관순은 일제강점기 아우내 3·1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02년에 태어나 1920년에 사망했다.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나 1916년 선교사의 추천으로 이화학당에 편입했다. 3·1만세운동에 참여하여 붙잡혔으나 곧 석방되었다. 전국적으로 휴교령이 내리자 고향으로 돌아와 서울 소식을 전한 후 4월 1일 병천시장에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다. 검거되어 투옥 중에도 옥중만세운동을 벌였고, 오랫동안 계속된 고문과 영양실조로 18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반야심경』에 나오는 명구로서 물질적인 세계와 평등 무차별한 공의 세계가 서로 다르지 않음을 주장하는 불교교리이다. 원문은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다.”로 번역된다. 신라의 원측(圓測)은 이에 대하여, 색은 본래 없는 것을 망념으로 그려낸 것이기 때문에 공하고, 색은 인연 따라 존재하고 멸하는 가유(假有)의 색이기 때문에 공할 수밖에 없으며, 색이란 일어남도 일어나지 않음도 없는 공의 본질이기 때문에 역시 공하다고 변론하였다. 이 명구는 분별과 집착을 떠나 곧바로 그 실체를 꿰뚫어 보라는 데 그 취지가 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色卽是空 空卽是色)
『반야심경』에 나오는 명구로서 물질적인 세계와 평등 무차별한 공의 세계가 서로 다르지 않음을 주장하는 불교교리이다. 원문은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다.”로 번역된다. 신라의 원측(圓測)은 이에 대하여, 색은 본래 없는 것을 망념으로 그려낸 것이기 때문에 공하고, 색은 인연 따라 존재하고 멸하는 가유(假有)의 색이기 때문에 공할 수밖에 없으며, 색이란 일어남도 일어나지 않음도 없는 공의 본질이기 때문에 역시 공하다고 변론하였다. 이 명구는 분별과 집착을 떠나 곧바로 그 실체를 꿰뚫어 보라는 데 그 취지가 있다.
정조는 조선후기 제22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776~1800년이며, 영조의 둘째아들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둘째아들이다. 탁월한 학문적 능력을 바탕으로 임금이자 스승임을 자부하며 당파적 분쟁을 뛰어넘어 개혁과 통합을 이루어냈다. 규장각을 정권의 핵심기구로 삼고 실학파와 북학파 등 제학파의 장점을 수용하여 문화정치를 완성해갔으며, 문물제도의 정비사업 완결, 사고전서 수입과 각종 서적 편찬, 친위군인 장용영 설치, 신도시 수원 화성 건설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강한 왕권으로 왕도정치의 모범을 보이며 조선후기 문화부흥을 이루었다.
정조 (正祖)
정조는 조선후기 제22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776~1800년이며, 영조의 둘째아들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둘째아들이다. 탁월한 학문적 능력을 바탕으로 임금이자 스승임을 자부하며 당파적 분쟁을 뛰어넘어 개혁과 통합을 이루어냈다. 규장각을 정권의 핵심기구로 삼고 실학파와 북학파 등 제학파의 장점을 수용하여 문화정치를 완성해갔으며, 문물제도의 정비사업 완결, 사고전서 수입과 각종 서적 편찬, 친위군인 장용영 설치, 신도시 수원 화성 건설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강한 왕권으로 왕도정치의 모범을 보이며 조선후기 문화부흥을 이루었다.
신사임당은 조선전기 「자리도」·「초충도」·「노안도」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이다. 1504년(연산군 10)에 태어나 1551년(명종 6)에 사망했다. 이이의 어머니로서 시·그림·글씨에 능한 예술가였다. 그의 어머니는 친정의 아들잡이로서 친정에 살면서 비교적 자유롭게 자녀교육을 할 수 있었고, 신사임당도 남편의 외조 속에 천부적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다. 생동하는 듯한 섬세한 사실화, 고상한 정신·기백을 드러내는 글씨는 모두가 탐낼 정도로 뛰어났다고 한다. 유교적 여성상에 만족하지 않고 독립된 인간으로서의 삶을 개척한 여성이다.
신사임당 (申師任堂)
신사임당은 조선전기 「자리도」·「초충도」·「노안도」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이다. 1504년(연산군 10)에 태어나 1551년(명종 6)에 사망했다. 이이의 어머니로서 시·그림·글씨에 능한 예술가였다. 그의 어머니는 친정의 아들잡이로서 친정에 살면서 비교적 자유롭게 자녀교육을 할 수 있었고, 신사임당도 남편의 외조 속에 천부적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다. 생동하는 듯한 섬세한 사실화, 고상한 정신·기백을 드러내는 글씨는 모두가 탐낼 정도로 뛰어났다고 한다. 유교적 여성상에 만족하지 않고 독립된 인간으로서의 삶을 개척한 여성이다.
3·1운동은 1919년 3월 1일을 기해 일어난 거족적인 독립만세운동이다. 전국적인 범위에서 각계각층을 망라하여 전개된 3·1운동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켜 한국민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였고, 중국 상하이에서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 이민족에 대한 끈질기고 강렬한 독립투쟁정신을 고취하였을 뿐 아니라, 일제의 무단통치방법을 이른바 문화통치로 바꾸게 하였다. 나아가 민족의식과 민족정신에 새로운 자각과 힘을 주어 교육의 진흥, 신문예운동·산업운동이 활성화하고 민족 자립의 기초를 다지게 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하였다.
3·1운동 (三一運動)
3·1운동은 1919년 3월 1일을 기해 일어난 거족적인 독립만세운동이다. 전국적인 범위에서 각계각층을 망라하여 전개된 3·1운동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켜 한국민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였고, 중국 상하이에서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 이민족에 대한 끈질기고 강렬한 독립투쟁정신을 고취하였을 뿐 아니라, 일제의 무단통치방법을 이른바 문화통치로 바꾸게 하였다. 나아가 민족의식과 민족정신에 새로운 자각과 힘을 주어 교육의 진흥, 신문예운동·산업운동이 활성화하고 민족 자립의 기초를 다지게 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하였다.
한문은 한자로 이루어진 문어체의 문장이다. 중국에서는 ‘한나라의 문장’ 또는 한시에 대응하는 산문으로서의 한문이란 뜻으로 쓰여 왔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변국들은 한자어로 된 문장을 모두 한문이라 불러왔다. 한문은 남북조시대 양나라의 소통이 『문선』에서 38종으로 분류하여 체계화를 시도했고, 이 책은 우리나라에도 전해졌다. 한국에서는 비문이나 행정·외교문서 등에서 실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후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어 사용되었다. 최치원이 『계원필경』에서 체계화작업을 시도한 이후 조선시대 왕명으로 서거정 등이 편찬한 『동문선』에서는 55갈래로 정리되었다.
한문 (漢文)
한문은 한자로 이루어진 문어체의 문장이다. 중국에서는 ‘한나라의 문장’ 또는 한시에 대응하는 산문으로서의 한문이란 뜻으로 쓰여 왔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변국들은 한자어로 된 문장을 모두 한문이라 불러왔다. 한문은 남북조시대 양나라의 소통이 『문선』에서 38종으로 분류하여 체계화를 시도했고, 이 책은 우리나라에도 전해졌다. 한국에서는 비문이나 행정·외교문서 등에서 실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후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어 사용되었다. 최치원이 『계원필경』에서 체계화작업을 시도한 이후 조선시대 왕명으로 서거정 등이 편찬한 『동문선』에서는 55갈래로 정리되었다.
절기는 태양년을 태양의 황경에 따라 24등분한 기후의 표준점이다. 시령·절후라고도 한다. 황경이란 태양이 춘분에 지나는 점을 기점으로 하여 황도에 따라 움직인 각도를 말하며, 황경이 0°일 때를 춘분으로 하여 매 15°마다 새로운 절기로 구분한다. 계절을 세분하여 대략 15일 간격으로 나타낸 달력이라 할 수 있다. 24절기는 다시 홀수 번째 절기를 절로, 짝수 번째 절기를 중으로 구분한다. 중이 되는 절기는 음력 열두 달의 이름을 정하는 절기인데 음력의 달에서 24절기의 중기가 빠진 달이 생기면 이 달을 윤달로 쳐서 양력과 음력의 차이를 보완한다.
절기 (節氣)
절기는 태양년을 태양의 황경에 따라 24등분한 기후의 표준점이다. 시령·절후라고도 한다. 황경이란 태양이 춘분에 지나는 점을 기점으로 하여 황도에 따라 움직인 각도를 말하며, 황경이 0°일 때를 춘분으로 하여 매 15°마다 새로운 절기로 구분한다. 계절을 세분하여 대략 15일 간격으로 나타낸 달력이라 할 수 있다. 24절기는 다시 홀수 번째 절기를 절로, 짝수 번째 절기를 중으로 구분한다. 중이 되는 절기는 음력 열두 달의 이름을 정하는 절기인데 음력의 달에서 24절기의 중기가 빠진 달이 생기면 이 달을 윤달로 쳐서 양력과 음력의 차이를 보완한다.
영조는 조선후기 제2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724~1776년으로 조선 역대 왕 중 가장 오랫동안 왕위에 있었다. 즉위 과정과 즉위 후에 왕위 자체를 부정당하는 당쟁의 폐해를 몸소 체험하고 이를 타파하기 위해 탕평책을 적극 구사하여 국정 안정을 도모했다. 나아가 균역법실시 등 국정운영을 위한 제도 개편과 문물 정비 등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조선 후기 사회경제적 변화에 대응하여 민생안정을 통해 민심을 추스르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사후 묘호는 영종이었으나 고종 때 영조로 고쳐 올렸다. 능호는 구리시에 있는 원릉이다.
영조 (英祖)
영조는 조선후기 제2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724~1776년으로 조선 역대 왕 중 가장 오랫동안 왕위에 있었다. 즉위 과정과 즉위 후에 왕위 자체를 부정당하는 당쟁의 폐해를 몸소 체험하고 이를 타파하기 위해 탕평책을 적극 구사하여 국정 안정을 도모했다. 나아가 균역법실시 등 국정운영을 위한 제도 개편과 문물 정비 등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조선 후기 사회경제적 변화에 대응하여 민생안정을 통해 민심을 추스르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사후 묘호는 영종이었으나 고종 때 영조로 고쳐 올렸다. 능호는 구리시에 있는 원릉이다.
성씨는 출생의 혈통을 나타내거나 한 혈통을 잇는 겨레붙이를 가리키는 가족용어이다. 한 사람의 혈연관계를 분류하는 기준이 되며, 이름과 결합하여 사회성원으로서의 개인을 남과 구별하는 구실을 한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중국식 성씨제도를 수용하기 시작하여 고려시대에 정착했다. 성은 동일하지만 본관을 달리하는 성씨는 계속 증가하고 있어서, 1985년 기준으로 보면 257개 성에 본관은 3,435개인 상황이다. 나라별로도 형식이 매우 다른 성씨와 가족제도는 사회조직의 기조를 이루어 사상·문화·도덕·관습·법제의 근본이 되는 중요 요소이다.
성씨 (姓氏)
성씨는 출생의 혈통을 나타내거나 한 혈통을 잇는 겨레붙이를 가리키는 가족용어이다. 한 사람의 혈연관계를 분류하는 기준이 되며, 이름과 결합하여 사회성원으로서의 개인을 남과 구별하는 구실을 한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중국식 성씨제도를 수용하기 시작하여 고려시대에 정착했다. 성은 동일하지만 본관을 달리하는 성씨는 계속 증가하고 있어서, 1985년 기준으로 보면 257개 성에 본관은 3,435개인 상황이다. 나라별로도 형식이 매우 다른 성씨와 가족제도는 사회조직의 기조를 이루어 사상·문화·도덕·관습·법제의 근본이 되는 중요 요소이다.
시조는 고려후기에서 조선전기에 걸쳐 정제된 우리나라 고유의 정형시이다. 3장 45자 내외로 구성되며, 유학자들의 정신과 정서를 표출하기에 적합한 형식이었다. 보통 장구장단이나 무릎장단에 맞추어 시조창으로 노래하는데, 조선후기에는 관현악 반주를 동반하고 전문가객이 노래를 전담하는 가곡창으로 발전했다. 김천택이 당시까지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시조들을 수집하여 『청구영언』을 편찬한 이래 가집과 시조집이 속속 편찬되었다. 20세기에 들어 노래를 하지 않게 되어 음악적 특성은 사라졌지만 문학 갈래로서의 특성은 현대시조로 이어지고 있다.
시조 (時調)
시조는 고려후기에서 조선전기에 걸쳐 정제된 우리나라 고유의 정형시이다. 3장 45자 내외로 구성되며, 유학자들의 정신과 정서를 표출하기에 적합한 형식이었다. 보통 장구장단이나 무릎장단에 맞추어 시조창으로 노래하는데, 조선후기에는 관현악 반주를 동반하고 전문가객이 노래를 전담하는 가곡창으로 발전했다. 김천택이 당시까지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시조들을 수집하여 『청구영언』을 편찬한 이래 가집과 시조집이 속속 편찬되었다. 20세기에 들어 노래를 하지 않게 되어 음악적 특성은 사라졌지만 문학 갈래로서의 특성은 현대시조로 이어지고 있다.
김구는 일제강점기 안명근사건, 안중근 하얼빈 의거, 모스크바3상회의 등과 관련된 독립운동가이다. 1876년(고종 13)에 태어나 1949년에 사망했다. 젊은 시절 항일 투쟁 중에 두 차례 투옥, 동학 입교, 출가, 기독교 입교 등 분주하게 살았다. 3·1운동 직후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경무국장·내무총장·국무령을 역임했고, 1931년 한인애국단을 조직하여 이봉창과 윤봉길의 의거를 주도하고 항일무력투쟁을 전개했다. 임시정부 주석으로 재임하다 환국한 후 민족통일정부 수립에 전심하다가 1949년 육군 소위 안두희에게 암살당했다.
김구 (金九)
김구는 일제강점기 안명근사건, 안중근 하얼빈 의거, 모스크바3상회의 등과 관련된 독립운동가이다. 1876년(고종 13)에 태어나 1949년에 사망했다. 젊은 시절 항일 투쟁 중에 두 차례 투옥, 동학 입교, 출가, 기독교 입교 등 분주하게 살았다. 3·1운동 직후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경무국장·내무총장·국무령을 역임했고, 1931년 한인애국단을 조직하여 이봉창과 윤봉길의 의거를 주도하고 항일무력투쟁을 전개했다. 임시정부 주석으로 재임하다 환국한 후 민족통일정부 수립에 전심하다가 1949년 육군 소위 안두희에게 암살당했다.
광해군은 조선의 제15대 국왕으로 15년간(1608~1623) 재위하였으나, 정변을 맞아 폐위당한 인물이다. 부왕 선조의 핍박과 명나라의 세자 책봉 거부 등 숱한 난관을 뚫고 즉위하였다. 하지만 정적을 제거하는 데 집착하면서 주로 대북 계열을 중용하였으며, 인목대비를 유폐하는 무리수까지 두었다. 마침 명과 후금이 전쟁을 벌이자, 명과는 사대관계를 유지하되 후금과도 우호관계를 맺으려 하였다. 하지만 숭명배금 노선을 절대시한 신료들의 거센 반대가 장기화하면서 국가 행정이 사실상 마비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인조반정으로 폐위당했다.
광해군 (光海君)
광해군은 조선의 제15대 국왕으로 15년간(1608~1623) 재위하였으나, 정변을 맞아 폐위당한 인물이다. 부왕 선조의 핍박과 명나라의 세자 책봉 거부 등 숱한 난관을 뚫고 즉위하였다. 하지만 정적을 제거하는 데 집착하면서 주로 대북 계열을 중용하였으며, 인목대비를 유폐하는 무리수까지 두었다. 마침 명과 후금이 전쟁을 벌이자, 명과는 사대관계를 유지하되 후금과도 우호관계를 맺으려 하였다. 하지만 숭명배금 노선을 절대시한 신료들의 거센 반대가 장기화하면서 국가 행정이 사실상 마비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인조반정으로 폐위당했다.
세종은 조선의 제4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418~1450년이며, 1418년 6월에 왕세자에 책봉되었다가 8월에 태종의 양위를 받아 즉위했다. 세종대는 우리 민족사상 가장 빛나는 시기이다. 집현전을 통해 많은 인재가 양성되었고, 유교정치의 기반이 되는 의례·제도가 정비되었으며, 다양하고 방대한 편찬사업이 이루어졌다. 또 농업과 과학기술의 발전, 의약기술과 음악 및 법제의 정리, 공법의 제정, 국토의 확장 등 수많은 사업을 통해 민족국가의 기틀이 공고해졌다. 훈민정음 창제는 가장 빛나는 업적이다. 능호는 영릉으로 여주시에 있다.
세종 (世宗)
세종은 조선의 제4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418~1450년이며, 1418년 6월에 왕세자에 책봉되었다가 8월에 태종의 양위를 받아 즉위했다. 세종대는 우리 민족사상 가장 빛나는 시기이다. 집현전을 통해 많은 인재가 양성되었고, 유교정치의 기반이 되는 의례·제도가 정비되었으며, 다양하고 방대한 편찬사업이 이루어졌다. 또 농업과 과학기술의 발전, 의약기술과 음악 및 법제의 정리, 공법의 제정, 국토의 확장 등 수많은 사업을 통해 민족국가의 기틀이 공고해졌다. 훈민정음 창제는 가장 빛나는 업적이다. 능호는 영릉으로 여주시에 있다.
정순왕후는 조선후기 제21대 영조의 왕비로서 계비이다. 1745년(영조 21)에 태어나 1805년(순조 5)에 사망했다. 영조비 정성왕후 사후 15세의 나이로 영조의 계비가 되었다. 노론 벽파계 집안 출신으로, 국혼 후 오빠 김귀주를 중심으로 큰 세력을 형성했다. 정조가 즉위하자 왕대비가 되었고 순조가 11세로 즉위하자 대왕대비로서 수렴청정을 했다. 수렴청정 중에 노론 벽파 심환지를 영의정에 임명한 후 정조의 측근들을 내치고 신유사옥으로 남인 청류들을 대거 숙청함으로써 정조 재위기의 개혁 정치를 원점으로 되돌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순왕후 (貞純王后)
정순왕후는 조선후기 제21대 영조의 왕비로서 계비이다. 1745년(영조 21)에 태어나 1805년(순조 5)에 사망했다. 영조비 정성왕후 사후 15세의 나이로 영조의 계비가 되었다. 노론 벽파계 집안 출신으로, 국혼 후 오빠 김귀주를 중심으로 큰 세력을 형성했다. 정조가 즉위하자 왕대비가 되었고 순조가 11세로 즉위하자 대왕대비로서 수렴청정을 했다. 수렴청정 중에 노론 벽파 심환지를 영의정에 임명한 후 정조의 측근들을 내치고 신유사옥으로 남인 청류들을 대거 숙청함으로써 정조 재위기의 개혁 정치를 원점으로 되돌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초기국가시대 우리 민족의 시조이고 고조선의 창업왕인 단군에 관한 신화.
단군 신화 (檀君 神話)
초기국가시대 우리 민족의 시조이고 고조선의 창업왕인 단군에 관한 신화.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위 38°선 전역에 걸쳐 북한군이 불법 남침함으로써 일어난 한반도 전쟁이다. 광복 후 한반도에는 냉전체제 속에서 남북에 별개의 정부가 수립되었다. 이 과정에서 막강한 군사력을 갖춘 북한이 통일을 명분으로 전면적인 남침을 개시했다. 유엔의 결의에 따른 국제사회의 개입으로 역전되던 전황은 다시 중공군의 개입으로 교착상태에 머물다가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이루어지면서 전쟁이 중지되었다. 한민족 전체에 큰 손실을 끼쳤고 이후 남북분단이 더욱 고착화하여 아직도 휴전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한국전쟁 (韓國戰爭)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위 38°선 전역에 걸쳐 북한군이 불법 남침함으로써 일어난 한반도 전쟁이다. 광복 후 한반도에는 냉전체제 속에서 남북에 별개의 정부가 수립되었다. 이 과정에서 막강한 군사력을 갖춘 북한이 통일을 명분으로 전면적인 남침을 개시했다. 유엔의 결의에 따른 국제사회의 개입으로 역전되던 전황은 다시 중공군의 개입으로 교착상태에 머물다가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이루어지면서 전쟁이 중지되었다. 한민족 전체에 큰 손실을 끼쳤고 이후 남북분단이 더욱 고착화하여 아직도 휴전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이순신은 조선시대 정읍현감, 진도군수,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한 무신이다. 1545년(명종 즉위)에 태어나 1598년(선조 31)에 사망했다. 1591년 전라좌도 수군절도사가 되자 왜의 침략에 대비해 전선을 제조하고 군비를 확충했다. 임진왜란이 나자 옥포·노량·당포·당항포에서 연전연승을 거듭했다. 한산도와 부산포에서도 적들을 격파하고 1593년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다. 조정의 명령을 거역했다는 죄로 잡혀가 문초를 당했다. 정유재란에서 원균이 대패하자 다시 기용되어 조선 수군을 재건하고 적선을 추격하다 유탄을 맞고 사망했다.
이순신 (李舜臣)
이순신은 조선시대 정읍현감, 진도군수,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한 무신이다. 1545년(명종 즉위)에 태어나 1598년(선조 31)에 사망했다. 1591년 전라좌도 수군절도사가 되자 왜의 침략에 대비해 전선을 제조하고 군비를 확충했다. 임진왜란이 나자 옥포·노량·당포·당항포에서 연전연승을 거듭했다. 한산도와 부산포에서도 적들을 격파하고 1593년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다. 조정의 명령을 거역했다는 죄로 잡혀가 문초를 당했다. 정유재란에서 원균이 대패하자 다시 기용되어 조선 수군을 재건하고 적선을 추격하다 유탄을 맞고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