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양집(冠陽集)
아버지 진망(眞望)을 위해 대신 지은 「진민폐소(陳民弊疏)」는 7,200여 자의 장문으로 영남·호남에서 여러 해 계속되는 기근과 전염병으로 인해 민생이 피폐된 참상을 보고하고, 여러 가지 시정책을 건의하고 있다. 권9의 「호남어사서계별단(湖南御史書啓別單)」도 8,000여 자의 장문으로 된 현지보고서로서, 호남지방의 참혹한 실상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는 임진왜란·병자호란의 두 전쟁이 끝난 지 근 100년 이상이 되었던 당시에도 아직 전쟁의 참화가 가시지 않고 전혀 복구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민생은 도탄에 빠져 곳곳에서 밤마다 도적질이 자행되고 있다고 현지실정을 밝힌다. 이어서 궁가(宮家)의 어장(漁場)과 선세(船稅), 동전(銅錢)의 폐단, 대동법(大同法) 시행 후의 문제점, 양전(量田)의 문제점, 감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