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객(歌客)
조선 영조 무렵을 분수령으로 하여 전대의 작가들은 대개 한시문(漢詩文)의 작자라 할 수 있는 데 비하여, 이후부터는 우리의 시가를 짓는 이가 대부분 직접 노래를 부를 줄 아는 창곡가(唱曲家)였다. 그러므로 김수장(金壽長)은 그가 편찬한 『해동가요』에 특히 이 창곡가인 가객의 이름을 열거하고 있다. 즉, 그 끝에 고금창가제씨(古今唱歌諸氏)의 명단을 두고 그 의의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라에는 풍운(風雲)의 경사가 있고, 집집마다 계옥(桂玉:땔나무와 양식)의 근심이 없어 해마다 풍년이 드니 주림을 모르고 사람마다 가멸하여 괴로움을 모른다. 이와 같은 태평한 세상에 관리(官吏), 시경(市耕), 한유(閑遊), 다혁(茶奕:차와 바둑), 서화(書畵), 문무(文武), 시가자(詩歌者) 등으로 각기 그 생업이 다른 바, 그 중에도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