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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김제군수, 창원부사, 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 개설 본관은 개성(開城). 자는 명보(明甫), 호는 오소재(吾巢齋). 아버지는 증 좌찬성 김로(金簵)이며, 어머니는 배천조씨로 조헌(趙憲)의 딸이다. 김집(金集) · 민재문(閔在汶)의 문인이다. # 생애 및 활동사항 1633년(인조 11)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1], 이듬해 권지승문원부정자(權知承文院副正字)에 올랐으며, 봉상시주부 겸 승문박사(奉常寺主簿兼承文博士) · 성균관전적 겸 양현고주부 · 음성현감 · 김제군수 · 창원부사 · 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지방관으로 있는 동안 선정을 베풀어 부임하였던 군현마다 송덕비가 세워졌다. 70세가 되자 관직에서 물러나 향리의 갈천(葛川) 위에 오소재를 짓고, 후진양성에 힘썼다. 자헌대부 호조판서 겸 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
김여량 (金汝亮)
조선 후기에, 김제군수, 창원부사, 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 개설 본관은 개성(開城). 자는 명보(明甫), 호는 오소재(吾巢齋). 아버지는 증 좌찬성 김로(金簵)이며, 어머니는 배천조씨로 조헌(趙憲)의 딸이다. 김집(金集) · 민재문(閔在汶)의 문인이다. # 생애 및 활동사항 1633년(인조 11)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1], 이듬해 권지승문원부정자(權知承文院副正字)에 올랐으며, 봉상시주부 겸 승문박사(奉常寺主簿兼承文博士) · 성균관전적 겸 양현고주부 · 음성현감 · 김제군수 · 창원부사 · 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지방관으로 있는 동안 선정을 베풀어 부임하였던 군현마다 송덕비가 세워졌다. 70세가 되자 관직에서 물러나 향리의 갈천(葛川) 위에 오소재를 짓고, 후진양성에 힘썼다. 자헌대부 호조판서 겸 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
조선후기 별군직, 자산군수, 덕천군수 등을 역임한 무신. # 개설 본관은 경주(慶州). 할아버지는 김응룡(金應龍)이다. # 생애 및 활동사항 병자호란이 끝난 1637년(인조 15) 소현세자(昭顯世子)와 봉림대군(鳳林大君: 효종)이 볼모가 되어, 청나라의 심양(瀋陽)으로 갈 때 이들을 수행하였다. 용감하고 도량이 넓어 박배원(朴培元)·신진익(申晉翼) 등과 함께 세칭 용만팔장사(龍灣八壯士)에 선발되어 심관(瀋館)을 호위하였다. 청나라가 금주위(錦州衛)와 산해관(山海關)을 칠 때도 별시위(別侍衛)로 두 왕자를 호종하는 등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 1644년 청나라가 북경에 입성하고 이듬해 두 왕자의 귀국이 허락되자, 서울에 소식을 전하였다. 이러한 공로로 별군직(別軍職)을 지냈고, 자산(慈山)·덕천(德川)의 군수를 지냈다....
김여로 (金汝老)
조선후기 별군직, 자산군수, 덕천군수 등을 역임한 무신. # 개설 본관은 경주(慶州). 할아버지는 김응룡(金應龍)이다. # 생애 및 활동사항 병자호란이 끝난 1637년(인조 15) 소현세자(昭顯世子)와 봉림대군(鳳林大君: 효종)이 볼모가 되어, 청나라의 심양(瀋陽)으로 갈 때 이들을 수행하였다. 용감하고 도량이 넓어 박배원(朴培元)·신진익(申晉翼) 등과 함께 세칭 용만팔장사(龍灣八壯士)에 선발되어 심관(瀋館)을 호위하였다. 청나라가 금주위(錦州衛)와 산해관(山海關)을 칠 때도 별시위(別侍衛)로 두 왕자를 호종하는 등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 1644년 청나라가 북경에 입성하고 이듬해 두 왕자의 귀국이 허락되자, 서울에 소식을 전하였다. 이러한 공로로 별군직(別軍職)을 지냈고, 자산(慈山)·덕천(德川)의 군수를 지냈다....
고려, 제17대 왕이며 인종의 왕비. 공예태후는 고려의 제17대 왕이며, 인종의 왕비이다. 그녀는 인종의 후비(后妃)이자, 의종(毅宗)·명종(明宗)·신종(神宗)의 모후이기도 하다. 성씨는 임씨(任氏)이고, 본관은 정안(定安)이며, 아버지는 중서령 임원후(任元厚), 어머니는 문하시중 이위(李瑋)의 딸이다. 1126년(인종 4) 18세의 나이로 인종과 혼인하였는데, 연덕궁주(延德宮主)로 불리다가 1127년(인종 5)에 장남인 의종을 출산하였다. 1129년(인종 7)에 왕비로 책봉되었으며, 1183년(명종 13) 향년 75세로 사망하였다.##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단행본 - 정용숙, 『고려시대의 후비』 (민음사, 1992) ## 논문 - 이정란, 「고려 선종비 사숙태후와 인종비 공예태후」 (『한국인물사연구』 16, 한국인물사연구소, 2011)
공예태후 (恭睿太后)
고려, 제17대 왕이며 인종의 왕비. 공예태후는 고려의 제17대 왕이며, 인종의 왕비이다. 그녀는 인종의 후비(后妃)이자, 의종(毅宗)·명종(明宗)·신종(神宗)의 모후이기도 하다. 성씨는 임씨(任氏)이고, 본관은 정안(定安)이며, 아버지는 중서령 임원후(任元厚), 어머니는 문하시중 이위(李瑋)의 딸이다. 1126년(인종 4) 18세의 나이로 인종과 혼인하였는데, 연덕궁주(延德宮主)로 불리다가 1127년(인종 5)에 장남인 의종을 출산하였다. 1129년(인종 7)에 왕비로 책봉되었으며, 1183년(명종 13) 향년 75세로 사망하였다.##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단행본 - 정용숙, 『고려시대의 후비』 (민음사, 1992) ## 논문 - 이정란, 「고려 선종비 사숙태후와 인종비 공예태후」 (『한국인물사연구』 16, 한국인물사연구소, 2011)
조선 전기에, 충주도사, 담양부사, 의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 개설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사수(士秀), 호는 피구자(披裘子) 또는 외암(畏菴). 평산 출신. 선공감정 김약균(金若鈞)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주목사 김수렴(金粹濂)이고, 아버지는 찰방 김훈(金壎)이며, 어머니는 신천 강씨(信川康氏)로 부사 강의(康顗)의 딸이다. 영의정 김류(金瑬)의 아버지이다. # 생애 및 활동사항 선조 즉위년인 1567년에 진사시에 합격하고[^1] 1577년(선조 10)에 알성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2]. 문무를 겸비했으나 성품이 호탕하고 법도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해 높은 벼슬자리에는 등용되지 못하였다. 충주도사(忠州都事), 담양부사를 거쳐, 1591년에는 의주목사로 있었으나, 서인 정철(鄭澈)의 당으로 몰려 파직, 의금부에...
김여물 (金汝岉)
조선 전기에, 충주도사, 담양부사, 의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 개설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사수(士秀), 호는 피구자(披裘子) 또는 외암(畏菴). 평산 출신. 선공감정 김약균(金若鈞)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주목사 김수렴(金粹濂)이고, 아버지는 찰방 김훈(金壎)이며, 어머니는 신천 강씨(信川康氏)로 부사 강의(康顗)의 딸이다. 영의정 김류(金瑬)의 아버지이다. # 생애 및 활동사항 선조 즉위년인 1567년에 진사시에 합격하고[^1] 1577년(선조 10)에 알성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2]. 문무를 겸비했으나 성품이 호탕하고 법도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해 높은 벼슬자리에는 등용되지 못하였다. 충주도사(忠州都事), 담양부사를 거쳐, 1591년에는 의주목사로 있었으나, 서인 정철(鄭澈)의 당으로 몰려 파직, 의금부에...
조선 전기에, 전한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이 경박하고 출세에 급급하여 가정의 교훈을 따르지 않아 일찍이 숙부 김정국(金正國)이 우리 형제의 뒤를 이을 만한 자식이 없음을 한탄하였다고 하는데, 이 때에 와서 외척 윤원형(尹元衡)에게 붙으니 김정국의 말이 그대로 들어맞았다. 평소 김홍도(金弘度)와 사이가 좋지 못하여 서로 당을 만들어 다투었다. 1557년(명종 12) 윤원형이 첩을 처로 삼은 사실을 김홍도가 못마땅하게 생각하더라고 윤원형에게 고자질하여 조정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이어 그의 당인 대사간 김백균(金百鈞) · 사간 조덕원(趙德源)과 함께 탄핵하여 김홍도와 김규(金虯)를 각각 갑산과 경원으로 귀양보내고 김계휘(金繼輝)를 삭출시켰다. 뒤에 영의정 심연원(沈連源)으로부터 사사로운 원한으로 조정을...
김여부 (金汝孚)
조선 전기에, 전한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이 경박하고 출세에 급급하여 가정의 교훈을 따르지 않아 일찍이 숙부 김정국(金正國)이 우리 형제의 뒤를 이을 만한 자식이 없음을 한탄하였다고 하는데, 이 때에 와서 외척 윤원형(尹元衡)에게 붙으니 김정국의 말이 그대로 들어맞았다. 평소 김홍도(金弘度)와 사이가 좋지 못하여 서로 당을 만들어 다투었다. 1557년(명종 12) 윤원형이 첩을 처로 삼은 사실을 김홍도가 못마땅하게 생각하더라고 윤원형에게 고자질하여 조정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이어 그의 당인 대사간 김백균(金百鈞) · 사간 조덕원(趙德源)과 함께 탄핵하여 김홍도와 김규(金虯)를 각각 갑산과 경원으로 귀양보내고 김계휘(金繼輝)를 삭출시켰다. 뒤에 영의정 심연원(沈連源)으로부터 사사로운 원한으로 조정을...
조선 전기 임진왜란 당시 전라도의 의병장. 김여생은 조선 전기 임진왜란 당시 전라도의 의병장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판관에 이르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義)를 부르짖고, 의병을 모집하였고, 개인 재산을 털어 군량미를 확보하였다. 휘하 의병을 이끌고 전라도에서 일본군과 싸워 전공을 세웠다. 1605년(선조 38)에 선무원종공신에 오르고, 뒷날 병조참의에 증직되었다.# 가계 및 인적 사항 본관은 경주(慶州). 계림군(鷄林君) 김혼(金琿)의 후손이다. 아들이 의병 활동을 함께한 김응춘(金應春)이다. # 주요 활동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이 판관(判官)에 이르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義)를 부르짖고 일어나 격문을 돌려 의병을 모집하였으며, 개인 재산을 내어 군량미를...
김여생 (金麗生)
조선 전기 임진왜란 당시 전라도의 의병장. 김여생은 조선 전기 임진왜란 당시 전라도의 의병장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판관에 이르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義)를 부르짖고, 의병을 모집하였고, 개인 재산을 털어 군량미를 확보하였다. 휘하 의병을 이끌고 전라도에서 일본군과 싸워 전공을 세웠다. 1605년(선조 38)에 선무원종공신에 오르고, 뒷날 병조참의에 증직되었다.# 가계 및 인적 사항 본관은 경주(慶州). 계림군(鷄林君) 김혼(金琿)의 후손이다. 아들이 의병 활동을 함께한 김응춘(金應春)이다. # 주요 활동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이 판관(判官)에 이르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義)를 부르짖고 일어나 격문을 돌려 의병을 모집하였으며, 개인 재산을 내어 군량미를...
조선 전기에, 호조참판, 병조참판,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 개설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은경(殷卿). 할아버지는 김원손(金遠孫)이고, 아버지는 강화부사 김수(金洙)이며, 어머니는 권항(權恒)의 딸이다. # 생애 및 활동사항 1465년(세조 11)에 진사[^1], 그 해 가을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2] 성균관학유 겸 예문관검열(成均館學諭兼藝文館檢閱)에 보임되었으며, 뒤에 군자시주부(軍資寺主簿) · 병조좌랑을 역임하였다. 1470년(성종 1) 재행겸비자(才行兼備者)를 선발할 때 김종직(金宗直)과 함께 뽑혔으며, 1472년 병조정랑이 된 뒤 검상(檢詳) · 사인(舍人)을 거쳐 집의(執義)가 되었다. 1479년 성균관의 사예(司藝)로서 원수(元帥) 윤필상(尹弼商)의 종사관이 되어 건주위(建州衛) 토벌에 참여하였으며, 1481년 사간...
김여석 (金礪石)
조선 전기에, 호조참판, 병조참판,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 개설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은경(殷卿). 할아버지는 김원손(金遠孫)이고, 아버지는 강화부사 김수(金洙)이며, 어머니는 권항(權恒)의 딸이다. # 생애 및 활동사항 1465년(세조 11)에 진사[^1], 그 해 가을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2] 성균관학유 겸 예문관검열(成均館學諭兼藝文館檢閱)에 보임되었으며, 뒤에 군자시주부(軍資寺主簿) · 병조좌랑을 역임하였다. 1470년(성종 1) 재행겸비자(才行兼備者)를 선발할 때 김종직(金宗直)과 함께 뽑혔으며, 1472년 병조정랑이 된 뒤 검상(檢詳) · 사인(舍人)을 거쳐 집의(執義)가 되었다. 1479년 성균관의 사예(司藝)로서 원수(元帥) 윤필상(尹弼商)의 종사관이 되어 건주위(建州衛) 토벌에 참여하였으며, 1481년 사간...
고려전기 정지상, 백수한 등의 지지로 서경천도론을 제기한 승려. 묘청은 고려전기 정지상, 백수한 등의 지지로 서경천도론을 제기한 승려이다. 출생일은 미상이며 1135년(인종 13)에 사망했다. 풍수지리와 도참사상을 익힌 후 이를 바탕으로 상경은 이미 기운이 쇠했고 서경에는 왕기가 있으니 그곳으로 천도하자고 주장했다. 이자겸의 난으로 왕궁이 불타고 민심이 동요하던 상황에서 인종의 호응을 얻어 천도 준비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문신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실제 천도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조광·유참 등과 함께 국호를 대위라 하고 연호를 천개라 하여 난을 일으켰다가 부하들의 배신으로 죽임을 당했다.(강만길, 『인물한국사』 2, 박우사, 1965) - 「묘청-서경천도의 풍운아-」(하현강, 『한국의 인간상』2, 신구문화사, 1965) - 「묘청의...
묘청 (妙淸)
고려전기 정지상, 백수한 등의 지지로 서경천도론을 제기한 승려. 묘청은 고려전기 정지상, 백수한 등의 지지로 서경천도론을 제기한 승려이다. 출생일은 미상이며 1135년(인종 13)에 사망했다. 풍수지리와 도참사상을 익힌 후 이를 바탕으로 상경은 이미 기운이 쇠했고 서경에는 왕기가 있으니 그곳으로 천도하자고 주장했다. 이자겸의 난으로 왕궁이 불타고 민심이 동요하던 상황에서 인종의 호응을 얻어 천도 준비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문신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실제 천도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조광·유참 등과 함께 국호를 대위라 하고 연호를 천개라 하여 난을 일으켰다가 부하들의 배신으로 죽임을 당했다.(강만길, 『인물한국사』 2, 박우사, 1965) - 「묘청-서경천도의 풍운아-」(하현강, 『한국의 인간상』2, 신구문화사, 1965) - 「묘청의...
조선 전기, 『고봉법장가집』을 저술하고 송광사를 중창한 승려. 고봉 법장(高峰法藏)은 고려 말 조선 초기에 활동했던 선종의 승려이다. 조선 초기 송광사를 중창한 공으로 송광사 16국사로 추숭되었으며, 수선사 16세 사주(社主)로도 알려져 있다. 저서로는 나옹 삼가(懶翁三歌)를 게송으로 풀이한 『고봉법장가집(高峰法藏歌集)』이 있다.[우리말샘](http://opendict.korean.go.kr/dictionary/view?sense_no=479030) [^22]: 길이의 단위. 한 치는 한 자의 10분의 1 또는 약 3.03cm에 해당한다. [우리말샘](http://opendict.korean.go.kr/dictionary/view?sense_no=363769) ## 원전 - 『曹溪高僧傳』 ## 단행본 - 이능화,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신문관, 1918) - 조명제 외, 『역주 조계산 송광사사고 인물부』(혜안, 2007)
법장 (法藏)
조선 전기, 『고봉법장가집』을 저술하고 송광사를 중창한 승려. 고봉 법장(高峰法藏)은 고려 말 조선 초기에 활동했던 선종의 승려이다. 조선 초기 송광사를 중창한 공으로 송광사 16국사로 추숭되었으며, 수선사 16세 사주(社主)로도 알려져 있다. 저서로는 나옹 삼가(懶翁三歌)를 게송으로 풀이한 『고봉법장가집(高峰法藏歌集)』이 있다.[우리말샘](http://opendict.korean.go.kr/dictionary/view?sense_no=479030) [^22]: 길이의 단위. 한 치는 한 자의 10분의 1 또는 약 3.03cm에 해당한다. [우리말샘](http://opendict.korean.go.kr/dictionary/view?sense_no=363769) ## 원전 - 『曹溪高僧傳』 ## 단행본 - 이능화,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신문관, 1918) - 조명제 외, 『역주 조계산 송광사사고 인물부』(혜안, 2007)
조선 후기에, 판결사, 강화유수, 장례원판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그러다가 형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를 거쳐 판결사(判決事)로 전직해 노비송안(奴婢訟案)을 공정히 처리하였다. 강화유수에 임명되었다가[^2] 다시 장례원판결사가 되었으나, 병을 얻어 파산(坡山)의 집으로 돌아가 치유하다가 죽었다. [^1]: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2]: 강화유수 임명 : 『효종실록』 18권, 1657년(효종 8)3월 15일. "정치화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 『인조실록(仁祖實錄)』 - 『효종실록(孝宗實錄)』 - 『현종실록(顯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명재유고(明齋遺稿)』 - 『남계집(南溪集)』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김여옥 (金汝鈺)
조선 후기에, 판결사, 강화유수, 장례원판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그러다가 형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를 거쳐 판결사(判決事)로 전직해 노비송안(奴婢訟案)을 공정히 처리하였다. 강화유수에 임명되었다가[^2] 다시 장례원판결사가 되었으나, 병을 얻어 파산(坡山)의 집으로 돌아가 치유하다가 죽었다. [^1]: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2]: 강화유수 임명 : 『효종실록』 18권, 1657년(효종 8)3월 15일. "정치화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 『인조실록(仁祖實錄)』 - 『효종실록(孝宗實錄)』 - 『현종실록(顯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명재유고(明齋遺稿)』 - 『남계집(南溪集)』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일제강점기 「한끗」, 「잘짜」, 「해에게서 소년에게」 등을 저술한 시인. 교육자. # 생애 및 활동사항 평안북도 정주 출신. 호는 유암(流暗). 1918년 3월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대학 재학 시 학업성적이 매우 우수하여 줄곧 특대생으로 장학금을 받았다. 시작품은 양적으로 극히 한정되지만, 『학지광』 5호에 실린 「산녀(山女)」를 비롯한 「한끗」·「잘짜」 등 몇 편의 시작품은 우리 근대문학사에서 문제시되고 있다. 최남선(崔南善)·이광수(李光洙)에 뒤이어 현상윤(玄相允)·최소월(崔素月)·김안서(金岸曙) 등과 함께 주요한(朱耀翰)이 등장하기 이전, 1910년대 신체시단의 일원으로서 과도기적인 징검다리 역할을 한 시인이다. 그 시대로 보아 ‘산(山)'을 의인화한 시의 제목조차도 특이하지만, 그 전체의...
김여제 (金輿濟)
일제강점기 「한끗」, 「잘짜」, 「해에게서 소년에게」 등을 저술한 시인. 교육자. # 생애 및 활동사항 평안북도 정주 출신. 호는 유암(流暗). 1918년 3월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대학 재학 시 학업성적이 매우 우수하여 줄곧 특대생으로 장학금을 받았다. 시작품은 양적으로 극히 한정되지만, 『학지광』 5호에 실린 「산녀(山女)」를 비롯한 「한끗」·「잘짜」 등 몇 편의 시작품은 우리 근대문학사에서 문제시되고 있다. 최남선(崔南善)·이광수(李光洙)에 뒤이어 현상윤(玄相允)·최소월(崔素月)·김안서(金岸曙) 등과 함께 주요한(朱耀翰)이 등장하기 이전, 1910년대 신체시단의 일원으로서 과도기적인 징검다리 역할을 한 시인이다. 그 시대로 보아 ‘산(山)'을 의인화한 시의 제목조차도 특이하지만, 그 전체의...
고려 후기에, 부지밀직사사, 동판밀직사, 판삼사사 등을 역임한 무신. # 생애 및 활동사항 1270년(원종 11) 삼별초의 난 때 장군으로 출전하였으나, 7일간이나 공격을 당한 금성(錦城 :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을 구하지 않았다 하여 김방경(金方慶)의 탄핵으로 1271년 안세정(安世貞)과 함께 관직에서 삭탈되었다. 이듬해 환관을 통하여 다시 기용되어 안남도호부사(安南都護府使)가 되었으나, 처와 함께 삼별초에게 붙잡혔다가 1273년에 빠져나와 왕을 인견(引見)하고 위로를 받았다. 충렬왕 때 대장군이 되고, 1278년(충렬왕 4) 원나라에서 돌아오는 왕을 제안공(齊安公) 왕숙(王淑) 등 왕족과 함께 압록강에까지 가서 만났다. 1283년 염승익(廉承益)과 함께 현화사(玄化寺)를 수리하고, 남계원(南溪院)과 왕륜사(王輪寺)의 석탑을...
공유 (孔愉)
고려 후기에, 부지밀직사사, 동판밀직사, 판삼사사 등을 역임한 무신. # 생애 및 활동사항 1270년(원종 11) 삼별초의 난 때 장군으로 출전하였으나, 7일간이나 공격을 당한 금성(錦城 :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을 구하지 않았다 하여 김방경(金方慶)의 탄핵으로 1271년 안세정(安世貞)과 함께 관직에서 삭탈되었다. 이듬해 환관을 통하여 다시 기용되어 안남도호부사(安南都護府使)가 되었으나, 처와 함께 삼별초에게 붙잡혔다가 1273년에 빠져나와 왕을 인견(引見)하고 위로를 받았다. 충렬왕 때 대장군이 되고, 1278년(충렬왕 4) 원나라에서 돌아오는 왕을 제안공(齊安公) 왕숙(王淑) 등 왕족과 함께 압록강에까지 가서 만났다. 1283년 염승익(廉承益)과 함께 현화사(玄化寺)를 수리하고, 남계원(南溪院)과 왕륜사(王輪寺)의 석탑을...
조선후기 김직재의 옥사사건과 관련된 무신. 1637년(인조 15) 봉림대군(鳳林大君)·소현세자(昭顯世子)·인평대군(麟坪大君)과 함께 인질로 심양(瀋陽)에 갈 때 옥하관(玉河關)에 이르러 「월명비안(月明飛雁)」의 시를 읊은 것으로 유명하다. 무용(武勇)으로 이름을 떨쳐 심양에 있을 때 청나라 장수 우거(禹巨)가 김여준의 무용을 인정하고 두 사람이 씨름을 하다가 우거가 죽었으나 군법(軍法)이라 하여 죄를 받지 않았다. 본국으로 돌아와 벼슬에 나가지 않고 전라남도 영암에서 일생을 마쳤다. 효종이 즉위하자 부름을 받았으나 이미 죽은 뒤라 관직을 내려 영혼을 위로하였다. 또, 효종은 달 밝고 기러기 나는 밤에 그를 추억하는 시제(詩題)로써 선비들을 시험하였다.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김여준 (金汝峻)
조선후기 김직재의 옥사사건과 관련된 무신. 1637년(인조 15) 봉림대군(鳳林大君)·소현세자(昭顯世子)·인평대군(麟坪大君)과 함께 인질로 심양(瀋陽)에 갈 때 옥하관(玉河關)에 이르러 「월명비안(月明飛雁)」의 시를 읊은 것으로 유명하다. 무용(武勇)으로 이름을 떨쳐 심양에 있을 때 청나라 장수 우거(禹巨)가 김여준의 무용을 인정하고 두 사람이 씨름을 하다가 우거가 죽었으나 군법(軍法)이라 하여 죄를 받지 않았다. 본국으로 돌아와 벼슬에 나가지 않고 전라남도 영암에서 일생을 마쳤다. 효종이 즉위하자 부름을 받았으나 이미 죽은 뒤라 관직을 내려 영혼을 위로하였다. 또, 효종은 달 밝고 기러기 나는 밤에 그를 추억하는 시제(詩題)로써 선비들을 시험하였다.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조선 전기에, 대사헌, 판한성부사,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 개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자행(子行). 아버지는 고려 밀직제학(密直提學) 김도(金濤)이다. # 생애 및 활동사항 1389년(창왕 1)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고[^1] 사헌규정(司憲糾正)에 제수되었으나, 곧 언사(言事)로 전라도에 유배되었다. 1390년(공양왕 2)에 풀려나 우정언(右正言)이 되고 정도전(鄭道傳)을 탄핵하다가 파면되었으며, 뒤에 예조좌랑이 되었다. 1392년(태조 1) 계림부판관(鷄林府判官)으로 재직할 때, 함창군으로 유배 온 좌주(座主) 이종학(李種學)을 정도전의 사주를 받은 손흥종(孫興宗)이 해치려는 것을 구하였다. 곧 소환되어 간관(諫官)으로 근무하던 중 정도전이 “공양왕 2년에 나를 탄핵한 성랑(省郎)은 모두 파직되었는데 오직 김여지만이...
김여지 (金汝知)
조선 전기에, 대사헌, 판한성부사,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 개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자행(子行). 아버지는 고려 밀직제학(密直提學) 김도(金濤)이다. # 생애 및 활동사항 1389년(창왕 1)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고[^1] 사헌규정(司憲糾正)에 제수되었으나, 곧 언사(言事)로 전라도에 유배되었다. 1390년(공양왕 2)에 풀려나 우정언(右正言)이 되고 정도전(鄭道傳)을 탄핵하다가 파면되었으며, 뒤에 예조좌랑이 되었다. 1392년(태조 1) 계림부판관(鷄林府判官)으로 재직할 때, 함창군으로 유배 온 좌주(座主) 이종학(李種學)을 정도전의 사주를 받은 손흥종(孫興宗)이 해치려는 것을 구하였다. 곧 소환되어 간관(諫官)으로 근무하던 중 정도전이 “공양왕 2년에 나를 탄핵한 성랑(省郎)은 모두 파직되었는데 오직 김여지만이...
조선 후기에, 정언, 병조좌랑 등을 역임한 문신. # 개설 본관은 곡부(曲阜). 용인 출신. 공익성(孔益聖)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공학수(孔學洙)이고, 아버지는 공원인(孔源仁)이며, 어머니는 김수영(金受英)의 딸이다.[^1] # 생애 및 활동사항 가세가 몹시 빈곤하였으나, 학문이 뛰어나서 왕명으로 특별히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1792년(정조 16) 초계문신친시(抄啓文臣親試)에서 장원하였고, 이어 1794년 알성문과[^2]에 병과로 급제한 뒤 1796년 정언이 되었으며, 뒤에 병조좌랑을 지냈다. [^1]: 가계 : 『국조방목(國朝榜目)』 卷之十八(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貴11655]) . [^2]: 문과 급제 : 『국조방목(國朝榜目)』 卷之十八(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貴11655]) . - 『정조실록(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공윤항 (孔胤恒)
조선 후기에, 정언, 병조좌랑 등을 역임한 문신. # 개설 본관은 곡부(曲阜). 용인 출신. 공익성(孔益聖)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공학수(孔學洙)이고, 아버지는 공원인(孔源仁)이며, 어머니는 김수영(金受英)의 딸이다.[^1] # 생애 및 활동사항 가세가 몹시 빈곤하였으나, 학문이 뛰어나서 왕명으로 특별히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1792년(정조 16) 초계문신친시(抄啓文臣親試)에서 장원하였고, 이어 1794년 알성문과[^2]에 병과로 급제한 뒤 1796년 정언이 되었으며, 뒤에 병조좌랑을 지냈다. [^1]: 가계 : 『국조방목(國朝榜目)』 卷之十八(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貴11655]) . [^2]: 문과 급제 : 『국조방목(國朝榜目)』 卷之十八(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貴11655]) . - 『정조실록(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김유신의 처로서 영묘사에서 수도한 비구니. # 내용 성은 김씨. 김유신(金庾信)의 처로서, 712년(성덕왕 11) 비구니가 되어 영묘사(靈妙寺)에 머물렀다. 이에 왕은 김유신의 업적과 부인의 음공(陰功)에 보답하고자 매년 1,000석의 곡식을 하사하였다. 지리산 「쌍계사기(雙溪寺記)」에 따르면 미륵사(彌勒寺)의 승려 규정(圭晶)이 당나라로 가서 육조(六祖)의 정상(頂相)을 취하여 쌍계사에 봉안할 때, 법정이 그 비용을 대었다고 한다. - 『삼국유사(三國遺史)』 - 『조선선교사(朝鮮禪敎史)』(忽滑谷快天, 정호경 역, 보련각, 1978) -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이능화, 신문관, 1918)
법정 (法淨)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김유신의 처로서 영묘사에서 수도한 비구니. # 내용 성은 김씨. 김유신(金庾信)의 처로서, 712년(성덕왕 11) 비구니가 되어 영묘사(靈妙寺)에 머물렀다. 이에 왕은 김유신의 업적과 부인의 음공(陰功)에 보답하고자 매년 1,000석의 곡식을 하사하였다. 지리산 「쌍계사기(雙溪寺記)」에 따르면 미륵사(彌勒寺)의 승려 규정(圭晶)이 당나라로 가서 육조(六祖)의 정상(頂相)을 취하여 쌍계사에 봉안할 때, 법정이 그 비용을 대었다고 한다. - 『삼국유사(三國遺史)』 - 『조선선교사(朝鮮禪敎史)』(忽滑谷快天, 정호경 역, 보련각, 1978) -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이능화, 신문관, 1918)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에서 당나라에 파견된 사신. # 내용 808년(애장왕 9) 2월 당나라에 조공을 하러 갔다. 이때 당나라 덕종(德宗)에게, 800년(소성왕 2)에 김준옹(金俊邕 : 소성왕)을 신라왕으로 책봉하는 조서를 지녔던 책봉사 위단(韋丹)이 도중에 왕의 죽음을 듣고 돌아갔으므로, 당시 중서성에 보관되어 있는 책봉서를 가지고 갈 수 있도록 해줄 것을 청하였다. 이에 덕종은 김준옹 등의 책봉서를 홍려시(鴻驢寺)로 하여금 중서성에서 수령하여 전할 것을 명하고, 애장왕의 숙부 김언승(金彦昇)과 그의 아우 김중공(金仲恭)에게 문극(門戟)을 하사하고 본국으로 하여금 예에 의거하여 주도록 하였다. - 『삼국사기(三國史記)』 - 『책부원귀(冊府元龜)』
김역기 (金力奇)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에서 당나라에 파견된 사신. # 내용 808년(애장왕 9) 2월 당나라에 조공을 하러 갔다. 이때 당나라 덕종(德宗)에게, 800년(소성왕 2)에 김준옹(金俊邕 : 소성왕)을 신라왕으로 책봉하는 조서를 지녔던 책봉사 위단(韋丹)이 도중에 왕의 죽음을 듣고 돌아갔으므로, 당시 중서성에 보관되어 있는 책봉서를 가지고 갈 수 있도록 해줄 것을 청하였다. 이에 덕종은 김준옹 등의 책봉서를 홍려시(鴻驢寺)로 하여금 중서성에서 수령하여 전할 것을 명하고, 애장왕의 숙부 김언승(金彦昇)과 그의 아우 김중공(金仲恭)에게 문극(門戟)을 하사하고 본국으로 하여금 예에 의거하여 주도록 하였다. - 『삼국사기(三國史記)』 - 『책부원귀(冊府元龜)』
고려 후기 척불소를 올렸던 문신. 공은은 고려 후기 척불소를 올렸던 문신이다. 원나라의 한림학사 출신으로 고려에 귀화하여 창원백(昌原伯)에 봉해진 공소(孔紹)의 손자이며, 고려 말 예조총랑을 지낸 공부(孔俯)는 형이다. 척불소를 올렸다가 유배를 갔으며, 조선 건국 후 벼슬에 나가지 않고 은거하였다.# 가계 및 인적 사항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백량(伯良), 호는 고산(孤山)이다. 할아버지 공소(孔紹)가 원나라에서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를 모시고 고려에 들어와 귀화하여 회원군(檜原君), 창원백(昌原伯)에 봉해져 창원공씨(昌原孔氏)의 시조가 되었다. 공은의 아버지는 공여(孔帤), 어머니는 경주최씨 최수(崔粹)의 딸이다. 부인은 함양박씨이며, 장남 공신굉(孔臣肱)은 신호위대장군(神虎衛大將軍)을 역임하였고, 차남은 공신주...
공은 (孔㒚)
고려 후기 척불소를 올렸던 문신. 공은은 고려 후기 척불소를 올렸던 문신이다. 원나라의 한림학사 출신으로 고려에 귀화하여 창원백(昌原伯)에 봉해진 공소(孔紹)의 손자이며, 고려 말 예조총랑을 지낸 공부(孔俯)는 형이다. 척불소를 올렸다가 유배를 갔으며, 조선 건국 후 벼슬에 나가지 않고 은거하였다.# 가계 및 인적 사항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백량(伯良), 호는 고산(孤山)이다. 할아버지 공소(孔紹)가 원나라에서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를 모시고 고려에 들어와 귀화하여 회원군(檜原君), 창원백(昌原伯)에 봉해져 창원공씨(昌原孔氏)의 시조가 되었다. 공은의 아버지는 공여(孔帤), 어머니는 경주최씨 최수(崔粹)의 딸이다. 부인은 함양박씨이며, 장남 공신굉(孔臣肱)은 신호위대장군(神虎衛大將軍)을 역임하였고, 차남은 공신주...
조선 전기에, 우부승지, 강원도관찰사, 경주부윤 등을 역임한 문신. 003 사마 1510]) [^2]: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六(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3]: 김안로 탄핵 상소 : 『중종실록』 52권, 1524년(중종 19) 11월 4일. "조강에 나아가니 이항·조한필·김연 등이 김안로를 귀양보낼 것을 청하다" [^4]: 강원도 관찰사 행적 : 『중종실록』 99권, 1542년(중종 37) 11월 8일. "강원도 관찰사 김연을 인견하고 흉년에 백성을 구휼함에 힘쓰라 이르다" - 『중종실록(中宗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국조방목(國朝榜目)』 - 『정덕5년경오2월25일사마방목(正德五年庚午二月二十五日司馬榜目)』(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고서(I) 353.003 사마 1510])
김연 (金緣)
조선 전기에, 우부승지, 강원도관찰사, 경주부윤 등을 역임한 문신. 003 사마 1510]) [^2]: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六(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3]: 김안로 탄핵 상소 : 『중종실록』 52권, 1524년(중종 19) 11월 4일. "조강에 나아가니 이항·조한필·김연 등이 김안로를 귀양보낼 것을 청하다" [^4]: 강원도 관찰사 행적 : 『중종실록』 99권, 1542년(중종 37) 11월 8일. "강원도 관찰사 김연을 인견하고 흉년에 백성을 구휼함에 힘쓰라 이르다" - 『중종실록(中宗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국조방목(國朝榜目)』 - 『정덕5년경오2월25일사마방목(正德五年庚午二月二十五日司馬榜目)』(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고서(I) 353.003 사마 1510])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으로 활동하였으며, 군자감정에 임명된 학자·의병. # 개설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형원(浻源). 호는 송호(松湖). 아버지는 부장(部將) 김두문(金斗文)이며, 어머니는 남원김씨(南原金氏) 김우(金雨)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자질이 뛰어나 김연의 백형 김길(金洁)과 재종형 김면(金沔)과 합하여 김씨 삼군자(三君子)라 칭송되었는데 그의 학문도 김면에게서 수학하였다. # 생애 및 활동사항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김면이 조종도(趙宗道)·곽준(郭䞭)·문위(文緯) 등과 의병을 일으키자 김연도 참여하여 정진(鼎津)·무계(茂溪)에서 대승하여 군자감정(軍資監正)에 제수되었다. 이후 김연은 고향으로 가속(家屬)을 피난시키는 한편, 진영에 있는 김면을 끊임없이 도왔다. 1593년에 김면이 군중...
김연 (金演)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으로 활동하였으며, 군자감정에 임명된 학자·의병. # 개설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형원(浻源). 호는 송호(松湖). 아버지는 부장(部將) 김두문(金斗文)이며, 어머니는 남원김씨(南原金氏) 김우(金雨)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자질이 뛰어나 김연의 백형 김길(金洁)과 재종형 김면(金沔)과 합하여 김씨 삼군자(三君子)라 칭송되었는데 그의 학문도 김면에게서 수학하였다. # 생애 및 활동사항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김면이 조종도(趙宗道)·곽준(郭䞭)·문위(文緯) 등과 의병을 일으키자 김연도 참여하여 정진(鼎津)·무계(茂溪)에서 대승하여 군자감정(軍資監正)에 제수되었다. 이후 김연은 고향으로 가속(家屬)을 피난시키는 한편, 진영에 있는 김면을 끊임없이 도왔다. 1593년에 김면이 군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