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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전기 제6대 예종의 제3왕비. # 개설 종실 진한후(辰韓侯) 왕유(王愉)의 딸이다. # 생애 및 활동사항 진한후는 고려 문종과 이자연(李子淵)의 딸인 제3비 인경현비(仁敬賢妃)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이다. 따라서, 예종의 부왕인 숙종과는 어머니를 달리하는(숙종의 어머니는 역시 이자연의 딸인 仁睿順德太后임) 형제이며 동시에 이종간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예종과 문정왕후의 혼인은 친계 사촌혼이며, 외가로는 육촌관계가 되는 근친혈족혼인 것이다. 이러한 근친혼의 습속은 4대 광종이 그 이복누이와 혼인한 이래 계속되어왔다. 예종이 승하한 뒤 영정궁(永貞宮)에서 거처하다가 1129년(인종 7) 귀비(貴妃)로 봉하여졌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 『고려사(高麗史)』 - 「고려초기 혼인정책의 추이와 왕실족내혼의 성립」...
문정왕후 (文貞王后)
고려전기 제6대 예종의 제3왕비. # 개설 종실 진한후(辰韓侯) 왕유(王愉)의 딸이다. # 생애 및 활동사항 진한후는 고려 문종과 이자연(李子淵)의 딸인 제3비 인경현비(仁敬賢妃)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이다. 따라서, 예종의 부왕인 숙종과는 어머니를 달리하는(숙종의 어머니는 역시 이자연의 딸인 仁睿順德太后임) 형제이며 동시에 이종간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예종과 문정왕후의 혼인은 친계 사촌혼이며, 외가로는 육촌관계가 되는 근친혈족혼인 것이다. 이러한 근친혼의 습속은 4대 광종이 그 이복누이와 혼인한 이래 계속되어왔다. 예종이 승하한 뒤 영정궁(永貞宮)에서 거처하다가 1129년(인종 7) 귀비(貴妃)로 봉하여졌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 『고려사(高麗史)』 - 「고려초기 혼인정책의 추이와 왕실족내혼의 성립」...
제헌의원, 민주동지회 대표간사, 제5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그는 독실한 가톨릭신자로서 1974년 천주교 서울대교구 꾸르실료사무국 주간, 1975년 천주교 평신도사도직전국협의회 회장, 1976년 꾸르실료한국협의회 부회장, 1979년 한국천주교평신도협의회 상임고문 등으로 활동하였다. 제5공화국이 출범하면서 민주정의당 창당준비위원으로 정부여당에 참여하여 제11대 국회에 민정당 전국구의원으로 참여하였다. 1980년에는 대통령특사 자격으로 비동맹7개국을 순방하기도 하였고, 같은 해 9월부터 1981년 3월까지 제11대 체신부장관직을 맡았다. - 『역대국회의원총람』(한국국회인물사편찬회, 1983) - 『대한민국역대삼부총람』(도서출판 내외신서, 1981)
김기철 (金基喆)
제헌의원, 민주동지회 대표간사, 제5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그는 독실한 가톨릭신자로서 1974년 천주교 서울대교구 꾸르실료사무국 주간, 1975년 천주교 평신도사도직전국협의회 회장, 1976년 꾸르실료한국협의회 부회장, 1979년 한국천주교평신도협의회 상임고문 등으로 활동하였다. 제5공화국이 출범하면서 민주정의당 창당준비위원으로 정부여당에 참여하여 제11대 국회에 민정당 전국구의원으로 참여하였다. 1980년에는 대통령특사 자격으로 비동맹7개국을 순방하기도 하였고, 같은 해 9월부터 1981년 3월까지 제11대 체신부장관직을 맡았다. - 『역대국회의원총람』(한국국회인물사편찬회, 1983) - 『대한민국역대삼부총람』(도서출판 내외신서, 1981)
조선전기 제11대 중종의 왕비. # 개설 본관은 파평(坡平). 아버지는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 윤지임(尹之任)이며, 명종의 어머니이다. # 생애 및 활동사항 1517년(중종 12) 왕비에 책봉되었으며, 1545년 명종이 12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8년간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하는 동안 동생인 소윤(少尹) 윤원형(尹元衡)에게 정권을 쥐게 한 결과 인종의 외척인 대윤(大尹) 윤임(尹任) 일파를 제거하기 위하여 을사사화를 일으켜 윤원로(尹元老)를 해남(海南)으로 귀양보내고 윤임 등을 사사하였다. 승 보우(普雨)를 신임하여 불교의 부흥을 꾀하여 1550년(명종 5) 선교(禪敎) 양종(兩宗)을 부활시키고 승과·도첩제(度牒制)를 다시 실시하였고, 중종의 능을 보우가 주지로 있는 봉은사(奉恩寺)로 이장시켰다. 1553년 국정을 왕에게 맡겼으나 실질적인...
문정왕후 (文定王后)
조선전기 제11대 중종의 왕비. # 개설 본관은 파평(坡平). 아버지는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 윤지임(尹之任)이며, 명종의 어머니이다. # 생애 및 활동사항 1517년(중종 12) 왕비에 책봉되었으며, 1545년 명종이 12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8년간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하는 동안 동생인 소윤(少尹) 윤원형(尹元衡)에게 정권을 쥐게 한 결과 인종의 외척인 대윤(大尹) 윤임(尹任) 일파를 제거하기 위하여 을사사화를 일으켜 윤원로(尹元老)를 해남(海南)으로 귀양보내고 윤임 등을 사사하였다. 승 보우(普雨)를 신임하여 불교의 부흥을 꾀하여 1550년(명종 5) 선교(禪敎) 양종(兩宗)을 부활시키고 승과·도첩제(度牒制)를 다시 실시하였고, 중종의 능을 보우가 주지로 있는 봉은사(奉恩寺)로 이장시켰다. 1553년 국정을 왕에게 맡겼으나 실질적인...
조선 후기에, 삼례찰방, 성균관전적 등을 역임한 문신. # 개설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이정(而淨), 호는 지족와(知足窩). 아버지는 방덕화(房德驊)이며, 어머니는 남원양씨(南原楊氏) 부사(府使) 양홍손(楊洪孫)의 딸이다. 방원정은 왜란(倭亂) 중에 남원(南原)에서 유복자(遺腹子)로 출생하여 어머니의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으면서 오정길(吳廷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 생애 및 활동사항 1618년(광해군 10)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이 반란을 일으키자 동지들과 합세하여 각 읍에 격문을 발송하는 한편 의병과 군량을 모아 전주(全州)에 이르러 난이 평정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서 귀향하여 모았던 군량을 관아의 군비(軍費)에 충당하도록 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에도 형 방원진(房元震)과 재종형...
방원정 (房元井)
조선 후기에, 삼례찰방, 성균관전적 등을 역임한 문신. # 개설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이정(而淨), 호는 지족와(知足窩). 아버지는 방덕화(房德驊)이며, 어머니는 남원양씨(南原楊氏) 부사(府使) 양홍손(楊洪孫)의 딸이다. 방원정은 왜란(倭亂) 중에 남원(南原)에서 유복자(遺腹子)로 출생하여 어머니의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으면서 오정길(吳廷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 생애 및 활동사항 1618년(광해군 10)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이 반란을 일으키자 동지들과 합세하여 각 읍에 격문을 발송하는 한편 의병과 군량을 모아 전주(全州)에 이르러 난이 평정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서 귀향하여 모았던 군량을 관아의 군비(軍費)에 충당하도록 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에도 형 방원진(房元震)과 재종형...
일제강점기 때, 학교에서 교육투쟁을 전개하였고, 청년동맹 위원장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간부로 활동하다가 불교에 입문하여 참선수행을 지도한 불교인·독립운동가. # 개설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백봉(白峯). 부산 출생. # 생애 및 활동사항 10세 때까지 제주도에서 자라다가 11세 때 부산으로 이주, 그 곳에서 영도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제이상업학교에 진학하였다. 이 학교에서 조선사를 교과목에 삽입시킬 것과 일본말로 된 학교 이름을 우리말로 바꿀 것을 요구하는 학교이름바꾸기운동을 일으켰으며, 일본군의 현역군인이 출장하여 군사교육을 시키는 것도 반대하였다. 이 운동이 교외적(校外的)인 문제로 확산되고 집단적 소요가 거세지자 퇴학처분을 당하였다. 그 뒤, 20세가 되기 전에...
김기추 (金基秋)
일제강점기 때, 학교에서 교육투쟁을 전개하였고, 청년동맹 위원장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간부로 활동하다가 불교에 입문하여 참선수행을 지도한 불교인·독립운동가. # 개설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백봉(白峯). 부산 출생. # 생애 및 활동사항 10세 때까지 제주도에서 자라다가 11세 때 부산으로 이주, 그 곳에서 영도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제이상업학교에 진학하였다. 이 학교에서 조선사를 교과목에 삽입시킬 것과 일본말로 된 학교 이름을 우리말로 바꿀 것을 요구하는 학교이름바꾸기운동을 일으켰으며, 일본군의 현역군인이 출장하여 군사교육을 시키는 것도 반대하였다. 이 운동이 교외적(校外的)인 문제로 확산되고 집단적 소요가 거세지자 퇴학처분을 당하였다. 그 뒤, 20세가 되기 전에...
해방 이후 「근세 일본의 조선침탈사」·「단군조선사연구」·「고조선사연구」 등을 저술한 학자. 역사학자. # 생애 및 활동사항 1899년 경상남도 부산에서 출생했다. 호는 백당백당(柏堂)이다. 부산의 동명중등학교를 졸업한 후, 1923년 경상남도 동래군 서기를 지내다가 1924년 4월 조선총독부 행정강습소에 입학해 이듬해 3월 졸업했다. 경기도 수원군 속, 1927년 경상남도 울산군 속, 1928년 동래군 속, 1930년 경상남도 산업부 산업과 속(1930), 1932년 10월에는 조선 쇼와[昭和]5년 국세조사기념장을 받았다. 1937년 조선총독부 농림국 농촌진흥과 속, 1941년 조선총독부 농림국 농정과 속, 1942년 충청북도 내무부 사회과 사회주사(고등관 7등) 등을 거쳤다. 1943년 3월 군수로 승진하여 황해도 은율군수를 거쳐 1945년 6월부터...
문정창 (文定昌)
해방 이후 「근세 일본의 조선침탈사」·「단군조선사연구」·「고조선사연구」 등을 저술한 학자. 역사학자. # 생애 및 활동사항 1899년 경상남도 부산에서 출생했다. 호는 백당백당(柏堂)이다. 부산의 동명중등학교를 졸업한 후, 1923년 경상남도 동래군 서기를 지내다가 1924년 4월 조선총독부 행정강습소에 입학해 이듬해 3월 졸업했다. 경기도 수원군 속, 1927년 경상남도 울산군 속, 1928년 동래군 속, 1930년 경상남도 산업부 산업과 속(1930), 1932년 10월에는 조선 쇼와[昭和]5년 국세조사기념장을 받았다. 1937년 조선총독부 농림국 농촌진흥과 속, 1941년 조선총독부 농림국 농정과 속, 1942년 충청북도 내무부 사회과 사회주사(고등관 7등) 등을 거쳤다. 1943년 3월 군수로 승진하여 황해도 은율군수를 거쳐 1945년 6월부터...
조선 후기에, 정묘호란이 발발하자 김장생의 휘하에서 소모관으로 활동하며 군사 및 군량미 모집에 힘쓴 의병. 28세 때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유생으로 3년간 문과에 대비하여 학업에 열중하였으나 정국이 어지러움을 보고 과거를 단념하고 낙향하였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仁祖反正) 후 신흠(申欽)의 천거로 찰방이 되었으나 곧 사직하였다. 1627년 정묘호란 때 호소사(號召使) 김장생(金長生) 휘하에서 소모관(召募官)으로 군사와 군량미를 모집하는 데 활약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켜 여산까지 진군하였으나 이미 화의가 성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해산하였다. - 『속잡록(續雜錄)』(조경남) - 『만오실기(晩悟實記)』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방원진 (房元震)
조선 후기에, 정묘호란이 발발하자 김장생의 휘하에서 소모관으로 활동하며 군사 및 군량미 모집에 힘쓴 의병. 28세 때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유생으로 3년간 문과에 대비하여 학업에 열중하였으나 정국이 어지러움을 보고 과거를 단념하고 낙향하였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仁祖反正) 후 신흠(申欽)의 천거로 찰방이 되었으나 곧 사직하였다. 1627년 정묘호란 때 호소사(號召使) 김장생(金長生) 휘하에서 소모관(召募官)으로 군사와 군량미를 모집하는 데 활약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켜 여산까지 진군하였으나 이미 화의가 성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해산하였다. - 『속잡록(續雜錄)』(조경남) - 『만오실기(晩悟實記)』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조선 후기에, 임천군수, 평양서윤, 충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 개설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대백(大伯). 아버지는 군수 김안묵(金安默)이며, 어머니는 참봉 한사중(韓思重)의 딸이다. # 생애 및 활동사항 1783년(정조 7) 진사가 된 후[^1] 1785년 영릉(永陵) · 명릉(明陵)의 참봉을 거쳐 의금부동부도사 · 통례원인의(通禮院引儀) · 형조좌랑 · 형조정랑 · 호조정랑 등을 거쳐 사도시 · 사옹원 · 장악원의 첨정과 돈녕부판관 · 선혜낭청 등을 역임하였다. 외직으로는 삼등(三登) · 영유(永柔)현령, 순안 · 맹산현감, 함흥 · 광주판관, 선산 · 장성부사 및 임천군수 · 평양서윤 · 충주목사 등을 거쳤다. 지방수령으로 재직 중에는 관개 · 교량 등의 사업에 힘썼고 군역의 폐단이던 첨정(簽丁: 黃口簽丁의 준말로 어린 아이를 군역자로...
김기풍 (金基豊)
조선 후기에, 임천군수, 평양서윤, 충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 개설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대백(大伯). 아버지는 군수 김안묵(金安默)이며, 어머니는 참봉 한사중(韓思重)의 딸이다. # 생애 및 활동사항 1783년(정조 7) 진사가 된 후[^1] 1785년 영릉(永陵) · 명릉(明陵)의 참봉을 거쳐 의금부동부도사 · 통례원인의(通禮院引儀) · 형조좌랑 · 형조정랑 · 호조정랑 등을 거쳐 사도시 · 사옹원 · 장악원의 첨정과 돈녕부판관 · 선혜낭청 등을 역임하였다. 외직으로는 삼등(三登) · 영유(永柔)현령, 순안 · 맹산현감, 함흥 · 광주판관, 선산 · 장성부사 및 임천군수 · 평양서윤 · 충주목사 등을 거쳤다. 지방수령으로 재직 중에는 관개 · 교량 등의 사업에 힘썼고 군역의 폐단이던 첨정(簽丁: 黃口簽丁의 준말로 어린 아이를 군역자로...
고려 전기, 제11대 왕. 문종은 고려 전기 제1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046~1083년이며, 형인 제10대 왕 정종에게 아들이 있었지만 형제 상속의 형태를 취해 왕위를 계승했다. 문종 재위기는 고려의 황금기라 할 정도로 문물제도가 크게 정비된 시기였다. 양반전시과가 다시 정비되고 관제가 개편되었으며, 백관의 서열과 녹과가 제정되는 등 지배체제 확립을 위한 정치·경제제도가 완비되었다. 형법 정비와 재면법 마련으로 백성들의 생활이 안정되고 문화 전반에 걸쳐 큰 발전이 있었다. 몇 차례 동여진의 침략도 모두 격퇴하고 여진과 대체로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했다.# 가계 및 인적사항 재위 1046∼1083년. 이름은 왕휘(王徽), 초명은 왕서(王緖), 자(字)는 촉유(燭幽). 고려(高麗) 현종(顯宗)의 셋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원혜태후(元惠太后) 김씨...
문종 (文宗)
고려 전기, 제11대 왕. 문종은 고려 전기 제1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046~1083년이며, 형인 제10대 왕 정종에게 아들이 있었지만 형제 상속의 형태를 취해 왕위를 계승했다. 문종 재위기는 고려의 황금기라 할 정도로 문물제도가 크게 정비된 시기였다. 양반전시과가 다시 정비되고 관제가 개편되었으며, 백관의 서열과 녹과가 제정되는 등 지배체제 확립을 위한 정치·경제제도가 완비되었다. 형법 정비와 재면법 마련으로 백성들의 생활이 안정되고 문화 전반에 걸쳐 큰 발전이 있었다. 몇 차례 동여진의 침략도 모두 격퇴하고 여진과 대체로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했다.# 가계 및 인적사항 재위 1046∼1083년. 이름은 왕휘(王徽), 초명은 왕서(王緖), 자(字)는 촉유(燭幽). 고려(高麗) 현종(顯宗)의 셋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원혜태후(元惠太后) 김씨...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 참전한 문신. # 개설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형보(瑩甫), 호는 성산(聖山). 이조판서 오팽숙(吳膨叔)의 증손이며, 아버지는 오사운(吳思雲)이다. # 생애 및 활동사항 1590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에 홍문관정자(弘文館正字)로 등용되어 국가문서를 맡아서 처리하였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임금의 호종(扈從: 따라 다니면서 호위함)보다 직접 적과 싸우기로 결심하고 의병장 고경명(高敬命) 휘하로 달려가서 금산전투에 참가하였다. 그 싸움에서 아군이 패하게 되자 이듬해 의병장 고종후(高從厚)와 함께 다시 의병을 모아 진주성으로 달려갔다. 그 해 8월, 지난 번 그곳에서 참패한 원한을 풀기 위하여 총병력으로 공격해오는 왜군과 처절한 혈전을 벌이다가 끝내 성이 무너지려...
오비 (吳玭)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 참전한 문신. # 개설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형보(瑩甫), 호는 성산(聖山). 이조판서 오팽숙(吳膨叔)의 증손이며, 아버지는 오사운(吳思雲)이다. # 생애 및 활동사항 1590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에 홍문관정자(弘文館正字)로 등용되어 국가문서를 맡아서 처리하였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임금의 호종(扈從: 따라 다니면서 호위함)보다 직접 적과 싸우기로 결심하고 의병장 고경명(高敬命) 휘하로 달려가서 금산전투에 참가하였다. 그 싸움에서 아군이 패하게 되자 이듬해 의병장 고종후(高從厚)와 함께 다시 의병을 모아 진주성으로 달려갔다. 그 해 8월, 지난 번 그곳에서 참패한 원한을 풀기 위하여 총병력으로 공격해오는 왜군과 처절한 혈전을 벌이다가 끝내 성이 무너지려...
조선 후기에, 후릉참봉 등을 역임한 문신. # 개설 본관은 울산(蔚山). 자는 용구(用九). 성리학자 김인후(金麟厚)의 4세손으로, 아버지는 김형우(金亨祐)이며, 어머니는 허열(許說)의 딸이다. # 생애 및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학문에 정진하였으며, 유학뿐 아니라 역사·의학·지리·천문 등에도 두루 능통하였다. 스승인 송시열(宋時烈)이 사사되자 부근에 살고 있던 선비들을 모아 장례를 주관하는 한편, 스승을 모시는 사당을 짓고 그것을 운영하는 규칙을 만들었다. 숙종 때의 명신이었던 김수항(金壽恒)의 여러 자제들과 깊이 사귀었는데, 벼슬길에는 뜻이 없어 과거에는 응하지 않았으나 학행(學行)으로 추천받아 후릉참봉(厚陵參奉)이 되었다. - 『도곡집(陶谷集)』
김기하 (金器夏)
조선 후기에, 후릉참봉 등을 역임한 문신. # 개설 본관은 울산(蔚山). 자는 용구(用九). 성리학자 김인후(金麟厚)의 4세손으로, 아버지는 김형우(金亨祐)이며, 어머니는 허열(許說)의 딸이다. # 생애 및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학문에 정진하였으며, 유학뿐 아니라 역사·의학·지리·천문 등에도 두루 능통하였다. 스승인 송시열(宋時烈)이 사사되자 부근에 살고 있던 선비들을 모아 장례를 주관하는 한편, 스승을 모시는 사당을 짓고 그것을 운영하는 규칙을 만들었다. 숙종 때의 명신이었던 김수항(金壽恒)의 여러 자제들과 깊이 사귀었는데, 벼슬길에는 뜻이 없어 과거에는 응하지 않았으나 학행(學行)으로 추천받아 후릉참봉(厚陵參奉)이 되었다. - 『도곡집(陶谷集)』
조선의 제5대(재위: 1450년~1452년) 왕. 문종은 조선전기 제5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450∼1452년이며, 세종의 맏아들이다. 세종 재위시에 세자로서 섭정을 하면서 실제적인 정치 경험을 쌓았다. 학문을 좋아했고 학자들을 아꼈으며 많은 서적들을 편찬했다. 『고려사』 개찬과 『고려사절요』 편찬은 조선왕조의 정치·제도·문화의 정리를 위해서도 중요한 의의를 가진 사업이었다. 군제도 스스로 개혁안을 마련해 정비했다. 유학뿐 아니라 천문·역수·산술에도 정통했고 서도에도 능했다고 한다. 그러나 몸이 허약해 재위 2년 4개월 만인 39세에 병사하고 나이 어린 세자 단종이 즉위했다.# 내용 재위 1450년(문종 즉위년)∼1452년(문종 2).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이향(李珦), 자는 휘지(輝之). 세종의 맏아들이며, 어머니는 소헌왕후 심씨...
문종 (文宗)
조선의 제5대(재위: 1450년~1452년) 왕. 문종은 조선전기 제5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450∼1452년이며, 세종의 맏아들이다. 세종 재위시에 세자로서 섭정을 하면서 실제적인 정치 경험을 쌓았다. 학문을 좋아했고 학자들을 아꼈으며 많은 서적들을 편찬했다. 『고려사』 개찬과 『고려사절요』 편찬은 조선왕조의 정치·제도·문화의 정리를 위해서도 중요한 의의를 가진 사업이었다. 군제도 스스로 개혁안을 마련해 정비했다. 유학뿐 아니라 천문·역수·산술에도 정통했고 서도에도 능했다고 한다. 그러나 몸이 허약해 재위 2년 4개월 만인 39세에 병사하고 나이 어린 세자 단종이 즉위했다.# 내용 재위 1450년(문종 즉위년)∼1452년(문종 2).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이향(李珦), 자는 휘지(輝之). 세종의 맏아들이며, 어머니는 소헌왕후 심씨...
일제강점기 때, 대한독립단을 조직하여 국내지단 결성과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이해 11월 독립단의 국내지단 결성과 군자금모금의 사명을 띠고 국내로 잠입하여 먼저 황해도 해주에서 지단 조직에 착수하고, 1920년에는 평남지단(平南支團)과 군단(郡團) 조직을, 7월에는 평북지단과 군단을 결성하였다. 그 뒤 서울에 잠입하여 중앙본부를 결성하고 단원들을 포섭, 군자금모금 활동을 전개하던 중 발각되어 잡혔다. 1921년 9월 3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8년형을 언도받고 복역중 일본경찰의 악형을 받고 순국하였다. # 상훈과 추모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대한민국독립운동공훈사』(김후경·신재홍, 독립운동공훈사발간위원회, 1971)
김기한 (金起漢)
일제강점기 때, 대한독립단을 조직하여 국내지단 결성과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이해 11월 독립단의 국내지단 결성과 군자금모금의 사명을 띠고 국내로 잠입하여 먼저 황해도 해주에서 지단 조직에 착수하고, 1920년에는 평남지단(平南支團)과 군단(郡團) 조직을, 7월에는 평북지단과 군단을 결성하였다. 그 뒤 서울에 잠입하여 중앙본부를 결성하고 단원들을 포섭, 군자금모금 활동을 전개하던 중 발각되어 잡혔다. 1921년 9월 3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8년형을 언도받고 복역중 일본경찰의 악형을 받고 순국하였다. # 상훈과 추모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대한민국독립운동공훈사』(김후경·신재홍, 독립운동공훈사발간위원회, 1971)
조선 후기에, 진주목사, 공조참의,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1662년(현종 3) 오위장에 등용되고 첨지중추부사·공조참의를 역임하였다. 1681년(숙종 7)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승품하여 동지중추부사 겸총관이 되었고, 1684년에 인조의 계비인 장렬왕후(莊烈王后)의 회갑을 계기로 자헌대부에 지중추부사로 승진, 기로소에 들어갔다. 시호는 숙헌(肅憲)이다. - 『인조실록(仁祖實錄)』 - 『효종실록(孝宗實錄)』 - 『현종개수실록(顯宗改修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천파집(天坡集)』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청선고(淸選考)』 - 『선원계보(璿源系譜)』
오빈 (吳䎙)
조선 후기에, 진주목사, 공조참의,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1662년(현종 3) 오위장에 등용되고 첨지중추부사·공조참의를 역임하였다. 1681년(숙종 7)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승품하여 동지중추부사 겸총관이 되었고, 1684년에 인조의 계비인 장렬왕후(莊烈王后)의 회갑을 계기로 자헌대부에 지중추부사로 승진, 기로소에 들어갔다. 시호는 숙헌(肅憲)이다. - 『인조실록(仁祖實錄)』 - 『효종실록(孝宗實錄)』 - 『현종개수실록(顯宗改修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천파집(天坡集)』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청선고(淸選考)』 - 『선원계보(璿源系譜)』
일제강점기 때, 임시의정원 의원, 한국노병회 비서부장, 한국독립당 중앙집행위원, 민족혁명당 감찰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1935년 난징[南京]에서 오당통합운동(五黨統合運動)에 참여해 민족혁명당 조직에 진력하였다. 1937년 1월에는 이 당의 감찰위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하다가 1940년에 충칭[重慶]으로 가서 의정원 의원으로 그 해 9월 17일 한국광복군 창립에 노력하였다. # 상훈과 추모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3·1독립운동과 임시정부의 법통성』(이현희, 동방도서, 1987) - 『대한민국임시정부사』(이현희, 집문당, 1982) - 『독립운동사』 4(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 『朝鮮民族運動年鑑』(在上海日本總領事館警察部第二課, 東文書店社, 1946)
김기형 (金基瀅)
일제강점기 때, 임시의정원 의원, 한국노병회 비서부장, 한국독립당 중앙집행위원, 민족혁명당 감찰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1935년 난징[南京]에서 오당통합운동(五黨統合運動)에 참여해 민족혁명당 조직에 진력하였다. 1937년 1월에는 이 당의 감찰위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하다가 1940년에 충칭[重慶]으로 가서 의정원 의원으로 그 해 9월 17일 한국광복군 창립에 노력하였다. # 상훈과 추모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3·1독립운동과 임시정부의 법통성』(이현희, 동방도서, 1987) - 『대한민국임시정부사』(이현희, 집문당, 1982) - 『독립운동사』 4(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 『朝鮮民族運動年鑑』(在上海日本總領事館警察部第二課, 東文書店社, 1946)
19세기 후반에, 송광사(松廣寺)를 주요 근거지로 삼아 활동한 부휴계의 승려. 문주는 19세기 후반에 송광사(松廣寺)를 주요 근거지로 삼아 활동한 부휴계의 승려이다.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출신이며 부휴계의 적전 묵암 최눌(默庵㝡訥)의 4세 법손으로 법호는 원해(圓海)였고 범해 각안(梵海覺岸)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가계 및 인적사항 문주는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출신으로 1850년 3월 15일에 태어났다. 본관은 음(陰)이고 아버지의 이름은 도황(道晃)이다. 문주가 출가하여 배우는 데 뜻을 두자 부모가 “수행하여 성취하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큰 죄를 짓는 것이다.”라고 하며 허락했다. 법맥은 부휴계(浮休系)의 적전^1]인 묵암 [최눌(默庵㝡訥)의 4세 법손[^2]으로 법호는 원해(圓海)...
문주 (文周)
19세기 후반에, 송광사(松廣寺)를 주요 근거지로 삼아 활동한 부휴계의 승려. 문주는 19세기 후반에 송광사(松廣寺)를 주요 근거지로 삼아 활동한 부휴계의 승려이다.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출신이며 부휴계의 적전 묵암 최눌(默庵㝡訥)의 4세 법손으로 법호는 원해(圓海)였고 범해 각안(梵海覺岸)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가계 및 인적사항 문주는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출신으로 1850년 3월 15일에 태어났다. 본관은 음(陰)이고 아버지의 이름은 도황(道晃)이다. 문주가 출가하여 배우는 데 뜻을 두자 부모가 “수행하여 성취하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큰 죄를 짓는 것이다.”라고 하며 허락했다. 법맥은 부휴계(浮休系)의 적전^1]인 묵암 [최눌(默庵㝡訥)의 4세 법손[^2]으로 법호는 원해(圓海)...
조선 후기, 『구령요의』, 『소원신종』, 『봉교자술』 등을 저술한 천주교 지도자. 김기호는 조선 후기 『구령요의』, 『소원신종』, 『봉교자술』 등을 저술한 천주교 지도자이다. 베르뇌 주교에게 세례를 받았고, 황해도 및 평안도의 전교 회장에 임명되었다. 1866년 박해 이후 은거했다가, 1876년 선교사제들이 재입국하자 교회 활동을 재개했다. 블랑 주교의 복사이자 도회장(都會長)으로 활동하면서 신자 교육, 천주교 서적 저술을 했다. 1883년 블랑 주교의 성성식에 수행하여 참석했다. 1891년 모든 직무를 내려놓고 하우현에 정착하여 공소 강당 건립과 본당 설정에 힘썼으며, 1903년에 사망했다.# 가계 및 인적사항 김기호는 황해도 수안군 무송동에서 출생하였다. 세례명은 요한이다. 교회 측 기록에는 이름字]이 형옥(衡玉)으로...
김기호 (金起浩)
조선 후기, 『구령요의』, 『소원신종』, 『봉교자술』 등을 저술한 천주교 지도자. 김기호는 조선 후기 『구령요의』, 『소원신종』, 『봉교자술』 등을 저술한 천주교 지도자이다. 베르뇌 주교에게 세례를 받았고, 황해도 및 평안도의 전교 회장에 임명되었다. 1866년 박해 이후 은거했다가, 1876년 선교사제들이 재입국하자 교회 활동을 재개했다. 블랑 주교의 복사이자 도회장(都會長)으로 활동하면서 신자 교육, 천주교 서적 저술을 했다. 1883년 블랑 주교의 성성식에 수행하여 참석했다. 1891년 모든 직무를 내려놓고 하우현에 정착하여 공소 강당 건립과 본당 설정에 힘썼으며, 1903년에 사망했다.# 가계 및 인적사항 김기호는 황해도 수안군 무송동에서 출생하였다. 세례명은 요한이다. 교회 측 기록에는 이름字]이 형옥(衡玉)으로...
조선 전기에, 제주목사, 함경남도절도사, 좌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1520년 병조판서에 특차되었으나 신진사류의 탄핵으로 병조참판으로 강등되었고, 1522년 군기(軍機)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이유로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1523년 경상도관찰사가 되었고 다음 해에는 동지성균관사(同知成均館事)로 임명되었다. 벼슬은 병조판서에 이르렀다. 사헌부에 있을 때 조광조(趙光祖)를 제거하려는 일파에 가담도 하였다. - 『중종실록(中宗實錄)』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국조방목(國朝榜目)』 - 『허암유집(虛庵遺集)』 - 『무릉잡고(武陵雜稿)』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방유령 (方有寧)
조선 전기에, 제주목사, 함경남도절도사, 좌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1520년 병조판서에 특차되었으나 신진사류의 탄핵으로 병조참판으로 강등되었고, 1522년 군기(軍機)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이유로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1523년 경상도관찰사가 되었고 다음 해에는 동지성균관사(同知成均館事)로 임명되었다. 벼슬은 병조판서에 이르렀다. 사헌부에 있을 때 조광조(趙光祖)를 제거하려는 일파에 가담도 하였다. - 『중종실록(中宗實錄)』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국조방목(國朝榜目)』 - 『허암유집(虛庵遺集)』 - 『무릉잡고(武陵雜稿)』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원장, 대한의학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며, 국내 의학의 임상병리 검사기술 전문화에 기여한 의학자. #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의당(毅堂). 함경북도 명천 출생. 별명은 백인돌이이다. 김승주(金承柱)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명천국민학교를 마치고, 1939년 경기중학교, 1942년 일본 히메지고등학교[姬路高等學校]를 졸업하였다. 1942년 도쿄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 의학부에 입학, 1947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였다. 1948년부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근무중 6·25전쟁이 일어나자 군의관으로 8년간 복무하였다. 1958년부터 1960년까지 국립중앙의료원 병리과 수석 의무관을 지내고, 1960년에서 1972년까지 우석대학교(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김기홍 (金箕洪)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원장, 대한의학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며, 국내 의학의 임상병리 검사기술 전문화에 기여한 의학자. #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의당(毅堂). 함경북도 명천 출생. 별명은 백인돌이이다. 김승주(金承柱)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명천국민학교를 마치고, 1939년 경기중학교, 1942년 일본 히메지고등학교[姬路高等學校]를 졸업하였다. 1942년 도쿄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 의학부에 입학, 1947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였다. 1948년부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근무중 6·25전쟁이 일어나자 군의관으로 8년간 복무하였다. 1958년부터 1960년까지 국립중앙의료원 병리과 수석 의무관을 지내고, 1960년에서 1972년까지 우석대학교(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조선후기 「묵란도」를 그린 화가. # 내용 본관은 온양(溫陽). 자와 호는 모두 노천(老泉). 예남(藝南)이라는 별호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첨사(僉使) 우도(禹度)의 아들이다. 김정희(金正喜)의 풍을 따랐으며 매화와 난초, 글씨에 능하였다. 특히, 묵란은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의 화법과 비슷하여 대신 그려주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유작으로는 「묵란도」 등이 전하고 있는데, 김정희에서 흥선대원군으로 이어지는 조선 말기 묵란화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 『한국회화대관(韓國繪畵大觀)』(유복렬 편, 문교원, 1969) -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오세창, 계명구락부, 1928)
방윤명 (方允明)
조선후기 「묵란도」를 그린 화가. # 내용 본관은 온양(溫陽). 자와 호는 모두 노천(老泉). 예남(藝南)이라는 별호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첨사(僉使) 우도(禹度)의 아들이다. 김정희(金正喜)의 풍을 따랐으며 매화와 난초, 글씨에 능하였다. 특히, 묵란은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의 화법과 비슷하여 대신 그려주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유작으로는 「묵란도」 등이 전하고 있는데, 김정희에서 흥선대원군으로 이어지는 조선 말기 묵란화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 『한국회화대관(韓國繪畵大觀)』(유복렬 편, 문교원, 1969) -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오세창, 계명구락부, 1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