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강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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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은 서북면행영도통사, 상원수대장군, 문하시중 등을 역임한 고려시대 전기의 문신이다. 948년(정종 3)에 태어나 1031년(현종 22)에 사망했다. 1010년(현종 1) 요(遼)나라가 서경을 침공하자 일시 후퇴할 것을 주장했고, 1018년(현종 9) 요나라의 소배압(蕭排押)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침공하자 상원수대장군으로서 귀주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귀주대첩이라 불리는 이 큰 승리 이후 요나라와 평화적인 외교관계가 형성된다. 고려의 국방을 튼튼히 하고 외교 관계에서 큰 공을 세운 인물로 평가된다.
강감찬 (姜邯贊)
강감찬은 서북면행영도통사, 상원수대장군, 문하시중 등을 역임한 고려시대 전기의 문신이다. 948년(정종 3)에 태어나 1031년(현종 22)에 사망했다. 1010년(현종 1) 요(遼)나라가 서경을 침공하자 일시 후퇴할 것을 주장했고, 1018년(현종 9) 요나라의 소배압(蕭排押)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침공하자 상원수대장군으로서 귀주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귀주대첩이라 불리는 이 큰 승리 이후 요나라와 평화적인 외교관계가 형성된다. 고려의 국방을 튼튼히 하고 외교 관계에서 큰 공을 세운 인물로 평가된다.
왕실이나 왕족의 지배하에 있는 단순한 수조지(收租地).
무토면세전 (無土免稅田)
왕실이나 왕족의 지배하에 있는 단순한 수조지(收租地).
백성은 고려시대의 신분계층이다. 직역을 담당하는 인리(人吏)·향리(鄕吏)·기인(其人) 등과 함께 사용되었다. 이를 근거로 촌락의 지배자인 촌장(村長)·촌정(村正)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이해하는 견해가 있다. 한편 지연적·혈연적으로 결합된 사회집단으로, 군현인(郡縣人)으로 구별되는 신분층이라고 이해하는 견해도 있다. 구별되는 신분층이 아니라 토성(土姓)와 연결하여 접근하는 견해도 있다. 읍치가 확대되면서 주변의 촌락이 흡수되어 읍사의 지배기구에 참여하는 촌장·촌정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백성 (百姓)
백성은 고려시대의 신분계층이다. 직역을 담당하는 인리(人吏)·향리(鄕吏)·기인(其人) 등과 함께 사용되었다. 이를 근거로 촌락의 지배자인 촌장(村長)·촌정(村正)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이해하는 견해가 있다. 한편 지연적·혈연적으로 결합된 사회집단으로, 군현인(郡縣人)으로 구별되는 신분층이라고 이해하는 견해도 있다. 구별되는 신분층이 아니라 토성(土姓)와 연결하여 접근하는 견해도 있다. 읍치가 확대되면서 주변의 촌락이 흡수되어 읍사의 지배기구에 참여하는 촌장·촌정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역마(驛馬)를 기르기 위해 그 재원으로서 설치된 토지.
마전 (馬田)
역마(驛馬)를 기르기 위해 그 재원으로서 설치된 토지.
고려시대 승직(僧職)·지리업자(地理業者)에게 지급되던 토지.
별사전시 (別賜田柴)
고려시대 승직(僧職)·지리업자(地理業者)에게 지급되던 토지.
『고려정치제도사연구』는 1971년 변태섭이 고려시대 정치제도에 관하여 논술한 학술서이다. 저자가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들을 묶어 일조각에서 간행하였다. 제Ⅰ편 중앙의 정치제도, 제Ⅱ편 지방의 정치제도, 제Ⅲ편 고려의 양반제도로 구분되며, 각 편에 논문 4편씩이 수록되어 있다. 제Ⅰ편에서는 중앙 정치제도의 통치 권력 구조 및 조직의 문제를, 제Ⅱ편에서는 고려의 외관제가 전체 통치구조 안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분석했다. 제Ⅲ편에서는 문무 양반의 실체와 그 역사적 성격을 논하였다. 고려시대의 정치제도에 대해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연구한 저술이다.
고려정치제도사연구 (高麗政治制度史硏究)
『고려정치제도사연구』는 1971년 변태섭이 고려시대 정치제도에 관하여 논술한 학술서이다. 저자가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들을 묶어 일조각에서 간행하였다. 제Ⅰ편 중앙의 정치제도, 제Ⅱ편 지방의 정치제도, 제Ⅲ편 고려의 양반제도로 구분되며, 각 편에 논문 4편씩이 수록되어 있다. 제Ⅰ편에서는 중앙 정치제도의 통치 권력 구조 및 조직의 문제를, 제Ⅱ편에서는 고려의 외관제가 전체 통치구조 안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분석했다. 제Ⅲ편에서는 문무 양반의 실체와 그 역사적 성격을 논하였다. 고려시대의 정치제도에 대해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연구한 저술이다.
조선시대 서원의 경영·유지에 필요한 경비를 조달하기 위해 설정된 토지.
서원전 (書院田)
조선시대 서원의 경영·유지에 필요한 경비를 조달하기 위해 설정된 토지.
북진 정책은 북방으로 나라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하여 고려와 조선시대에 추진되었던 대외정책이다. 고려는 고구려의 옛 땅을 회복하기 위해 국초부터 북방진출을 모색하였다. 거란의 남침을 계기로 서북면에 강동육주를 설치하여 압록강을 국경선으로 확정하였다. 동북면의 국경도 윤관의 여진 토벌과 동북 9성 축조에 힘입어 영흥지방에서 함흥평야까지 확장되었다. 조선은 종성·온성·회령·경원·경흥·부령의 육진(六鎭)을 설치하여 두만강을 국경으로 삼았다. 그리고 압록강 상류의 여진을 정벌하여 여연·자성·무창·우예 사군(四郡)을 설치하였다.
북진 정책 (北進 政策)
북진 정책은 북방으로 나라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하여 고려와 조선시대에 추진되었던 대외정책이다. 고려는 고구려의 옛 땅을 회복하기 위해 국초부터 북방진출을 모색하였다. 거란의 남침을 계기로 서북면에 강동육주를 설치하여 압록강을 국경선으로 확정하였다. 동북면의 국경도 윤관의 여진 토벌과 동북 9성 축조에 힘입어 영흥지방에서 함흥평야까지 확장되었다. 조선은 종성·온성·회령·경원·경흥·부령의 육진(六鎭)을 설치하여 두만강을 국경으로 삼았다. 그리고 압록강 상류의 여진을 정벌하여 여연·자성·무창·우예 사군(四郡)을 설치하였다.
사원전은 사원(寺院)의 운용재원으로 지급, 설치된 토지이다. 사위전(寺位田)·사전(寺田)·사사전(寺社田)이라고도 한다. 사원경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불교신도가 토지를 사원에 기부하는 행위를 통해 점점 늘어났을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시대에는 양적 규모가 크게 팽창하여 전국 토지의 6분의 1이 사원전이었다고 한다. 특히 면세의 특혜가 부여되고, 요역이 면제되었기 때문에 일반 농민이 사원에 기진(寄進)하고 승려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반면에 조선시대에는 종교적 특권이 인정되지 않아 전조(田租)·요역·공물 등을 부담하는 토지의 종목으로 변하였다.
사원전 (寺院田)
사원전은 사원(寺院)의 운용재원으로 지급, 설치된 토지이다. 사위전(寺位田)·사전(寺田)·사사전(寺社田)이라고도 한다. 사원경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불교신도가 토지를 사원에 기부하는 행위를 통해 점점 늘어났을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시대에는 양적 규모가 크게 팽창하여 전국 토지의 6분의 1이 사원전이었다고 한다. 특히 면세의 특혜가 부여되고, 요역이 면제되었기 때문에 일반 농민이 사원에 기진(寄進)하고 승려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반면에 조선시대에는 종교적 특권이 인정되지 않아 전조(田租)·요역·공물 등을 부담하는 토지의 종목으로 변하였다.
1232년(고종 19) 어사대 조예(皂隷) 이통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반란.
이통의 난 (李通의 亂)
1232년(고종 19) 어사대 조예(皂隷) 이통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반란.
고려 후기에, 좌상시, 대사헌, 문하평리 등을 역임한 문신.
전녹생 (田祿生)
고려 후기에, 좌상시, 대사헌, 문하평리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후기에, 첨의평리, 첨의찬성사 등을 역임한 문신.
전윤장 (全允臧)
고려 후기에, 첨의평리, 첨의찬성사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후기 대장군으로 김사미와 효심의 난을 토벌한 관리. 무신.
전존걸 (全存傑)
고려후기 대장군으로 김사미와 효심의 난을 토벌한 관리. 무신.
고려 전기에, 동북면행영병마사, 문하시랑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
임간 (林幹)
고려 전기에, 동북면행영병마사, 문하시랑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후기에, 동지밀직사사, 밀직사, 첨의찬성사 등을 역임한 문신.
장자온 (張子溫)
고려 후기에, 동지밀직사사, 밀직사, 첨의찬성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성준이 우리나라 중세의 정치법제사에 관해 저술하여 1985년에 간행한 학술서.
한국중세정치법제사연구 (韓國中世政治法制史硏究)
김성준이 우리나라 중세의 정치법제사에 관해 저술하여 1985년에 간행한 학술서.
토지제도는 토지의 이용·관리·거래·소유 등에 관련된 제도이다. 농업 사회이던 전통시대에 국가 경영을 위한 조세 수입과 백성들의 생활 안정을 위해서는 합리적 토지제도가 마련되어야 했다. 그리하여 왕조가 교체될 때마다 정전제, 전시과, 과전법 등 새로운 토지제도를 정비하여 안정을 도모했으나 결국은 토지겸병 및 과도한 수탈로 나라가 위기에 빠지는 경험을 되풀이해 왔다. 현재는 산업구조의 고도화, 도시화의 촉진에 따라 농경지보다는 택지 산업·상업용지로서 토지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토지제도 정비는 이러한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이루어지고 있다.
토지제도 (土地制度)
토지제도는 토지의 이용·관리·거래·소유 등에 관련된 제도이다. 농업 사회이던 전통시대에 국가 경영을 위한 조세 수입과 백성들의 생활 안정을 위해서는 합리적 토지제도가 마련되어야 했다. 그리하여 왕조가 교체될 때마다 정전제, 전시과, 과전법 등 새로운 토지제도를 정비하여 안정을 도모했으나 결국은 토지겸병 및 과도한 수탈로 나라가 위기에 빠지는 경험을 되풀이해 왔다. 현재는 산업구조의 고도화, 도시화의 촉진에 따라 농경지보다는 택지 산업·상업용지로서 토지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토지제도 정비는 이러한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이루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