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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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양군은 고려시대 경군(京軍)인 이군 육위(二軍六衛) 중의 한 군단이다. 용호군과 함께 2군을 구성하고 있으며, 설치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현종 때로 보인다. 이는 궁성을 시위하는 친위군으로서, 용호군이 2령을 보유한 데 비하여 1령이었다. 국왕의 시위군으로 견룡군, 공학군, 중금군, 순검군, 내순검군 등의 금군(禁軍)도 무신정권의 성립을 전후하여 자주 출현하였으며, 2군과 달리 금위(禁衛)라는 별도 편제로 이해되기도 한다. 응양군의 상장군은 반주(班主)라 하여 이군 육위의 상장군·대장군으로 구성되는 중방 회의의 의장이 되었다.
응양군 (鷹揚軍)
응양군은 고려시대 경군(京軍)인 이군 육위(二軍六衛) 중의 한 군단이다. 용호군과 함께 2군을 구성하고 있으며, 설치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현종 때로 보인다. 이는 궁성을 시위하는 친위군으로서, 용호군이 2령을 보유한 데 비하여 1령이었다. 국왕의 시위군으로 견룡군, 공학군, 중금군, 순검군, 내순검군 등의 금군(禁軍)도 무신정권의 성립을 전후하여 자주 출현하였으며, 2군과 달리 금위(禁衛)라는 별도 편제로 이해되기도 한다. 응양군의 상장군은 반주(班主)라 하여 이군 육위의 상장군·대장군으로 구성되는 중방 회의의 의장이 되었다.
교위는 고려·조선 초기의 무반 관직이다. 일명 오위(伍尉) 또는 위(尉)라고도 하며, 50명으로 편성된 오(伍)라는 단위 부대의 지휘관이다. 경군(京軍)인 이군 육위(二軍六衛)의 각 영(領)과 동북 양계(兩界)에 설치된 주진군(州鎭軍)에 배속되어 있었다. 교위는 자신들의 협의 기관인 교위방(校尉房)을 갖고 있었다. 교위는 전시과 규정에 따라 15결의 전지(田地)와 8결의 시지(柴地)를 받았으며, 23석 5두의 녹봉도 지급 받았다. 교위는 정9품의 무반 관직이지만 문반의 권무관이 관인으로 인정받는 것과 달리 이에 포함되지 못하였다.
교위 (校尉)
교위는 고려·조선 초기의 무반 관직이다. 일명 오위(伍尉) 또는 위(尉)라고도 하며, 50명으로 편성된 오(伍)라는 단위 부대의 지휘관이다. 경군(京軍)인 이군 육위(二軍六衛)의 각 영(領)과 동북 양계(兩界)에 설치된 주진군(州鎭軍)에 배속되어 있었다. 교위는 자신들의 협의 기관인 교위방(校尉房)을 갖고 있었다. 교위는 전시과 규정에 따라 15결의 전지(田地)와 8결의 시지(柴地)를 받았으며, 23석 5두의 녹봉도 지급 받았다. 교위는 정9품의 무반 관직이지만 문반의 권무관이 관인으로 인정받는 것과 달리 이에 포함되지 못하였다.
대정은 고려시대 무반 품외직으로, 경군인 2군 6위(二軍六衛)의 종9품 하급 지휘관이다. 이들은 25명으로 구성된 단위부대인 대(隊)의 장(長)이다. 1,000명으로 구성된 1령(領)에는 40명의 대정이 있었으며, 2군 6위의 경군은 45령으로 구성되었으므로 1,125명의 대정이 있었다. 한편 주현군인 일품군에도 대정이 편성되어 있었으며, 부병정(副兵正) · 부창정(副倉正) · 부호정(副戶正) · 제단정(諸壇正)급의 향리가 임명되었다. 중방, 장군방, 낭장방, 교위방처럼 자신들의 회의기구인 대정방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정 (隊正)
대정은 고려시대 무반 품외직으로, 경군인 2군 6위(二軍六衛)의 종9품 하급 지휘관이다. 이들은 25명으로 구성된 단위부대인 대(隊)의 장(長)이다. 1,000명으로 구성된 1령(領)에는 40명의 대정이 있었으며, 2군 6위의 경군은 45령으로 구성되었으므로 1,125명의 대정이 있었다. 한편 주현군인 일품군에도 대정이 편성되어 있었으며, 부병정(副兵正) · 부창정(副倉正) · 부호정(副戶正) · 제단정(諸壇正)급의 향리가 임명되었다. 중방, 장군방, 낭장방, 교위방처럼 자신들의 회의기구인 대정방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병관은 고려시대, 무선(武選) · 군무(軍務) · 의위(儀衛) · 우역(郵驛)을 담당하였던 관청이다. 『고려사』에 따르면 918년(태조 1)에 병부를 두었으며, 후에 병관으로 고쳤다고 하였다. 병부는 신라 이래로 태봉의 것을 계승한 것이다. 병관이라고 칭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982년(성종 1)에 상서도성의 전신인 어사도성이 설치된 것에 미루어 이때 고친 것으로 추정된다. 어사도성 아래에 선관, 병관, 민관, 형관, 예관, 공관 등 6관이 설치되고, 병관에는 어사, 시랑, 낭중, 원외랑 등의 관원을 두었다.
병관 (兵官)
병관은 고려시대, 무선(武選) · 군무(軍務) · 의위(儀衛) · 우역(郵驛)을 담당하였던 관청이다. 『고려사』에 따르면 918년(태조 1)에 병부를 두었으며, 후에 병관으로 고쳤다고 하였다. 병부는 신라 이래로 태봉의 것을 계승한 것이다. 병관이라고 칭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982년(성종 1)에 상서도성의 전신인 어사도성이 설치된 것에 미루어 이때 고친 것으로 추정된다. 어사도성 아래에 선관, 병관, 민관, 형관, 예관, 공관 등 6관이 설치되고, 병관에는 어사, 시랑, 낭중, 원외랑 등의 관원을 두었다.
병마사는 고려시대, 양계(兩界) 지역에 파견되어 군사와 민사행정을 총괄하던 지방 장관이다. 989년(성종 8)에 설치되었다. 양계에는 각각 안북대도호부와 안변도호부를 두었고, 그 밑에 방어주와 진이 설치되었다. 주에는 방어사가, 진에는 진장이 파견되었고, 병마사는 주진제로 편성된 양계를 일원적으로 통할하였다. 병마사기구에는 3품으로 병마사와 지병마사, 4품관인 병마부사, 5품 내지 6품인 병마판관, 그리고 병마녹사가 설치되었다. 몽골 침입과 그 지배로 양계는 점차 일반 행정구역인 주현으로 개편되고 장관이 도관찰출척사로 바뀌었다.
병마사 (兵馬使)
병마사는 고려시대, 양계(兩界) 지역에 파견되어 군사와 민사행정을 총괄하던 지방 장관이다. 989년(성종 8)에 설치되었다. 양계에는 각각 안북대도호부와 안변도호부를 두었고, 그 밑에 방어주와 진이 설치되었다. 주에는 방어사가, 진에는 진장이 파견되었고, 병마사는 주진제로 편성된 양계를 일원적으로 통할하였다. 병마사기구에는 3품으로 병마사와 지병마사, 4품관인 병마부사, 5품 내지 6품인 병마판관, 그리고 병마녹사가 설치되었다. 몽골 침입과 그 지배로 양계는 점차 일반 행정구역인 주현으로 개편되고 장관이 도관찰출척사로 바뀌었다.
간수군은 고려시대, 금오위(金吾衛)나 감문위(監門衛)에 소속되어 관청, 창고, 사원 등을 수비하던 군사이다. 또한 벌채 및 화재를 감시하거나 능을 돌보기도 하였다. 『고려사』 병지 2 숙위조와 별도로 병지 3 간수군조가 기술된 것은 부대를 배치하는 일이 항상 이루어졌고 주요 시설 감시는 국왕의 숙위와는 별도의 임무였기 때문이었다. 총 101개 관청에 배치되었고, 장상 4인, 잡직장상 6인, 장교 84인, 잡직장교 96인, 산직장교 64인, 산직장상 14인, 군인 109인, 감문위군 10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간수군 (看守軍)
간수군은 고려시대, 금오위(金吾衛)나 감문위(監門衛)에 소속되어 관청, 창고, 사원 등을 수비하던 군사이다. 또한 벌채 및 화재를 감시하거나 능을 돌보기도 하였다. 『고려사』 병지 2 숙위조와 별도로 병지 3 간수군조가 기술된 것은 부대를 배치하는 일이 항상 이루어졌고 주요 시설 감시는 국왕의 숙위와는 별도의 임무였기 때문이었다. 총 101개 관청에 배치되었고, 장상 4인, 잡직장상 6인, 장교 84인, 잡직장교 96인, 산직장교 64인, 산직장상 14인, 군인 109인, 감문위군 10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장군방은 고려시대, 2군6위(二軍六衛)의 정4품 무관직인 장군들의 회의 기구이다. 총 45명의 장군들이 있었다. 상장군 · 대장군들의 합좌 기구인 중방과 대비되며 여기서의 결정 사항을 저지한다고 할 정도로 독자적인 지위를 가졌다. 설치 시기는 무신정권의 설립 이후 출현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조선 초까지 이어져 1400년(정종 2)에 폐지되었으며, 의체를 총괄하는 방주(房主)와 실무를 집행하는 장무관(掌務官)이 있었다. 호군으로 바뀐 뒤에는 호군방으로 불리었다. 지정된 촌락에서 조세를 수취하여 사용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장군방 (將軍房)
장군방은 고려시대, 2군6위(二軍六衛)의 정4품 무관직인 장군들의 회의 기구이다. 총 45명의 장군들이 있었다. 상장군 · 대장군들의 합좌 기구인 중방과 대비되며 여기서의 결정 사항을 저지한다고 할 정도로 독자적인 지위를 가졌다. 설치 시기는 무신정권의 설립 이후 출현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조선 초까지 이어져 1400년(정종 2)에 폐지되었으며, 의체를 총괄하는 방주(房主)와 실무를 집행하는 장무관(掌務官)이 있었다. 호군으로 바뀐 뒤에는 호군방으로 불리었다. 지정된 촌락에서 조세를 수취하여 사용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행영병마사는 고려시대에 변방에 외침이나 변란이 발생하였을 때 파견되었던 기구이자 관직이다. 처음에는 대번병마(大番兵馬)라고 하였다가 행영도통사(行營都統使)를 거쳐 1047년(문종1)에 행영병마사로 개칭되었다. 재신이 임명되기도 하였으나 추밀과 직사3품관이 파견되었으며, 위로 행영병마판사(行營兵馬判事)가 있고 아래로 지행영병마사(知行營兵馬事), 행영병마부사(行營兵馬副使), 행영병마판관(行營兵馬判官), 행영병마녹사(行營兵馬綠事), 행영병마별감(行營兵馬別監) 등이 설치되었다.
행영병마사 (行營兵馬使)
행영병마사는 고려시대에 변방에 외침이나 변란이 발생하였을 때 파견되었던 기구이자 관직이다. 처음에는 대번병마(大番兵馬)라고 하였다가 행영도통사(行營都統使)를 거쳐 1047년(문종1)에 행영병마사로 개칭되었다. 재신이 임명되기도 하였으나 추밀과 직사3품관이 파견되었으며, 위로 행영병마판사(行營兵馬判事)가 있고 아래로 지행영병마사(知行營兵馬事), 행영병마부사(行營兵馬副使), 행영병마판관(行營兵馬判官), 행영병마녹사(行營兵馬綠事), 행영병마별감(行營兵馬別監) 등이 설치되었다.
고려시대 별호제반(別號諸班)을 구성하던 특수병종.
도탕 (跳蕩)
고려시대 별호제반(別號諸班)을 구성하던 특수병종.
고려시대 강한 활을 사용하던 부대.
경궁 (梗弓)
고려시대 강한 활을 사용하던 부대.
활쏘기를 특기로 가진 별무반을 구성하던 특수부대.
사궁 (射弓)
활쏘기를 특기로 가진 별무반을 구성하던 특수부대.
고려시대 노(弩)와 관련된 병종.
강노 (剛弩)
고려시대 노(弩)와 관련된 병종.
고려시대 별호제반(別號諸班)을 구성하던 부대의 하나로 돌을 무기로 사용하던 병종.
석투 (石投)
고려시대 별호제반(別號諸班)을 구성하던 부대의 하나로 돌을 무기로 사용하던 병종.
고려시대 별호제반(別號諸班)을 구성하던 특수병종으로 화공(火攻)과 관련된 부대.
발화 (發火)
고려시대 별호제반(別號諸班)을 구성하던 특수병종으로 화공(火攻)과 관련된 부대.
고려시대 별호제반(別號諸班)을 구성하던 특수병종의 하나.
철수 (鐵水)
고려시대 별호제반(別號諸班)을 구성하던 특수병종의 하나.
고려시대 금군(禁軍)을 구성하던 부대의 하나.
중금 (中禁)
고려시대 금군(禁軍)을 구성하던 부대의 하나.
고려시대 금군(禁軍)을 구성하던 부대.
백갑 (白甲)
고려시대 금군(禁軍)을 구성하던 부대.
고려시대 정6품의 무관직인 낭장(郞將)들의 합좌기구.
낭장방 (郎將房)
고려시대 정6품의 무관직인 낭장(郞將)들의 합좌기구.
고려시대 정8품의 무반직인 산원(散員)들의 합좌기구.
산원방 (散員房)
고려시대 정8품의 무반직인 산원(散員)들의 합좌기구.
고려시대 무반 정9품직인 교위(校尉)들의 합좌기구.
교위방 (校尉房)
고려시대 무반 정9품직인 교위(校尉)들의 합좌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