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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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명절지화는 고동기나 도자기에 꽃가지·과일·채소 등을 곁들인 일종의 정물 그림이다. 기명절지도라고도 한다. 중국의 청공도나 박고도에 연원을 둔 것으로, 조선 말기 화가 장승업이 청대 양주와 상해에서 유행하던 개성적인 기명 및 화훼 그림을 수용하여 창안한 새로운 형식의 그림이다. 학식 있는 문인의 품격을 나타내는 고동기, 부귀·장수·다남 등 길상적인 의미를 가진 꽃, 과일, 괴석 등을 함께 그림으로써, 궁중에서 민간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인기를 얻었다. 문인·사대부들의 서화골동취미와 대중들의 기복적·장식적 욕구를 결합시켜 발전시킨 한국 독자의 장르이다.
기명절지화 (器皿折枝畵)
기명절지화는 고동기나 도자기에 꽃가지·과일·채소 등을 곁들인 일종의 정물 그림이다. 기명절지도라고도 한다. 중국의 청공도나 박고도에 연원을 둔 것으로, 조선 말기 화가 장승업이 청대 양주와 상해에서 유행하던 개성적인 기명 및 화훼 그림을 수용하여 창안한 새로운 형식의 그림이다. 학식 있는 문인의 품격을 나타내는 고동기, 부귀·장수·다남 등 길상적인 의미를 가진 꽃, 과일, 괴석 등을 함께 그림으로써, 궁중에서 민간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인기를 얻었다. 문인·사대부들의 서화골동취미와 대중들의 기복적·장식적 욕구를 결합시켜 발전시킨 한국 독자의 장르이다.
조선미술가협회는 1941년에 조직된 친일 미술 단체이다. 1941년 2월 경성에서 활동하던 미술가 20여 명이 창립한 경성미술가협회의 후신이다. 결성 당시 회장은 조선총독부 학무국장인 시오하라 도키사부로였다. 내선일체의 정신을 토대로 조선총독부 관료, 조선인 미술가, 재조선 일본인 미술가를 망라하여 결성된 반관반민 단체이다. 징병제 실시나 대동아전쟁 등을 주제로 전람회를 열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전쟁 의식을 고양하고 황국신민의식을 고취하는 역할을 했다. 전시체제가 강화되던 일제강점기 말기 선전 선동 미술의 주축으로 기능하였다.
조선미술가협회 (朝鮮美術家協會)
조선미술가협회는 1941년에 조직된 친일 미술 단체이다. 1941년 2월 경성에서 활동하던 미술가 20여 명이 창립한 경성미술가협회의 후신이다. 결성 당시 회장은 조선총독부 학무국장인 시오하라 도키사부로였다. 내선일체의 정신을 토대로 조선총독부 관료, 조선인 미술가, 재조선 일본인 미술가를 망라하여 결성된 반관반민 단체이다. 징병제 실시나 대동아전쟁 등을 주제로 전람회를 열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전쟁 의식을 고양하고 황국신민의식을 고취하는 역할을 했다. 전시체제가 강화되던 일제강점기 말기 선전 선동 미술의 주축으로 기능하였다.
해방 이후 「꽃과 두개골」·「모자」·「해바라기」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한묵 (韓默)
해방 이후 「꽃과 두개골」·「모자」·「해바라기」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천경자는 광복 이후 「생태」 등을 그린 화가이다. 일본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에서 유학하고 1943년, 1944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51년 수십 마리의 뱀이 뒤엉킨 모습의 「생태」로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1960년대에 설화와 상상의 세계를 거친 마티에르 효과를 내는 등의 기법으로 표현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화려하고 낭만적인 여성인물화를 완성하였다. 천경자는 자전적인 주제와 화려한 채색 기법으로 독자적인 양식을 확립하였고 전통적인 한국화의 범주에서 벗어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였다.
천경자 (千鏡子)
천경자는 광복 이후 「생태」 등을 그린 화가이다. 일본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에서 유학하고 1943년, 1944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51년 수십 마리의 뱀이 뒤엉킨 모습의 「생태」로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1960년대에 설화와 상상의 세계를 거친 마티에르 효과를 내는 등의 기법으로 표현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화려하고 낭만적인 여성인물화를 완성하였다. 천경자는 자전적인 주제와 화려한 채색 기법으로 독자적인 양식을 확립하였고 전통적인 한국화의 범주에서 벗어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였다.
정열렬은 해방 이후 「작품67-5」·「적멸83-P3」·「죽음보다 더한 아픔」 등을 그린 서양화가이다. 1934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나서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였다. ‘한국현대작가초대전’(1959~1968), ‘악뛰엘전’(1964) 등에 참가하며 한국 추상미술운동을 주도하였다. 대표작인 <적멸> 연작은 캔버스에 그려진 유화 작업과 직접 만든 한지 작업으로 재료의 물성과 동양적인 주제를 결합시키고 있다. 정영렬은 1950년대 말부터 한국화단에 유입된 다양한 추상미술을 수용하면서도, 한국적인 주제, 소재, 기법을 탐구해 독자적인 추상회화를 완성하였다.
정영렬 (鄭永烈)
정열렬은 해방 이후 「작품67-5」·「적멸83-P3」·「죽음보다 더한 아픔」 등을 그린 서양화가이다. 1934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나서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였다. ‘한국현대작가초대전’(1959~1968), ‘악뛰엘전’(1964) 등에 참가하며 한국 추상미술운동을 주도하였다. 대표작인 <적멸> 연작은 캔버스에 그려진 유화 작업과 직접 만든 한지 작업으로 재료의 물성과 동양적인 주제를 결합시키고 있다. 정영렬은 1950년대 말부터 한국화단에 유입된 다양한 추상미술을 수용하면서도, 한국적인 주제, 소재, 기법을 탐구해 독자적인 추상회화를 완성하였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대한민국 예술원상 심사위원 등을 역임한 조각가.
민복진 (閔福鎭)
해방 이후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대한민국 예술원상 심사위원 등을 역임한 조각가.
류인은 해방 이후 「파란 Ⅰ」, 「흙: 난지도」, 「급행열차: 시대의 변」 등의 작품을 낸 조각가이다. 1983년부터 홍익조각회전, 대한민국미술대전에 출품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80년대에는 기하학적인 입방체와 사실적인 인체를 결합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1991년 개인전에서 조각과 설치 미술을 결합한 작품과 인간 군상을 전시해 주목받았다. 1983년, 1988년, 1990년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특선과 우수상을 수상했다. 류인은 해부학적 탐구에 기초한 인체 조각과 인간과 사회에 대한 성찰을 담은 설치 작품으로 1990년대 구상 조각계를 주도했다.
류인 (柳仁)
류인은 해방 이후 「파란 Ⅰ」, 「흙: 난지도」, 「급행열차: 시대의 변」 등의 작품을 낸 조각가이다. 1983년부터 홍익조각회전, 대한민국미술대전에 출품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80년대에는 기하학적인 입방체와 사실적인 인체를 결합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1991년 개인전에서 조각과 설치 미술을 결합한 작품과 인간 군상을 전시해 주목받았다. 1983년, 1988년, 1990년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특선과 우수상을 수상했다. 류인은 해부학적 탐구에 기초한 인체 조각과 인간과 사회에 대한 성찰을 담은 설치 작품으로 1990년대 구상 조각계를 주도했다.
「탐구」·「화음」은 한국화가 이유태가 1944년 제작한 두 폭의 여성인물화이다. 종이 바탕에 채색으로 「탐구」는 세로 212㎝, 가로 153㎝, 「화음」은 세로 210㎝, 가로 148.5㎝이다. 두 작품은 이유태가 1944년 제23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인물화 기일 화운」, 「인물화 기이 탐구」로 함께 출품하여 특선을 수상한 작품이다. 실험실에 앉아있는 여인을 그린 「탐구」와 음악실에 앉아 있는 여인을 그린 「화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그림은 조선의 전통적인 인물화법과 신일본화의 화사한 채색화법을 결합한 신감각풍의 근대 채색인물화를 보여준다.
탐구·화음 (探究·和音)
「탐구」·「화음」은 한국화가 이유태가 1944년 제작한 두 폭의 여성인물화이다. 종이 바탕에 채색으로 「탐구」는 세로 212㎝, 가로 153㎝, 「화음」은 세로 210㎝, 가로 148.5㎝이다. 두 작품은 이유태가 1944년 제23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인물화 기일 화운」, 「인물화 기이 탐구」로 함께 출품하여 특선을 수상한 작품이다. 실험실에 앉아있는 여인을 그린 「탐구」와 음악실에 앉아 있는 여인을 그린 「화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그림은 조선의 전통적인 인물화법과 신일본화의 화사한 채색화법을 결합한 신감각풍의 근대 채색인물화를 보여준다.
「군상」 연작은 이응노가 1980년대에 제작한 인물화 연작이다. 화면 속에 다른 대상 없이 인간만 그렸기 때문에 「인간」 연작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군상」 연작 속 사람들의 모습은 몇 개의 선으로만 그려져 있다. 표정이나 입체감 없이 빠른 필치로 사람들의 몸짓만 표현되어 있다. 「군상」 연작에 그려지는 인물의 수는 작품에 따라서 한두 명에서 수백 명까지 이른다. 수많은 사람들이 화면 가득 채워진 작품들은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집중적으로 제작되었다. 「군상」 연작은 한국의 시대정신과 민족의식을 표출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군상 연작 (群像 聯作)
「군상」 연작은 이응노가 1980년대에 제작한 인물화 연작이다. 화면 속에 다른 대상 없이 인간만 그렸기 때문에 「인간」 연작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군상」 연작 속 사람들의 모습은 몇 개의 선으로만 그려져 있다. 표정이나 입체감 없이 빠른 필치로 사람들의 몸짓만 표현되어 있다. 「군상」 연작에 그려지는 인물의 수는 작품에 따라서 한두 명에서 수백 명까지 이른다. 수많은 사람들이 화면 가득 채워진 작품들은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집중적으로 제작되었다. 「군상」 연작은 한국의 시대정신과 민족의식을 표출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서양화가 유영국(劉永國)이 1940년에 그린 추상화.
작품 (作品)
서양화가 유영국(劉永國)이 1940년에 그린 추상화.
일본에서 활동한 재일한인 미술가 조양규(曺良奎)가 그린 서양화.
31번 창고 (三十一番 倉庫)
일본에서 활동한 재일한인 미술가 조양규(曺良奎)가 그린 서양화.
파란은 서양화가 주경(朱慶)이 그린 추상화이다. 캔버스에 그린 유채화이다. 세로 53.5㎝, 가로 43.5㎝로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파란’은 여러 가지 어려움이나 시련을 의미한다. 제목처럼 이 그림은 많은 직선과 곡선이 복잡하게 교차하고 강렬한 색채가 대비되면서 위급하고 불안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주경은 고희동으로부터 그림을 배웠고 1923년에 18세의 나이로 이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추상화로서 의미가 있으며, 1920~30년대 추상화의 전개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작품이다.
파란 (波瀾)
파란은 서양화가 주경(朱慶)이 그린 추상화이다. 캔버스에 그린 유채화이다. 세로 53.5㎝, 가로 43.5㎝로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파란’은 여러 가지 어려움이나 시련을 의미한다. 제목처럼 이 그림은 많은 직선과 곡선이 복잡하게 교차하고 강렬한 색채가 대비되면서 위급하고 불안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주경은 고희동으로부터 그림을 배웠고 1923년에 18세의 나이로 이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추상화로서 의미가 있으며, 1920~30년대 추상화의 전개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작품이다.
한국화가 이응노가 1945년에 그린 금강산 그림.
외금강 (外金剛)
한국화가 이응노가 1945년에 그린 금강산 그림.
해방 이후 「범일동 풍경」·「가족」·「외설악」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박고석 (朴古石)
해방 이후 「범일동 풍경」·「가족」·「외설악」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해방 이후 「음과 양」, 「극지로 가는 길」, 「도시」 등을 그린 서양화가, 판화가.
이성자 (李聖子)
해방 이후 「음과 양」, 「극지로 가는 길」, 「도시」 등을 그린 서양화가, 판화가.
해방 이후 「삼강행실도」·「능행도」·「한강전도」 등을 그린 화가. 한국화가·역사풍속화가.
김학수 (金學洙)
해방 이후 「삼강행실도」·「능행도」·「한강전도」 등을 그린 화가. 한국화가·역사풍속화가.
해방 이후 「나무숲 속의 새들」, 「안남비」, 「맥」 등을 그린 화가.
이현옥 (李賢玉)
해방 이후 「나무숲 속의 새들」, 「안남비」, 「맥」 등을 그린 화가.
일제강점기 고려화회,고려미술회를 조직하는데 참여한 화가. 서양화가.
박영래 (朴榮來)
일제강점기 고려화회,고려미술회를 조직하는데 참여한 화가. 서양화가.
일제강점기 「자화상」, 「추과」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월북화가.
윤자선 (尹子善)
일제강점기 「자화상」, 「추과」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월북화가.
1970년에서 1982년까지 김문호가 서울 명동에서 운영하였던 화랑.
명동화랑 (明洞畵廊)
1970년에서 1982년까지 김문호가 서울 명동에서 운영하였던 화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