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성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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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나성은 백제 수도 사비 도성을 보호하기 위한 외곽 방어 시설이며, 수도의 안팎을 구분하는 경계 역할을 하는 도성의 외곽성이다. 부소산성과 함께 백제가 사비로 천도하면서 가장 먼저 계획한 도성 시설물로 천도 이전부터 축조되기 시작하였다. 도성의 북동쪽을 감싸고 있으며, 지형에 따라 다양한 축조 공법이 적용되었다.
부여나성 (扶餘羅城)
부여나성은 백제 수도 사비 도성을 보호하기 위한 외곽 방어 시설이며, 수도의 안팎을 구분하는 경계 역할을 하는 도성의 외곽성이다. 부소산성과 함께 백제가 사비로 천도하면서 가장 먼저 계획한 도성 시설물로 천도 이전부터 축조되기 시작하였다. 도성의 북동쪽을 감싸고 있으며, 지형에 따라 다양한 축조 공법이 적용되었다.
부여 부소산성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북쪽에 위치한 부소산에 조성된 산성이다. 부소산에는 백제~조선시대까지 4개의 성벽이 확인된다. 백제 산성인 포곡식 성은 백제 사비기의 왕성, 배후 산성, 후원 등으로 여겨지며, 부여 나성과 함께 백제가 사비로 천도하면서 가장 먼저 계획된 도성 시설물로 천도 이전부터 축조되기 시작하였다. 충청남도 시도 유형 문화유산이다.
부여 부소산성 (扶餘 扶蘇山城)
부여 부소산성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북쪽에 위치한 부소산에 조성된 산성이다. 부소산에는 백제~조선시대까지 4개의 성벽이 확인된다. 백제 산성인 포곡식 성은 백제 사비기의 왕성, 배후 산성, 후원 등으로 여겨지며, 부여 나성과 함께 백제가 사비로 천도하면서 가장 먼저 계획된 도성 시설물로 천도 이전부터 축조되기 시작하였다. 충청남도 시도 유형 문화유산이다.
부여 석성산성(扶餘 石城山城)은 백제 사비도성의 남동쪽 외곽 관문을 방어하기 위하여 6세기 전반에 축조된 석축 산성이다. 성벽은 3중으로 축조되었다. 1차 성벽은 가장 외곽에 위치하며 그 둘레가 1,605m이며, 2차 성벽은 중앙에 위치하며 둘레가 751m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안쪽에 위치한 3차 성벽의 둘레는 607m이다. 성벽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큰 규모에서 작은 규모로 축소되면서 순차적으로 사용되었다.
부여 석성산성 (扶餘 石城山城)
부여 석성산성(扶餘 石城山城)은 백제 사비도성의 남동쪽 외곽 관문을 방어하기 위하여 6세기 전반에 축조된 석축 산성이다. 성벽은 3중으로 축조되었다. 1차 성벽은 가장 외곽에 위치하며 그 둘레가 1,605m이며, 2차 성벽은 중앙에 위치하며 둘레가 751m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안쪽에 위치한 3차 성벽의 둘레는 607m이다. 성벽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큰 규모에서 작은 규모로 축소되면서 순차적으로 사용되었다.
부여 가림성은 백제 후기 수도였던 사비 도성을 수호하기 위해 금강 하류 대안의 산정에 축조한 산성이다. 삼국사기에 501년 축조된 기록을 토대로 가림성으로 비정되고 있다. 백제 산성 중에서 옛 지명과 축성 연대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유일한 성이다. 성흥산 8부 능선에 설치된 테뫼식 산성으로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부여 가림성 (扶餘 加林城)
부여 가림성은 백제 후기 수도였던 사비 도성을 수호하기 위해 금강 하류 대안의 산정에 축조한 산성이다. 삼국사기에 501년 축조된 기록을 토대로 가림성으로 비정되고 있다. 백제 산성 중에서 옛 지명과 축성 연대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유일한 성이다. 성흥산 8부 능선에 설치된 테뫼식 산성으로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부여 청마산성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용정리 마을 주변의 오석산, 월명산, 청마산의 능선을 포곡식으로 감싸고 있는 백제 산성이다. 가림성, 석성산성과 함께 도성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으로 성벽의 둘레가 9,277m이며 백제 산성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사비 도성에서 공주와 논산 방면으로 향하는 주요 교통로상에 산성이 위치하고 있다. 사비 도성의 배후 산성으로 천도 이전에 축성되었다.
부여 청마산성 (扶餘 靑馬山城)
부여 청마산성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용정리 마을 주변의 오석산, 월명산, 청마산의 능선을 포곡식으로 감싸고 있는 백제 산성이다. 가림성, 석성산성과 함께 도성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으로 성벽의 둘레가 9,277m이며 백제 산성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사비 도성에서 공주와 논산 방면으로 향하는 주요 교통로상에 산성이 위치하고 있다. 사비 도성의 배후 산성으로 천도 이전에 축성되었다.
충주금릉동유적(忠州金陵洞遺蹟)은 충청북도 충주시 금릉동에 있는 구석기시대 유물 포함층을 비롯해 조선시대까지 여러 시대의 다양한 흔적이 남아 있는 복합유적이다. 후기 구석기시대 문화층과 함께 둥근바닥짧은목항아리와 말꼴띠쇠 등이 출토되는 마한 계통의 원삼국시대 시기 구덩무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어울무덤의 존재가 특징적이며, 유물 가운데 단접하여 만든 재갈은 북방 지역과의 문화적 연관성을 시사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충주세무서 건립으로 인해 조사되었으며, 현재 유적은 남아 있지 않다.
충주 금릉동 유적 (忠州 金陵洞 遺蹟)
충주금릉동유적(忠州金陵洞遺蹟)은 충청북도 충주시 금릉동에 있는 구석기시대 유물 포함층을 비롯해 조선시대까지 여러 시대의 다양한 흔적이 남아 있는 복합유적이다. 후기 구석기시대 문화층과 함께 둥근바닥짧은목항아리와 말꼴띠쇠 등이 출토되는 마한 계통의 원삼국시대 시기 구덩무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어울무덤의 존재가 특징적이며, 유물 가운데 단접하여 만든 재갈은 북방 지역과의 문화적 연관성을 시사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충주세무서 건립으로 인해 조사되었으며, 현재 유적은 남아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