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이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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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대동단에 입단하여 군자금을 모금하여 임시정부에 조달하는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강문진 (姜文鎭)
일제강점기 때, 대동단에 입단하여 군자금을 모금하여 임시정부에 조달하는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개항기 때, 경상북도 봉화에서 의병을 조직하였다가, 유인석 의진에 들어가 소토장으로 활동한 의병장.
금석주 (琴錫柱)
개항기 때, 경상북도 봉화에서 의병을 조직하였다가, 유인석 의진에 들어가 소토장으로 활동한 의병장.
대한제국기 때, 기삼연 중심의 호남창의회맹소에서 참모로 활약하다가 전라남도 장성의 탑정리전투에서 전사한 의병.
김봉수 (金鳳樹)
대한제국기 때, 기삼연 중심의 호남창의회맹소에서 참모로 활약하다가 전라남도 장성의 탑정리전투에서 전사한 의병.
1920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대진단 (大震團)
1920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대한제국기 때, 창의동맹단에서 부대장으로 활약한 의병장.
박갑쇠 (朴甲釗)
대한제국기 때, 창의동맹단에서 부대장으로 활약한 의병장.
1920년 8월 평안북도 벽동(碧潼)·창성(昌城) 두 군의 경계지점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벽창의용대 (碧昌義勇隊)
1920년 8월 평안북도 벽동(碧潼)·창성(昌城) 두 군의 경계지점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1920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
보합단 (普合團)
1920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
봉오동전투는 1920년 만주 봉오동에서 독립군 부대가 일본 정규군을 대패시킨 전투이다. 전투는 홍범도와 최진동이 이끄는 독립군이 일본군 헌병 국경초소를 습격·격파하면서 시작되었다. 일본군을 유인해 낸 독립군은 일본군 120명을 사살한 뒤 일본군을 계속 봉오동으로 유인하는 작전을 펼쳤다. 연합부대를 재편성하여 봉오동 계곡에 매복해 있던 독립군은 일본군이 포위망에 들어서자 일제히 사격을 퍼부어 일본 정규군 157명을 사살하고 200여 명의 부상자를 내었다. 이 압도적인 전승의 원인은 독립군의 앙양된 사기와 지휘관의 예지, 뛰어난 작전계획에 있었다.
봉오동전투 (鳳梧洞戰鬪)
봉오동전투는 1920년 만주 봉오동에서 독립군 부대가 일본 정규군을 대패시킨 전투이다. 전투는 홍범도와 최진동이 이끄는 독립군이 일본군 헌병 국경초소를 습격·격파하면서 시작되었다. 일본군을 유인해 낸 독립군은 일본군 120명을 사살한 뒤 일본군을 계속 봉오동으로 유인하는 작전을 펼쳤다. 연합부대를 재편성하여 봉오동 계곡에 매복해 있던 독립군은 일본군이 포위망에 들어서자 일제히 사격을 퍼부어 일본 정규군 157명을 사살하고 200여 명의 부상자를 내었다. 이 압도적인 전승의 원인은 독립군의 앙양된 사기와 지휘관의 예지, 뛰어난 작전계획에 있었다.
1919년 5월 3일 만주에 설립되었던 독립군 양성학교.
신흥무관학교 (新興武官學校)
1919년 5월 3일 만주에 설립되었던 독립군 양성학교.
1920년 10월 김좌진(金佐鎭)·나중소(羅仲昭)·이범석(李範奭)이 지휘하는 북로군정서군(北路軍政署軍)과 홍범도(洪範圖)가 이끄는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 등을 주력으로 한 독립군부대가 독립군 토벌을 위해 간도에 출병한 일본군을 청산리 일대에서 10여 회의 전투 끝에 대파한 전투.
청산리대첩 (靑山里大捷)
1920년 10월 김좌진(金佐鎭)·나중소(羅仲昭)·이범석(李範奭)이 지휘하는 북로군정서군(北路軍政署軍)과 홍범도(洪範圖)가 이끄는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 등을 주력으로 한 독립군부대가 독립군 토벌을 위해 간도에 출병한 일본군을 청산리 일대에서 10여 회의 전투 끝에 대파한 전투.
1919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태극단 (太極團)
1919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1919년 평안북도 지방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평북독판부 (平北督辦部)
1919년 평안북도 지방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