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이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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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1947년경 한경직 목사가 재임하고 있던 영락교회에서 설교한 내용을 기록한 개신교서.
건국과 기독교 (建國과 基督敎)
1946년~1947년경 한경직 목사가 재임하고 있던 영락교회에서 설교한 내용을 기록한 개신교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글리온선언은 1988년 11월 23일부터 25일까지 스위스 글리온(Glion)에서 협의한 선언이다. 한반도에서의 긴장완화와 평화를 구축하고 한민족의 통일을 평화적으로 이룩하는 과업에 대해 세계교회협의회(WCC)가 협의하였다. 서론에서는 이 선언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으며, 신앙적 결단에서는 하나님의 초월적 권위와 한민족의 과오를 고백하고 있다. 건의에서는 실천적 과제 8개의 합의사항을 명시하고 공동 노력을 다짐하였다. 글리온 선언은 남북한 어느 일방의 선언이 아닌 남북한 교회가 공동의 입장을 민간 차원에서 밝힌 최초의 공동선언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글리온선언 (韓半島의 平和와 統一을 위한 Glion宣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글리온선언은 1988년 11월 23일부터 25일까지 스위스 글리온(Glion)에서 협의한 선언이다. 한반도에서의 긴장완화와 평화를 구축하고 한민족의 통일을 평화적으로 이룩하는 과업에 대해 세계교회협의회(WCC)가 협의하였다. 서론에서는 이 선언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으며, 신앙적 결단에서는 하나님의 초월적 권위와 한민족의 과오를 고백하고 있다. 건의에서는 실천적 과제 8개의 합의사항을 명시하고 공동 노력을 다짐하였다. 글리온 선언은 남북한 어느 일방의 선언이 아닌 남북한 교회가 공동의 입장을 민간 차원에서 밝힌 최초의 공동선언이다.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관한 한국기독교회선언은 1988년 2월 29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제37차 총회에서 통일에 대한 한국기독교회의 의견을 우리 민족과 온 세계에 발표한 선언이다. 1981년 제4차 한독교회협의회에서 분단된 국가의 통일이 곧 교회의 과제임이 언급되었다. 1982년 한독교회협의회의 권고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통일문제연구원을 조직하였다. 이후 선언의 초안 작성, 수정안 작성, 공청회 등을 거쳐 1988년에 선언이 채택되었다. 선언의 주 내용은 통일 운동을 ‘민중 주체, 평화의 통일’로 규정하고, 인도주의에 입각해 평화 교류를 한다는 것이다.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관한 한국기독교회선언 (民族의 統一과 平和에 關한 韓國基督敎會宣言)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관한 한국기독교회선언은 1988년 2월 29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제37차 총회에서 통일에 대한 한국기독교회의 의견을 우리 민족과 온 세계에 발표한 선언이다. 1981년 제4차 한독교회협의회에서 분단된 국가의 통일이 곧 교회의 과제임이 언급되었다. 1982년 한독교회협의회의 권고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통일문제연구원을 조직하였다. 이후 선언의 초안 작성, 수정안 작성, 공청회 등을 거쳐 1988년에 선언이 채택되었다. 선언의 주 내용은 통일 운동을 ‘민중 주체, 평화의 통일’로 규정하고, 인도주의에 입각해 평화 교류를 한다는 것이다.
조국통일을 위한 북과 해외동포, 기독자간 대화는 1981년 11월 오스트리아 비엔나 하델스톨프 쉬바이쳐 하우스에서 개최된 남북한 및 해외 기독교인들 간의 첫 역사적 대화 모임이다. 1981년 6월 같은 분단국인 독일교회와 통일에 대한 대화 모임을 갖기로 결정하였다. 같은 해 11월 3일부터 6일까지 오스트리아에서 자주통일, 평화통일, 민족단결, 자치적 연합체 구성 등에 합의하였다. 한국교회는 이 모임을 종교행사를 가장한 친북인사들의 정치집회로 인식하였다. 남북 간 종교 교류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민간 차원에서 한반도의 통일 논의와 대화를 모색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조국통일을 위한 북과 해외동포, 기독자간 대화 (基督者間 對話|祖國統一을 위한 北과 海外同胞)
조국통일을 위한 북과 해외동포, 기독자간 대화는 1981년 11월 오스트리아 비엔나 하델스톨프 쉬바이쳐 하우스에서 개최된 남북한 및 해외 기독교인들 간의 첫 역사적 대화 모임이다. 1981년 6월 같은 분단국인 독일교회와 통일에 대한 대화 모임을 갖기로 결정하였다. 같은 해 11월 3일부터 6일까지 오스트리아에서 자주통일, 평화통일, 민족단결, 자치적 연합체 구성 등에 합의하였다. 한국교회는 이 모임을 종교행사를 가장한 친북인사들의 정치집회로 인식하였다. 남북 간 종교 교류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민간 차원에서 한반도의 통일 논의와 대화를 모색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김관석은 해방 이후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 총무, 기독교방송 사장 등을 역임한 목사, 사회운동가, 민주화 운동가, 에큐메니컬 운동가이다. 1922년 함경남도 함흥 출생으로, 일본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중 태평양전쟁에 징집되었다가 탈영 후 귀국했다. 함흥에서 목회를 하다가 월남해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68년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 총무로 선출되어 박정희 독재에 맞서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다. 기독교방송국 사장, 성서공회 이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2002년 별세하였다. 광주문제 해결을 위한 5·18특별법 제정 등에 노력한 공로로 2000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받았다.
김관석 (金觀錫)
김관석은 해방 이후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 총무, 기독교방송 사장 등을 역임한 목사, 사회운동가, 민주화 운동가, 에큐메니컬 운동가이다. 1922년 함경남도 함흥 출생으로, 일본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중 태평양전쟁에 징집되었다가 탈영 후 귀국했다. 함흥에서 목회를 하다가 월남해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68년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 총무로 선출되어 박정희 독재에 맞서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다. 기독교방송국 사장, 성서공회 이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2002년 별세하였다. 광주문제 해결을 위한 5·18특별법 제정 등에 노력한 공로로 2000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받았다.
강원도 홍천군 서면 한서로677에 위치한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교회.
한서교회 (翰西敎會)
강원도 홍천군 서면 한서로677에 위치한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교회.
구암교회는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영명길 22에 위치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 교회이다. 구암교회의 설립 시기에 대해서는 1893년 설, 1896년 설, 1899년 설이 있다. 이는 전킨과 드루 선교사의 선교활동 시작을 기점으로 삼느냐, 교회를 설립한 것을 기점으로 삼느냐에 따라 달라진 것이다. 1910년 오인묵이 장로로 장립되고, 1913년 김필수 목사가 구암교회 당회장을 겸했다. 1915년 구암교회 교인의 수는 499명으로 증가하였고, 군산 지방의 모교회로서 역할을 하였다. 2009년 새로 교회를 건축하여 ‘호남선교기념예배당’으로 명명하였다.
구암교회 (九巖敎會)
구암교회는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영명길 22에 위치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 교회이다. 구암교회의 설립 시기에 대해서는 1893년 설, 1896년 설, 1899년 설이 있다. 이는 전킨과 드루 선교사의 선교활동 시작을 기점으로 삼느냐, 교회를 설립한 것을 기점으로 삼느냐에 따라 달라진 것이다. 1910년 오인묵이 장로로 장립되고, 1913년 김필수 목사가 구암교회 당회장을 겸했다. 1915년 구암교회 교인의 수는 499명으로 증가하였고, 군산 지방의 모교회로서 역할을 하였다. 2009년 새로 교회를 건축하여 ‘호남선교기념예배당’으로 명명하였다.
1893년 강화에 첫 번째로 설립된 개신교 교회.
교산교회 (橋山敎會)
1893년 강화에 첫 번째로 설립된 개신교 교회.
홍의교회는 1896년 강화도에 두 번째로 세워진 교회이다. 1896년 훈장 박능일(朴能一)이 교산교회의 김상임을 만나고 돌아와 자기 집에서 예배를 드렸다. 초기 홍의교회 교인은 7명이었다. 이들은 성경에서 중요한 단어 7글자를 고르고, 돌림자로 한 일(一)을 선택하여 박능일, 권신일, 김경일 등으로 개명하였다. 1년 만에 교인 수가 80여 명에 이르자 토담집 예배당을 세웠다. 1935년 일제에 의해 교회가 폐쇄되었다. 1953년 교회를 재건하였다. 1982년 붉은 벽돌 예배당으로 새롭게 건축하였다. 2008년 역사전시실을 개설하였다.
홍의교회 (紅衣敎會)
홍의교회는 1896년 강화도에 두 번째로 세워진 교회이다. 1896년 훈장 박능일(朴能一)이 교산교회의 김상임을 만나고 돌아와 자기 집에서 예배를 드렸다. 초기 홍의교회 교인은 7명이었다. 이들은 성경에서 중요한 단어 7글자를 고르고, 돌림자로 한 일(一)을 선택하여 박능일, 권신일, 김경일 등으로 개명하였다. 1년 만에 교인 수가 80여 명에 이르자 토담집 예배당을 세웠다. 1935년 일제에 의해 교회가 폐쇄되었다. 1953년 교회를 재건하였다. 1982년 붉은 벽돌 예배당으로 새롭게 건축하였다. 2008년 역사전시실을 개설하였다.
1938년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에 설립된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소속 교회.
병촌 성결교회 (餠村 聖潔敎會)
1938년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에 설립된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소속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