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이일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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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가산산성은 내성, 외성, 중성의 복합식으로 축조된 성곽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 전국에 대대적으로 산성을 구축한 시기에 동래-한양 간 대로상 경상도 최적의 요충지에 지어진 명실상부한 ‘영남 제일 관방’이다. 1640년 내성을 1차적으로 완성하고, 1648년 중수를 통해 현재의 내성이 축조되었다. 1701년 외성, 1741년 내성의 가운데에 중성 벽을 완축하였다. 1971년 사적 제216호 지정되었고 1977년부터 2018년까지 남문, 동문, 중성문, 수문, 성벽 몸체 등의 성곽 보수 및 복원이 이루어졌다.
칠곡 가산산성 (漆谷 架山山城)
칠곡 가산산성은 내성, 외성, 중성의 복합식으로 축조된 성곽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 전국에 대대적으로 산성을 구축한 시기에 동래-한양 간 대로상 경상도 최적의 요충지에 지어진 명실상부한 ‘영남 제일 관방’이다. 1640년 내성을 1차적으로 완성하고, 1648년 중수를 통해 현재의 내성이 축조되었다. 1701년 외성, 1741년 내성의 가운데에 중성 벽을 완축하였다. 1971년 사적 제216호 지정되었고 1977년부터 2018년까지 남문, 동문, 중성문, 수문, 성벽 몸체 등의 성곽 보수 및 복원이 이루어졌다.
고성 소을비포 성지는 경상남도 고성군 하일면 동화리에 소재하는 남해안 지역 영진 보성으로, 1491년(성종 22년)에 초축된 후 조선 후기까지 수차례 수·개축이 이루어졌다. 이 성은 해안의 서쪽으로 뻗은 구릉 9부 능선상에 석축으로 축조되었다. 성지의 평면은 동서가 길고 남북이 짧으며, 동쪽에는 남쪽으로 관통하는 도로가 개설되면서 북쪽 벽과 남쪽 벽 일부가 훼손되었다. 성의 둘레는 330m이며, 잔존 최고 높이는 4m이다. 동·서·북문이 배치되어 있고 해자(황)와 치성이 확인된다. 고지도에는 여장이 표시되어 있다.
고성 소을비포 성지 (固城 所乙非浦 城址)
고성 소을비포 성지는 경상남도 고성군 하일면 동화리에 소재하는 남해안 지역 영진 보성으로, 1491년(성종 22년)에 초축된 후 조선 후기까지 수차례 수·개축이 이루어졌다. 이 성은 해안의 서쪽으로 뻗은 구릉 9부 능선상에 석축으로 축조되었다. 성지의 평면은 동서가 길고 남북이 짧으며, 동쪽에는 남쪽으로 관통하는 도로가 개설되면서 북쪽 벽과 남쪽 벽 일부가 훼손되었다. 성의 둘레는 330m이며, 잔존 최고 높이는 4m이다. 동·서·북문이 배치되어 있고 해자(황)와 치성이 확인된다. 고지도에는 여장이 표시되어 있다.
고현성(古縣城)은 경상남도 거제시 고현동에 있는 조선시대 읍성이다. 1664년 거제 관아를 거제면으로 이건하고 고현성(古縣城)이라 칭하였다. 둘레 1,430m, 높이 약 4m로 이루어졌으며, 평면 주형인 석축성으로 삼문에 옹성과 치성, 해자를 구비했다. 조선 문종 1년 11월에 성을 쌓기 시작하여, 단종 1년에 필축하였다. 1991년, 2004년 고현성 동문지와 해자에 대한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현재는 시청 주변의 땅을 매입하여 성벽의 일부가 복원되어 있다.
고현성 (古縣城)
고현성(古縣城)은 경상남도 거제시 고현동에 있는 조선시대 읍성이다. 1664년 거제 관아를 거제면으로 이건하고 고현성(古縣城)이라 칭하였다. 둘레 1,430m, 높이 약 4m로 이루어졌으며, 평면 주형인 석축성으로 삼문에 옹성과 치성, 해자를 구비했다. 조선 문종 1년 11월에 성을 쌓기 시작하여, 단종 1년에 필축하였다. 1991년, 2004년 고현성 동문지와 해자에 대한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현재는 시청 주변의 땅을 매입하여 성벽의 일부가 복원되어 있다.
기장읍성(機張邑城)은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의 동부리, 서부리, 대라리 일대에 걸쳐 있는 조선 전기의 석축 읍성이다. 현재 둘레 약 1000m, 높이 최고 약 4m 정도의 돌로 된 성벽이 남아 있으며, 성문 2개소, 치성 2개소, 서벽과 남벽을 둘러싼 해자가 확인된다. 주형의 평산성으로 북쪽은 낮은 동산을 끼고 있고 남쪽은 평지이다. 성내 동헌 및 객사지 등이 일부 확인되었고 장관청은 복원되었다. 부산광역시 기념물이다.
기장읍성 (機張邑城)
기장읍성(機張邑城)은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의 동부리, 서부리, 대라리 일대에 걸쳐 있는 조선 전기의 석축 읍성이다. 현재 둘레 약 1000m, 높이 최고 약 4m 정도의 돌로 된 성벽이 남아 있으며, 성문 2개소, 치성 2개소, 서벽과 남벽을 둘러싼 해자가 확인된다. 주형의 평산성으로 북쪽은 낮은 동산을 끼고 있고 남쪽은 평지이다. 성내 동헌 및 객사지 등이 일부 확인되었고 장관청은 복원되었다. 부산광역시 기념물이다.
당포성은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에 소재하는 조선 시대 남해안 지역 영진보성(營鎭堡城)이다. 고려 공민왕 때 최영 장군이 축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잔존 체성 축조 수법 및 부대시설 등을 볼 때 조선 시대 성종 당시 축조한 남해안 지역 영진보성 중 하나이다. 잔존 성의 둘레는 800m, 동문과 서문 좌우에 각각 1개의 치성이 있고 남벽에 4개 치성을 두어 모두 8개 치성이 있다. 잔존 석축은 최고 높이 270cm, 너비 450cm이다. 삼덕리 대청 마을과 인접한 해안에 당포성 해안 방어를 위한 수중 목책이 확인되었다.
당포성지 (唐浦城址)
당포성은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에 소재하는 조선 시대 남해안 지역 영진보성(營鎭堡城)이다. 고려 공민왕 때 최영 장군이 축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잔존 체성 축조 수법 및 부대시설 등을 볼 때 조선 시대 성종 당시 축조한 남해안 지역 영진보성 중 하나이다. 잔존 성의 둘레는 800m, 동문과 서문 좌우에 각각 1개의 치성이 있고 남벽에 4개 치성을 두어 모두 8개 치성이 있다. 잔존 석축은 최고 높이 270cm, 너비 450cm이다. 삼덕리 대청 마을과 인접한 해안에 당포성 해안 방어를 위한 수중 목책이 확인되었다.
동래읍성지는 부산광역시 동래구에 있는 조선시대에 축조된 읍성이다. 동래읍성지는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크게 조선 전기 읍성과 후기 읍성으로 구분할 수 있다. 후기 읍성은 1731년과 1870년에 초축과 증개축이 되었다. 전기 동래읍성지는 도심화로 지하에 매몰되거나 훼손된 상태이고 주로 북쪽 산지 일대에 후기 동래읍성 성벽이 잔존하고 있다. 이중 일부인 후기 동래읍성지 북문, 북장대, 인생문 등과 주변 성벽의 몸체 부분이 복원되었다. 성내 동래부 동헌과 장관청 등이 복원되었다.
동래읍성지 (東萊邑城址)
동래읍성지는 부산광역시 동래구에 있는 조선시대에 축조된 읍성이다. 동래읍성지는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크게 조선 전기 읍성과 후기 읍성으로 구분할 수 있다. 후기 읍성은 1731년과 1870년에 초축과 증개축이 되었다. 전기 동래읍성지는 도심화로 지하에 매몰되거나 훼손된 상태이고 주로 북쪽 산지 일대에 후기 동래읍성 성벽이 잔존하고 있다. 이중 일부인 후기 동래읍성지 북문, 북장대, 인생문 등과 주변 성벽의 몸체 부분이 복원되었다. 성내 동래부 동헌과 장관청 등이 복원되었다.
사천 성황당산성은 경상남도 사천시 정동면 예수리 산45번지에 소재한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이 산성은 성황산 정상부를 성내로 삼고, 그 주변 9부 능선상에 성벽의 몸체를 배치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1 사천현 고적조에는 "석축으로 둘레 1,954척, 성내에 샘 1곳, 연못 2곳과 군창이 있었다."라고 한다.
사천 성황당산성 (泗川 城隍堂山城)
사천 성황당산성은 경상남도 사천시 정동면 예수리 산45번지에 소재한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이 산성은 성황산 정상부를 성내로 삼고, 그 주변 9부 능선상에 성벽의 몸체를 배치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1 사천현 고적조에는 "석축으로 둘레 1,954척, 성내에 샘 1곳, 연못 2곳과 군창이 있었다."라고 한다.
울주 언양읍성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에 소재하는, 1500년(연산군 6)에 축조된 평지 방형 읍성이다. 울주군 언양읍 동부리와 서부리 일대 평지에 평면 형태 방형으로 동서남북 사방의 성벽 몸체 중간에 옹성을 두른 사대문과 12개소의 치성과 해자를 갖춘 구조이다. 1966년 12월 27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최초 지정 면적은 40,972㎡이다. 2011년 8월 18일 남쪽 성곽과 성곽 외벽에 접한 주변 지역 26,997㎡이 사적 지정 구역으로 추가되어, 총 면적이 84,493㎡로 지정되었다.
울주 언양읍성 (蔚州 彦陽邑城)
울주 언양읍성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에 소재하는, 1500년(연산군 6)에 축조된 평지 방형 읍성이다. 울주군 언양읍 동부리와 서부리 일대 평지에 평면 형태 방형으로 동서남북 사방의 성벽 몸체 중간에 옹성을 두른 사대문과 12개소의 치성과 해자를 갖춘 구조이다. 1966년 12월 27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최초 지정 면적은 40,972㎡이다. 2011년 8월 18일 남쪽 성곽과 성곽 외벽에 접한 주변 지역 26,997㎡이 사적 지정 구역으로 추가되어, 총 면적이 84,493㎡로 지정되었다.
영산읍성지(靈山邑城址)는 조선 성종 8년(1477)에 축조된 읍성으로 평산성이다. 읍성 북쪽의 정상부에는 과거 신라 태자묘가 있었다고 전해지며, 지금도 태자각이 남아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읍성의 둘레는 3,810척, 체성의 높이 12척 5촌으로 성종 8년(1477)에 시축하였고 이후에 피폐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사 결과 성의 둘레는 약 1,465m, 높이는 약 4m, 너비는 6.6m~7.1m이다. 성의 부대시설로 동 · 서 · 남문지 3개소, 치성 6개소, 수구가 확인되었다.
영산읍성지 (靈山邑城址)
영산읍성지(靈山邑城址)는 조선 성종 8년(1477)에 축조된 읍성으로 평산성이다. 읍성 북쪽의 정상부에는 과거 신라 태자묘가 있었다고 전해지며, 지금도 태자각이 남아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읍성의 둘레는 3,810척, 체성의 높이 12척 5촌으로 성종 8년(1477)에 시축하였고 이후에 피폐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사 결과 성의 둘레는 약 1,465m, 높이는 약 4m, 너비는 6.6m~7.1m이다. 성의 부대시설로 동 · 서 · 남문지 3개소, 치성 6개소, 수구가 확인되었다.
포항 장기읍성(浦項 長鬐邑城)은 현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에 있는 조선 세종 21년(1439)에 석축으로 개축한 읍성이다. 본래 고려 현종 때 토성으로 축조하여 장기 지역의 치소성으로 사용하였으나 잦은 동여진 해적과 왜구의 침입으로 조선 개국 후 석축성으로 개축하였다. 성의 둘레는 3,664척, 높이 12척이다. 샘이 두 곳, 못이 두 곳으로 겨울과 여름에도 마르지 않았다고 하며, 군창도 있었다고 전한다. 1991년 이후 6차례 이상 고고학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체성과 옹성문지, 수구 등에 대한 복원 공사가 이루어졌다.
포항 장기읍성 (浦項 長鬐邑城)
포항 장기읍성(浦項 長鬐邑城)은 현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에 있는 조선 세종 21년(1439)에 석축으로 개축한 읍성이다. 본래 고려 현종 때 토성으로 축조하여 장기 지역의 치소성으로 사용하였으나 잦은 동여진 해적과 왜구의 침입으로 조선 개국 후 석축성으로 개축하였다. 성의 둘레는 3,664척, 높이 12척이다. 샘이 두 곳, 못이 두 곳으로 겨울과 여름에도 마르지 않았다고 하며, 군창도 있었다고 전한다. 1991년 이후 6차례 이상 고고학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체성과 옹성문지, 수구 등에 대한 복원 공사가 이루어졌다.
울산 경상좌도병영성은 울산광역시 중구에 축조된 조선시대 경상좌도병마절도사영성이다. 1415년(조선 태종 15) 경주에서 현재의 병영성 내로 경상좌도병마절제사영이 이설되었다. 1417년(태종 17)에 석축성으로 축조된 후, 1426년(세종 8) 경상우병영성과 일시 합치되었다. 1437년(세종 19) 다시 좌도병마절제사영이 되었으며, 1584년(선조 17)에 다시 병영이 설치되었다. 잔존 성 둘레는 2,120m이다. 사적 제320호이다.
울산 경상좌도병영성 (蔚山 慶尙左道兵營城)
울산 경상좌도병영성은 울산광역시 중구에 축조된 조선시대 경상좌도병마절도사영성이다. 1415년(조선 태종 15) 경주에서 현재의 병영성 내로 경상좌도병마절제사영이 이설되었다. 1417년(태종 17)에 석축성으로 축조된 후, 1426년(세종 8) 경상우병영성과 일시 합치되었다. 1437년(세종 19) 다시 좌도병마절제사영이 되었으며, 1584년(선조 17)에 다시 병영이 설치되었다. 잔존 성 둘레는 2,120m이다. 사적 제320호이다.
해남 전라우수영(海南 全羅右水營)은 조선시대 수군 영진보성(營鎭堡城)에 설치된 전라 우도 수군의 본영이다. 앞바다는 명량(鳴梁) 또는 울돌목이라는 매우 좁은 해협이며, 전라우수영 앞으로 양도(羊島)가 있어 명량의 거친 물살을 막아준다. 또한 성의 동쪽으로 약 5㎞ 떨어진 길목이 좁아지는 곳에 원문성(轅門城)을 축조하여 육지로부터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해남 전라우수영은 1992년 전라남도 기념물 제139호로 지정되었으며, 2016년 9월 30일에 국가지정문화재(현, 국가지정유산) 사적 제535호로 지정되었다.
해남 전라우수영 (海南 全羅右水營)
해남 전라우수영(海南 全羅右水營)은 조선시대 수군 영진보성(營鎭堡城)에 설치된 전라 우도 수군의 본영이다. 앞바다는 명량(鳴梁) 또는 울돌목이라는 매우 좁은 해협이며, 전라우수영 앞으로 양도(羊島)가 있어 명량의 거친 물살을 막아준다. 또한 성의 동쪽으로 약 5㎞ 떨어진 길목이 좁아지는 곳에 원문성(轅門城)을 축조하여 육지로부터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해남 전라우수영은 1992년 전라남도 기념물 제139호로 지정되었으며, 2016년 9월 30일에 국가지정문화재(현, 국가지정유산) 사적 제535호로 지정되었다.
울산 약사동 제방은 울산광역시 중구 약사동에 있는 6~7세기경 조영된 수리시설이다. 저수를 목적으로 조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수리시설이다. 이 유적은 고대 제방의 축조 공정을 보여줄 뿐 아니라, 나뭇가지와 풀이 부식된 데에 흙을 부어 만든 부엽 공법 등 고대 토목 기술을 파악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유적이다.
울산 약사동 제방 (蔚山 藥泗洞 堤防)
울산 약사동 제방은 울산광역시 중구 약사동에 있는 6~7세기경 조영된 수리시설이다. 저수를 목적으로 조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수리시설이다. 이 유적은 고대 제방의 축조 공정을 보여줄 뿐 아니라, 나뭇가지와 풀이 부식된 데에 흙을 부어 만든 부엽 공법 등 고대 토목 기술을 파악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