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사천시 정동면 예수리 산45번지에 소재한 성황산 정상부를 성내로 삼고 그 주변 9부 능선상에 성벽의 몸체를 배치한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현재는 둘레 약 1,109m, 높이 340~440cm의 성벽 몸체가 잔존하고 있다. 성내에서 북쪽으로는 사천읍이 내려다보이고, 서쪽으로 사천만이 조망되며 동쪽과 남쪽은 니구산과 구룡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평면이 곡선상을 이루며 성 안쪽은 북쪽과 서쪽 일부 경사지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평탄하고 성 바깥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세종실록』 권150 지리지 경상도 사천조에서는 "성황산성은 석성으로 현의 남쪽 2리에 있으며, 높고 험하며 주위가 588보이다. 성내에 샘 1곳, 연못 2곳과 군창이 있었다."라고 한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1 사천현 고적조에서는 "석축으로 둘레 1,954척, 성내에 샘 1곳, 연못 1곳이 있었다."라고 한다.
성황당산성은 성벽의 몸체와 동문지 일원에 대하여 정밀 지표 조사가 이루어졌다. 축조 수법을 살펴보면, 성벽의 몸체는 구지표를 걷어내고 생토층 위에 외벽 기단부를 설치한 후 잡석으로 뒤채움을 하였다. 내벽은 기단석이 계단과 같은 모양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성벽의 몸체 잔존 높이는 340~440cm, 너비 660cm이다. 기본적으로 산탁하여 축조하였으며 부분적으로 협축한 부분도 확인된다. 즉 외벽의 경우 치석한 장대석을 이용하여 수평 줄눈을 맞추어 정연하게 축조한 곳도 확인된다. 이러한 축조 수법은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산성 축조 수법과 유사하여 관련성이 주목된다.
동문지(東門址)는 현문(懸門)식으로 목조 문루를 갖춘 구조이다. 문지 부분은 성내 성토층 높이에서 외벽 쪽을 5단 정도 석축을 다 쌓은 다음 그 위에 문루 초석을 배치하고 성내 쪽은 같은 높이의 생토층 위에 배치하고 있다. 따라서 동문 출입은 사다리와 같은 보조 시설을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동문지에서는 수개축 흔적이 확인되고 있으며 성벽의 몸체와 초석의 위치를 감안하면 누층 구조의 문루를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동문지 규모는 성벽의 몸체 높이 440cm, 너비 450cm, 문루는 정면 너비 330cm, 측면 너비 540cm, 초석 간격 270cm로 확인된다. 그 밖에 동문지 위의 정상부에 평면원형 연지가 확인되는데 규모가 직경 1850cm, 깊이 330cm이고 자연석 6-7단 정도 호안(護岸) 석축이 확인된다. 성내에서는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토기 조각이 출토되며, 기타 청자 조각과 분청사기 조각, 어골문, 목리문이 시문된 회갈색, 적갈색 연질(軟質) 기와 조각이 출토된다.
『태조실록』, 『태종실록』 등에 진주의 성황이 호국백(護國伯)으로 봉하여지고, 이 호국백의 제사를 지냈던 진주의 성황당이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1 사천현 사묘조에 성내에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 산성은 군사적 기능 이외에도 종교적 기능도 겸비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