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 가산산성 ( )

칠곡 가산산성
칠곡 가산산성
건축
유적
국가유산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에 소재하는, 조선 후기에 축조된 영남 제일의 산성.
이칭
이칭
갓산, 가사산, 가새
유적
건립 시기
1648년(내성), 1700년(외성), 1741년(중성)
관련 국가
조선, 일본
관련 인물
이명웅, 임당 이세재 허목 이원정
높이
2∽5.5m
길이
내성 6,493m 외성 4,860m 전체 111,433m
둘레
내성 4,710보 외성 3,754보 중성 602보
면적
2,212㎢
소재지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가산리 산 98-1번지일원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칠곡 가산산성(漆谷 架山山城)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사적(1971년 03월 26일 지정)
소재지
경북 칠곡군 가산면 가산리 산98-1번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칠곡 가산산성은 내성, 외성, 중성의 복합식으로 축조된 성곽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 전국에 대대적으로 산성을 구축한 시기에 동래-한양 간 대로상 경상도 최적의 요충지에 지어진 명실상부한 ‘영남 제일 관방’이다. 1640년 내성을 1차적으로 완성하고, 1648년 중수를 통해 현재의 내성이 축조되었다. 1701년 외성, 1741년 내성의 가운데에 중성 벽을 완축하였다. 1971년 사적 제216호 지정되었고 1977년부터 2018년까지 남문, 동문, 중성문, 수문, 성벽 몸체 등의 성곽 보수 및 복원이 이루어졌다.

정의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에 소재하는, 조선 후기에 축조된 영남 제일의 산성.
건립 경위

「가산축성석기(架山築城石記)」에 의하면 칠곡 가산산성은 경상도 관찰사 이명웅(李命雄)경상도 지역 중 가산을 포함하여 공산, 독음산을 도형으로 그려 바치며 산성을 차례로 수축하자는 상소를 올린 것이 계기가 되어 축조되었다.

1639년(인조 17)부터 1640년(인조 18) 4월까지 내성 일부를 준공하였다. 둘레가 3,830보이고, 성가퀴 1,752곳이 있다. 성 내부에는 문루, 보루, 군영, 열대, 수문, 관청, 사원 등의 시설을 갖추었다. 1648년(인조 26)에 내성을 증 · 개축하여 완공하였다.

외성은 1700년(숙종 26)부터 1701년(숙종 27)에 경상 관찰사 이세제의 장계에 따라 수축되었다. 규모는 성벽 길이 3,754보, 여장 1,890첩이다. 군기고를 비롯한 창고, 그밖의 부속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듬해 외성 안에 천주사를 짓고 승창미를 보관하였다. 1741년(영조 17)에 관찰사 정익하(鄭益河)의 장계가 윤허됨에 따라 내성에 중성 벽을 차례로 축조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규모는 성벽 길이 620보, 여장 402첩이다. 인화관(人和館), 군관청, 군기고, 포루, 벽루, 장대를 함께 설치한 뒤, 4년 후에 빙고를 설치하였다.

변천

칠곡 가산산성은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과 가산면의 경계를 이루는 해발 902m 가산(架山)의 맨 위를 중심으로 축성된 조선시대 석축 산성이다. 1640년 내성을 1차적으로 완성하고, 1648년에 중수를 통해 내성이 완축되었다. 1701년에는 외성, 1741년에는 중성이 완축되었다. 가산산성의 내성 안에 읍치를 설치하여 성주목의 속현이었던 팔거현이 칠곡 도호부가 되었다. 산성 내에 읍치를 둔 예와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높은 지대에 형성된 지방 읍치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가산산성은 경상 감영의 별진으로 칠곡 도호부 외에 의성, 군위, 의흥, 신녕, 하양, 경산 등 인근 여섯 지역의 군사적 통치권을 가지면서 군영으로서의 중심이 되었다. 인근 금오 · 천생 · 독용 · 화산산성과 기각의 형세로 긴밀한 협공 체계를 이룬 대규모 거점 성곽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성 안팎에는 칠곡 도호부 지방 관아 시설을 비롯해 경상 감영과 칠곡 도호부 및 각 진관의 군량을 보관하는 창고, 산성 방비를 위한 군기고와 화약고, 경상도 지방의 모든 문서를 보관했던 장적고, 산성 수보와 방어를 위한 수호 사찰, 성내 생활에 필수 시설인 못과 우물, 백성들이 거주할 수 있는 마을을 조성하였다. 이는 위급할 시 항시 대비할 수 있는 행정과 관방 체계를 갖추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읍치가 높은 산성 안에 있는 관계로 많은 불편함을 호소하는 장계가 수차례 있었는데, 결국 1819년(순조 19) 구 팔거현의 읍치인 팔거창지로 이전하게 되었다. 이로써 축성 후 180년간 유지된 칠곡 도호부 읍치는 가산산성 내에서 평지로 옮겨지게 되었다.

1885년(고종 32) 이후 가산산성은 폐지되었고, 1950년 한국전쟁 때에는 치열한 격전지로 변했다. 이로 인해 남아 있던 성내 많은 건물이 불에 타서 없어지고, 폭격으로 인하여 성벽이 무너졌다. 1954년 7월 26일 폭우로 남문의 홍예(虹霓)가 반파되고 수구문과 성벽 일부가 유실되었다.

1971년에 사적 제216호로 지정되었으나 외성이 제외된 채 내성만 지정되어 반쪽짜리 문화유산이란 오명을 남겼다. 사적으로 지정된 이후 1977년부터 2018년까지 성벽 몸체, 남문, 동문, 중성문, 수문 등의 보수 및 복원이 이루어졌다.

형태와 특징

칠곡 가산산성의 둘레는 내성 6,493m, 외성 4,860m, 전체 11만 1,433m이며, 면적은 2,212㎢이다. 내성은 북곡성(해발 877m), 서포루(해발 851.5m), 가암(해발 862.3m), 남포루(해발 772.2m), 동곡성(해발 827.4m)의 봉우리들이 내성 외곽 지대를 형성하며 봉우리 사이의 능선에 성벽이 축조되어 있다. 내성은 가산산성 전체 형태와 유사하며, 장축 방향이 북서-남동향인 길다란 부정형이다.

가산 정상의 남서쪽 약 500m에 위치한 해발 877m 일대에는 북동-남서 방향으로 이어진 성벽이 리을(ㄹ) 모양으로 축조되어 있는 중성 벽이 확인된다. 가산산성 내성은 거의 대부분 편축 성이다. 북문, 서문, 중성문 주변에 한정하여 협축 성이 확인되며 자연 암벽을 성벽으로 대신하였다.

지형의 경사가 심한 곳은 성벽 높이가 상대적으로 낮으며 기울기도 낮은 편이다. 경사가 심하지 않은 곳은 성벽 높이가 높은 편이며 경사도 역시 심하다. 내탁부(內托部)는 외벽 쪽으로 석축을 축조하고 그 상부에서는 성 내부를 향해 토축을 하여 경사면을 이루고 있다. 성곽 상부에는 1.5m 가량 너비가 좁은 회곽로를 두었으며 성 내부 쪽으로 경사를 두어 배수를 고려하였다. 이외에도 경사가 급한 부분에 적용된 계단식 축성 구간이 확인되고 있는데 성곽의 내탁부를 계단식으로 단차를 두어 성벽을 축조하는 수법으로 가산산성에서 확인되는 축조 수법이다.

가산산성 성벽 몸체의 외벽 축조 수법은 그렝이질과 쐐기돌을 적절하게 혼용한 허튼층쌓기이며 하단부와 상단부가 서로 다른 수법으로 축조되었다. 하단부는 큰 석재를 사용하고 위로 갈수록 점차 석재의 크기를 작게 하였다. 일부 경사진 지형에서는 하단부의 높이는 동일하게 수평으로 축조하고 작은 석재로 축조한 상단부의 높이에 변화를 주어 성곽의 높이를 조절하였다.

가산산성 성벽 상부에 미석과 여장 유구가 잘 남아 있는 곳이 많다. 여장은 내성 전체에 걸쳐 설치되어 있으며 장방형 판석과 전돌을 혼용해 축조하였다. 특히 여장 기초 상부나 성곽 근처에서는 같은 규격의 전돌이 다수 확인되었다. 전돌 유구는 대부분 모서리에 기역(ㄱ) 모양의 턱을 두고 있어 총안과 같은 개구부를 형성한 것으로 파악된다.

성벽에 사용된 석재는 화강석을 이용했고 중성 벽을 경계로 북쪽 지역에는 화강석과 혼펠스를 혼용하였다. 문지 등 주요 시설물의 성 외벽 석재는 무사석과 같은 대형 장방형 가공 할석을 이용했는데 채석용 쐐기 흔적이 확인된다. 내성 외벽의 잔존 높이는 2∽5.5m이다.

가산산성 성 내외에서 성문 4개소, 문루지, 적대 3개소, 암문 9개소, 수문지 4개소, 치성 24개소, 포루지 4개소, 보루지 17개소, 망대지 4개소 등 총 73개소 내외의 부대 시설이 확인된다. 성내 시설물은 남쪽 영역에는 서장대, 영창, 상장대, 관아, 산성 마을이 있다. 북쪽 영역에는 삼읍창, 보국사 구역이 있다. 이외에도 도로, 금석, 우물, 못 등이 확인된다. 현재 성내 각 시설물에는 지표상에서 초석, 담장, 기단, 계단 등의 유구가 확인되며, 주변으로 와편, 자기편 등의 유물이 산재한다.

발굴 경위 및 결과

칠곡 가산산성은 1998년 대구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지표 조사를 통해 전체적인 산성의 규모와 형태가 파악되었다. 이후 2013년 칠곡 가산산성의 성곽 실측 조사 및 종합 정비 계획을 수립하였다. 그리고 이 계획에 따라 1~3차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장대 건물지와 관아 시설 등의 공해 관련 건물지, 민가 시설로 추정되는 유구, 채석장 등이 확인되었다. 또한 제4 수문에 대한 발굴 조사를 통해 수문 통수부 내측에 옆벽의 기초부와 바닥에서 세굴 방지용 박석, 입수부 앞 중앙에 두 계곡 물을 분리 · 유도하는 도수 시설 등이 확인되었다.

칠곡 가산산성 내에는 칠곡 보국사지, 칠곡 남원리 각석문12, 칠곡 남원리 허부사비, 칠곡 남원리 비석군13, 칠곡 천주사지 등의 유적이 분포한다.

의의 및 평가

칠곡 가산산성은 임진왜란병자호란을 겪은 후 전국에 대대적으로 산성을 구축한 시기에 동래-한양 간 대로상 경상도 최적의 요충지에 내성, 외성, 중성의 복합식으로 축조한 성곽이다. 내부에 행정과 군사가 결합된 공해 시설을 갖추고 있다.

참고문헌

원전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綠)』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대동지지(大東地志)』

단행본

경북과학대학 향토문화연구소, 『칠곡군의 문화유산 조사 및 문화진흥계획』(1999)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칠곡 가산산성 외성 : 사적지정 조사보고서』(2012)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사적 제216호 칠곡 가산산성 정비사업에 따른) 칠곡 가산산성 수문4』(2016)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칠곡 가산산성 서문 정밀실측보고서』(2017)
대구대학교 박물관, 『칠곡 가산산성 지표조사보고서』(1999)
칠곡군, 『칠곡군지』(1994)
관련 미디어 (5)
집필자
이일갑(시공문화재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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