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정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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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금산목장성(南海 錦山牧場城)은 경상남도 남해 금산에서 지족리 수장포와 물건리 대지포 구간에 걸쳐 ‘팔(八)’자의 형태로 축조된 조선 전기의 동천 목장성이다. 목장성은 섬이나 바다로 돌출한 반도상의 지형을 차단하여 말을 기를 목적으로 만든 시설이다. 동천 목장성은 조선 단종 연간에 초축되었으며, 이후 금산 목장에 편입되었다. 이 목장성이 장성으로 불린 까닭은 성의 둘레가 15km로 여타의 성들보다 둘레가 훨씬 길었기 때문이다. 이 성은 임진왜란 때 일시적으로 관방성의 역할을 하였고, 동천 주변에서는 일시적으로 경작도 이루어졌다.
남해 금산목장성 (南海 錦山牧場城)
남해 금산목장성(南海 錦山牧場城)은 경상남도 남해 금산에서 지족리 수장포와 물건리 대지포 구간에 걸쳐 ‘팔(八)’자의 형태로 축조된 조선 전기의 동천 목장성이다. 목장성은 섬이나 바다로 돌출한 반도상의 지형을 차단하여 말을 기를 목적으로 만든 시설이다. 동천 목장성은 조선 단종 연간에 초축되었으며, 이후 금산 목장에 편입되었다. 이 목장성이 장성으로 불린 까닭은 성의 둘레가 15km로 여타의 성들보다 둘레가 훨씬 길었기 때문이다. 이 성은 임진왜란 때 일시적으로 관방성의 역할을 하였고, 동천 주변에서는 일시적으로 경작도 이루어졌다.
대정성지(大靜城址)는 태종18년 대정현감 유신이 축조한 대정현 대정읍성의 터이다. 대정성(大靜城)은 조선 초기 초축된 이후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수차례에 걸쳐 수축되었다. 이 성은 평지에 축조된 보기 드문 읍성으로 4대문에 모두 옹성을 쌓았고 체성의 모서리에는 각치를 두었다. 대정읍성의 체성과 치성 일부는 복원 · 정비되었으나 성 내부의 건물지는 전혀 남아 있지 않다.
대정성지 (大靜城址)
대정성지(大靜城址)는 태종18년 대정현감 유신이 축조한 대정현 대정읍성의 터이다. 대정성(大靜城)은 조선 초기 초축된 이후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수차례에 걸쳐 수축되었다. 이 성은 평지에 축조된 보기 드문 읍성으로 4대문에 모두 옹성을 쌓았고 체성의 모서리에는 각치를 두었다. 대정읍성의 체성과 치성 일부는 복원 · 정비되었으나 성 내부의 건물지는 전혀 남아 있지 않다.
거제 옥산성(巨濟 玉山城)은 경상남도 거제시 거제면 동상리 산1번지에 위치하는 수정봉에 축조된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성벽은 기반암을 정리하고 기단을 쌓은 뒤 성벽을 올린 것으로, 조선 후기에 들어 수리 · 증축한 것이다. 성 내부에서 2기의 집수지와 9기의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이 중 집수지 1은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조선시대에 재사용되었다.
거제 옥산성 (巨濟 玉山城)
거제 옥산성(巨濟 玉山城)은 경상남도 거제시 거제면 동상리 산1번지에 위치하는 수정봉에 축조된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성벽은 기반암을 정리하고 기단을 쌓은 뒤 성벽을 올린 것으로, 조선 후기에 들어 수리 · 증축한 것이다. 성 내부에서 2기의 집수지와 9기의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이 중 집수지 1은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조선시대에 재사용되었다.
제주성지(濟州城址)는 제주목 읍성을 가리킨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제주목 읍성의 둘레를 4,394척, 높이 11척이라고 기록하였는데, 수차의 개축과 증축을 거쳐 『탐라지』, 『동국여지지』 등 조선 후기 읍지에 이르면 읍성의 둘레가 5,489척으로 확장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제주읍성은 1910년대 이전까지 중축, 개축, 신축 등을 통해 읍성과 내부 관아 시설을 유지하다가 1926년 이후 일제의 정책으로 제주읍성의 성돌을 바다에 매립하면서 체성의 대부분이 훼손되었다.
제주성지 (濟州城址)
제주성지(濟州城址)는 제주목 읍성을 가리킨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제주목 읍성의 둘레를 4,394척, 높이 11척이라고 기록하였는데, 수차의 개축과 증축을 거쳐 『탐라지』, 『동국여지지』 등 조선 후기 읍지에 이르면 읍성의 둘레가 5,489척으로 확장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제주읍성은 1910년대 이전까지 중축, 개축, 신축 등을 통해 읍성과 내부 관아 시설을 유지하다가 1926년 이후 일제의 정책으로 제주읍성의 성돌을 바다에 매립하면서 체성의 대부분이 훼손되었다.
창원 진례산성은 비음산(해발 : 518.8m)의 정상부를 따라 축조된 조선시대 포곡식 석축 산성이다. 남쪽으로는 진해만, 동쪽으로는 김해시 진례면 송현리 일부, 부산 사상 일대를 조망할 수 있다. 산성의 둘레가 약 4.5㎞를 상회하는 대형의 성이다. 체성은 자연 지세를 이용하여 축조하였는데 성 내외의 경사도가 큰 곳은 편축으로, 경사도가 작은 곳은 협축으로 축조하였다.
창원 진례산성 (昌原 進禮山城)
창원 진례산성은 비음산(해발 : 518.8m)의 정상부를 따라 축조된 조선시대 포곡식 석축 산성이다. 남쪽으로는 진해만, 동쪽으로는 김해시 진례면 송현리 일부, 부산 사상 일대를 조망할 수 있다. 산성의 둘레가 약 4.5㎞를 상회하는 대형의 성이다. 체성은 자연 지세를 이용하여 축조하였는데 성 내외의 경사도가 큰 곳은 편축으로, 경사도가 작은 곳은 협축으로 축조하였다.
『천생산성(天生山城)은 천생산 정상 주위에 돌출한 암반을 따라 축조된 석축 산성으로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혁거세가 성을 축조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는 사실로 보기 어렵다. 성 내부에서 출토되는 유물이나 『경상도지리지』와 『세종실록지리지』를 참고하면 이 산성은 고려시대에 입보용으로 축조되어 조선 전기까지 이용되었다. 이후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산성에 대한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어 찰리사 곽재우가 건의하여 외성을 쌓았다.
천생산성 (天生山城)
『천생산성(天生山城)은 천생산 정상 주위에 돌출한 암반을 따라 축조된 석축 산성으로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혁거세가 성을 축조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는 사실로 보기 어렵다. 성 내부에서 출토되는 유물이나 『경상도지리지』와 『세종실록지리지』를 참고하면 이 산성은 고려시대에 입보용으로 축조되어 조선 전기까지 이용되었다. 이후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산성에 대한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어 찰리사 곽재우가 건의하여 외성을 쌓았다.
청도읍성(淸道邑城)은 경상북도 청도군에 있는 평지 석축 읍성이다. 임진왜란 직전에 만들어졌다가 조선 후기에 여러 차례 수리하면서 성의 규모가 확장되었다. 그러나 시가지가 확장되면서 성의 대부분이 훼손되어 현재는 일부 흔적만이 남아 있다. 1995년에 경상북도 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되었다.
청도읍성 (淸道邑城)
청도읍성(淸道邑城)은 경상북도 청도군에 있는 평지 석축 읍성이다. 임진왜란 직전에 만들어졌다가 조선 후기에 여러 차례 수리하면서 성의 규모가 확장되었다. 그러나 시가지가 확장되면서 성의 대부분이 훼손되어 현재는 일부 흔적만이 남아 있다. 1995년에 경상북도 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되었다.
추화산성(推火山城)은 밀양강과 단장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신라의 석축 포곡식 산성이다. 동문과 남문, 북쪽 계곡에는 우물과 집수지, 부속 건물 등이 위치하고 있다. 산성의 내부에서 단각고배, 인화문토기, 승렴문호, 파상문 단경호, 순청자 접시, 상감청자 종지, 분청자 저부편 등의 유물이 출토되어 삼국시대(6세기 후반경)에 초축되어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 전기까지 산성이 사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추화산성 (推火山城)
추화산성(推火山城)은 밀양강과 단장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신라의 석축 포곡식 산성이다. 동문과 남문, 북쪽 계곡에는 우물과 집수지, 부속 건물 등이 위치하고 있다. 산성의 내부에서 단각고배, 인화문토기, 승렴문호, 파상문 단경호, 순청자 접시, 상감청자 종지, 분청자 저부편 등의 유물이 출토되어 삼국시대(6세기 후반경)에 초축되어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 전기까지 산성이 사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통영성지(統營城址)는 1678년(숙종 4년)에 통제사 윤천뢰가 경상남도 통영에 만든 통영성 성곽의 터를 말한다. 통영성은 삼도수군통제영성의 준말이다. 이 성은 북쪽 여항산 정상에서 동쪽과 서쪽의 고지를 연결하여 산지는 흙으로 성을 쌓았고 나머지 부분은 돌로 성곽을 쌓았다. 사대문과 동서 암문, 세 곳의 포루가 있었고, 원문성이 바다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통영성은 통제영이 해체되면서 성벽과 문루를 헐어버려서 현재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통영성지 (統營城址)
통영성지(統營城址)는 1678년(숙종 4년)에 통제사 윤천뢰가 경상남도 통영에 만든 통영성 성곽의 터를 말한다. 통영성은 삼도수군통제영성의 준말이다. 이 성은 북쪽 여항산 정상에서 동쪽과 서쪽의 고지를 연결하여 산지는 흙으로 성을 쌓았고 나머지 부분은 돌로 성곽을 쌓았다. 사대문과 동서 암문, 세 곳의 포루가 있었고, 원문성이 바다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통영성은 통제영이 해체되면서 성벽과 문루를 헐어버려서 현재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팔거산성(八莒山城)은 삼국시대에 만들어져 통일신라시대에 주로 사용된 석축 산정식 산성이다. 성 내부의 목조 집수지에서 간지, 지명, 곡식 등이 적힌 목간이 출토되었다. 이 목간을 통해 팔거산성은 처음 만들어진 시기가 5세기 후반이며, 세금 징수와 관련된 시설이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팔거산성 (八莒山城)
팔거산성(八莒山城)은 삼국시대에 만들어져 통일신라시대에 주로 사용된 석축 산정식 산성이다. 성 내부의 목조 집수지에서 간지, 지명, 곡식 등이 적힌 목간이 출토되었다. 이 목간을 통해 팔거산성은 처음 만들어진 시기가 5세기 후반이며, 세금 징수와 관련된 시설이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동 고성산성(河東 高城山城)은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와 대곡리 뒤편에 있는 구릉 정상부에 축조된 산성이다. 비교적 높은 남북의 두 봉우리를 길게 연결하여 성을 쌓았으며, 일부 구간은 자연 암반을 이용했다. 성 내부에서 고려시대 유물이 수습되었으며, 남봉과 북봉에서 돈대 2기가 확인되었다. 조선시대 동학농민운동 전적지로 알려져 있다.
하동 고성산성 (河東 高城山城)
하동 고성산성(河東 高城山城)은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와 대곡리 뒤편에 있는 구릉 정상부에 축조된 산성이다. 비교적 높은 남북의 두 봉우리를 길게 연결하여 성을 쌓았으며, 일부 구간은 자연 암반을 이용했다. 성 내부에서 고려시대 유물이 수습되었으며, 남봉과 북봉에서 돈대 2기가 확인되었다. 조선시대 동학농민운동 전적지로 알려져 있다.
항파두성은 삼별초 대몽 항쟁 유적이다.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와 상귀리 일대에 위치하며 하귀리 해안으로부터 약 3km 떨어진, 해발 140~200m 구릉상에 자리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주 고적 조에 주 서쪽 40리에 있고 삼별초가 진도에서 패한 뒤 김통정 무리들이 쌓은 것이라고 하였고 고토성 또한 삼별초가 쌓은 것이라 하였다. 조사 결과 항파두성은 내성인 항파두성과 외성인 고토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성은 둘레 750m이고, 외성은 사대문을 갖춘 판축 토성으로 둘레 3.8km이다.
항파두성 (缸坡頭城)
항파두성은 삼별초 대몽 항쟁 유적이다.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와 상귀리 일대에 위치하며 하귀리 해안으로부터 약 3km 떨어진, 해발 140~200m 구릉상에 자리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주 고적 조에 주 서쪽 40리에 있고 삼별초가 진도에서 패한 뒤 김통정 무리들이 쌓은 것이라고 하였고 고토성 또한 삼별초가 쌓은 것이라 하였다. 조사 결과 항파두성은 내성인 항파두성과 외성인 고토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성은 둘레 750m이고, 외성은 사대문을 갖춘 판축 토성으로 둘레 3.8km이다.
의령 호미산성은 삼국시대 토성으로 축조되었다가 통일신라시대에 석성으로 개축되었다. 호미산성은 남강의 수로를 따라 정암진 방면과 법수면 방면을 조망할 수 있는 요지에 축조되어 있다. 호미산성은 계단상으로 기반층을 정지하고 그 위로 토루를 축조하였는데 북체성 아래에서 6세기 대의 토기가 출토되었고 석축 남체성 하단에서는 8세기로 편년되는 납석제 개가 출토되었다.
호미산성 (虎尾山城)
의령 호미산성은 삼국시대 토성으로 축조되었다가 통일신라시대에 석성으로 개축되었다. 호미산성은 남강의 수로를 따라 정암진 방면과 법수면 방면을 조망할 수 있는 요지에 축조되어 있다. 호미산성은 계단상으로 기반층을 정지하고 그 위로 토루를 축조하였는데 북체성 아래에서 6세기 대의 토기가 출토되었고 석축 남체성 하단에서는 8세기로 편년되는 납석제 개가 출토되었다.
창녕 화왕산성(昌寧 火旺山城)은 5세기 경 창녕을 조망할 수 있는 서쪽에 만들어진 토축 산성을 통일신라시대에 석축으로 개축한 석축 산성이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잦은 외적의 침입을 겪던 창녕과 현풍 지역민을 보호하던 입보 산성이기도 하다. 초축된 화왕산성의 둘레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며, 현재 남아 있는 화왕산성의 둘레는 고려 말~조선시대 전기에 정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창녕 조씨 득성지로 알려진 집수지에서는 용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흔적이 확인되어 진산에 만든 성을 제사처로 활용했던 사실을 보여준다.
창녕 화왕산성 (昌寧 火旺山城)
창녕 화왕산성(昌寧 火旺山城)은 5세기 경 창녕을 조망할 수 있는 서쪽에 만들어진 토축 산성을 통일신라시대에 석축으로 개축한 석축 산성이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잦은 외적의 침입을 겪던 창녕과 현풍 지역민을 보호하던 입보 산성이기도 하다. 초축된 화왕산성의 둘레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며, 현재 남아 있는 화왕산성의 둘레는 고려 말~조선시대 전기에 정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창녕 조씨 득성지로 알려진 집수지에서는 용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흔적이 확인되어 진산에 만든 성을 제사처로 활용했던 사실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