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창(金憲昌)
국호를 장안(長安), 연호를 경운(慶雲)이라 하여 신라 왕조 자체를 부정하고 새로운 국가를 지향하였다. 무진주, 완산주, 청주, 사벌주와 국원소경, 서원소경, 금관소경이 여기에 호응하였다. 신라의 9주 5소경 가운데 4주 3소경이 김헌창의 세력권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반란은 채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신라의 진압군에 손쉽게 진압되었다. 신라는 선발대, 본대, 별동대로 진압군을 편성하여 운용하였다. 신라군의 본대가 경상북도 성주에서 반란군과 대치하는 사이 선발대가 후방의 보은산성을 점령하면서 전세는 신라쪽으로 기울었다. 이후 반란군의 최후 거점인 웅진성은 신라군에 포위되어 10일 만에 함락당했다. 성이 함락되기 직전 김헌창은 자살하였고, 성을 함락한 신라는 반란의 핵심 관련자 239명을 처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