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성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중국에서 광복군 제5지대 간부 등을 역임하며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이칭
이칭
최중천(崔仲天)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14년
사망 연도
1945년
출생지
평안북도 의주
정의
일제강점기 때, 중국에서 광복군 제5지대 간부 등을 역임하며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개설

일명 최중천(崔仲天). 평안북도 의주 출신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일찍이 중국으로 건너가서 1939년 10월 충칭[重慶]에서 나월환(羅月煥)을 대장으로 하여 결성된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에 가입하였다.

그 해 겨울 공작대가 시안[西安]으로 이주하자 이해평(李海平)·김동수(金東洙) 등과 함께 일선지구인 산시성[山西省]으로 파견되어 후쭝난[胡宗南] 직속의 중국 유격대와 합류하여 정보수집·적정탐색·초모공작 등을 전개하였다.

특히, 단신으로 일본군 여단 병력이 주둔하고 있는 루안[潞安]에 잠입하여 문응국(文應國)·이병곤(李炳坤)·박춘섭(朴春燮)·정일명(鄭一明)·김형철(金亨澈) 등을 포섭하였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여단사령부 통역으로 있던 이도순(李道淳)·고여순(高如順) 등 40여 명을 초모하여 함께 공작 활동을 전개하였다. 또 이들을 시안으로 보내 장래 독립운동에 앞장 설 투사로 양성하였다.

한편, 중국 중앙 전시간부훈련 제4단 특과총대 학원대한청반(第四團特科總大學員隊韓靑班)에 입학하여 군사 훈련을 받았으며, 청년전지공작대가 광복군 제5지대로 개편되자 간부로 취임하였다.

그 뒤 이해평·김용주(金容珠) 등 수명과 더불어 허난성[河南省]의 뤄양[洛陽]·정저우[鄭州] 등지에 근거지를 정하고, 신샹[新鄕]·카이펑[開封]·타이위안[太原]·스자좡[石家莊] 등지를 거점으로 확보하면서 징모 제5분처로서의 지하 공작을 수행하였다.

1942년 광복군 개편으로 제5지대가 제2지대로 통합되면서 새로운 지대장 이범석(李範奭)의 지령을 받아 최철(崔鐵)·이원범(李元範)·최전(崔銓) 등 많은 청년을 새로 초모하여 시안에서 제2지대에 편입시켰다.

1943년 5월 산시지구에서 활동하며 이지성(李志成)·이운학(李雲鶴) 등을 적 점령 지역에서 탈출시켜 제2지대에 입대시켰다. 그 뒤 일본군의 군용 철도를 파괴하고 적군 부대를 습격하여 큰 타격을 주기도 하였다.

1944년 3월 이서룡(李瑞龍) 등과 함께 산시성 타이위안으로 가서 전일묵(田一默) 등 20여 명을 규합하는 등 공작 성과를 올렸으며, 계속하여 스자좡·북경·타이위안 등지에서 국내침투 공작을 전개하던 중, 1945년 5월 일본 헌병에 잡혀 갖은 악독한 고문을 당하다가 광복을 맞은 지 3일 만에 총살당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3년 대통령표창이, 1968년에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독립운동사』 6(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5)
집필자
박현서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