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건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선천경찰서 투탄 의거를 전개하였고, 광복군총영의 이름으로 경고문을 살포하는 등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출생지
평안북도 선천
정의
일제강점기 때, 선천경찰서 투탄 의거를 전개하였고, 광복군총영의 이름으로 경고문을 살포하는 등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1920년 8월 미국의원단이 내한하였을 때 광복군 신의주·선천 특파결사대원들이 조선의 실정과 독립의지를 호소하기 위하여 거사계획을 세웠으나 이루지 못하자, 9월 1일 박치의(朴治毅)·임용진(林龍鎭) 등과 같이 선천경찰서에 폭탄을 던졌다.

또한,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의 이름으로 된 최급경고문(最急警告文)을 살포하였다. 이때에 임용진이 떨어뜨린 박치의의 부채가 단서가 되어 체포되어서 박치의는 사형을, 박세건은 10년 징역형을 언도받았다. 1927년 2월에 감형으로 출옥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한국독립운동사』 3(국사편찬위원회, 1967)
『동아일보(東亞日報)』
집필자
박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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