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에는 사산감역관(四山監役官)을 4산에 나누어 임무를 수행케 하였으나 1754년(영조 30)에 사산참군으로 개칭하였다.
사산참군은 새로 무과에 급제한 사람 중에서 선전관(宣傳官)이 후보로 추천한 사람을 임명하여 동·서·남·북 각 1인으로 도성(都城) 내외산(內外山)과 도로 연변에 있는 송림(松林)의 보호·육성과 성첩의 보호를 맡아 보게 하였다.
사산참군은 정7품의 관직으로 근무일수 30개월이 차면 6품으로 승급시켜 주었으며, 4산의 동구는 어영청, 서구는 훈련도감, 남구는 금위영, 북구는 총융청이 각각 관할하였다.
한편, 도성 안의 교량(橋梁)도 이들 군영에서 나누어 맡고 사산참군으로 하여금 순시케 하여 개천에 모래가 차거나 석축(石築)이 무너진 곳을 준천사(濬川司)에 보고하여 고치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