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당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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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조선후기 서당의 설립과 운영을 위하여 동족마을의 구성원들이 조직한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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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서당의 설립과 운영을 위하여 동족마을의 구성원들이 조직한 계.
내용

전통사회에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었던 계조직을 서당의 운영에 도입한 경우이다. 주로 18세기 이후 서당운영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사족 및 하층민들을 중심으로 발전되었다.

서당계의 초기적인 모습은 대체로 동족결계(同族結契)로 나타난다. 동족마을의 구성원들이 계원이 되어 기금을 마련하고, 그 자금으로써 훈장을 모시고 서적을 구입하는 등 서당 운영의 재원으로 활용하였다.

서당계가 조직되었을 때, 서당 자산의 확보와 관리는 일차적으로 그들 계원들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따라서, 서당의 이용권한은 계원들에게 우선되었으나, 곳에 따라서는 비계원에게도 강학과 거접(居接)이 허용된 사례가 있었다.

한편, 서당계는 대부분 부족한 재력을 극복하고자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경제적 토대를 확보하는 문제가 중요한 내용이었다.

이 때 대부분 식리(殖利)를 통하여 자본을 증식하였다. 경상북도 의성현(義城縣)에 설립되었던 오계서당(梧溪書堂)의 경우는 식리로 얻은 이윤으로 서당답(書堂畓)과 서책을 구입하였던 사례를 볼 수 있다.

서당이 계조직이나 혹은 문중의 공동관리하에 있을 때는 식리행위를 포함한 재정관리는 별도로 유사(有司)를 뽑아서 관리하도록 하였다. 서당계가 형성되었을 때 계원 상호간의 공동체의식은 대단히 높아, 향촌민들의 촌락공동체 형성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서당계절목』이 흔히 문약(門約)·동약(洞約)과 내용상의 일치를 보이며 향촌 내부의 통제원리로 작용하였던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때로는 서당계가 공동체의식을 바탕으로 모역사건(謀逆事件)의 핵심집단으로 변질되었던 사례도 18세기 후반에서는 나타난다.

소규모의 자산으로도 학교운영이 가능한 서당계의 고안은 서당을 향촌사회의 자체 운영원리에 의하여 움직이게 한 탁월한 방법이었고, 하층민들의 교육참여를 용이하게 한 제도였다.

참고문헌

『18세기서당연구』(정순우,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5)
『한국사회경제사연구』(김삼수, 박영사, 1974)
집필자
정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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