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2책의 목활자본이다. 1875년(고종 12) 후손 영두(永斗)가 병자호란에 타다 남은 유집 15권을 간추려 편집, 간행한 것이다. 권두에 송병선(宋秉璿)의 서문과 권말에 유최기(兪最基)의 발문이 있다. 1905년에도 간행한 바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원광대학교 중앙도서관, 전주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권1·2는 부(賦) 1편, 오언절구(五言絶句) 36수, 육언절구(六言絶句) 1수, 칠언절구(七言絶句) 73수, 오언사율(五言四律) 19수, 장단사율(長短四律) 1수, 칠언율시(七言律詩) 10수, 오언고시(五言古詩) 4수, 칠언고시(七言古詩) 2수, 서(書) 10편이 수록되어 있다.
권3은 서(序) 3편, 기(記) 4편, 발(跋) 1편, 찬(贊) 6편, 전(傳) 1편, 잡저(雜著) 4편이다.
권4는 부록으로 행장(行狀)과 묘갈명 각 1편, 제문 10편, 만사(輓詞) 12수, 스승인 성수침(成守琛)으로부터 온 편지와 벗들로부터 온 편지 5편, 차운시(次韻詩) 약간 편, 집의(執義)로 증직된 데 대한 권말의 문적, 그리고 연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는 자연을 노래한 것들이 대부분인데, 그중 「하귀거사(何歸去辭)」는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차운하여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의지를 보여 주며, 「견남헌팔경(見南軒八景)」이나 「계당팔경(溪堂八景)」과 같이 저자가 우거하였던 용산(龍山)의 곳곳을 소재로 노래한 작품이 많다.
서 가운데 「여신태화서(與辛泰華書)」는 신경진(辛慶晉)에게 학행으로 천거됐을 즈음 자신의 진퇴에 관한 소회와 전란 중에 접한 서신의 반가움 등을 썼으며, 「유향중서(諭鄕中書)」는 1592년 6월과 10월에 고을에 띄운 창의서(倡義書)이다.
기는 「용산(龍山記)」와 같이 용산 주변 산수에 대해 서술한 산수기와 「매헌기(梅軒記)」와 같이 건물과 관련하여 기록한 누정기가 있다.
「용산거사전(龍山居士傳)」이나 「용산거사찬(龍山居士贊)」은 자신의 개결(介潔)한 모습을 자찬하고 있다.
잡저의 「일기」는 1592년 4월 임란 발발 상황에서부터 1594년 1월 4일 경상도로 군량을 보내기까지의 기록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의 활동 상황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용산지(龍山誌)」는 그가 거처하는 정자의 배경을 낱낱이 밝힌 것으로 무려 87개의 물명(物名)이 등장한다.
부록에 수록된 저자의 행장과 묘갈명은 각각 1797년 임육(任焴)과 1803년 송환기(宋煥箕)가 지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