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1책. 석인본. 1691년(숙종 17)경 처음 간행되었고, 1959년 후손 치범(治範)·문범(文範) 등이 중간하였다. 권두에 남구만(南九萬)의 초간본 서문과 유영선(柳永善)의 중간본 서문이 있으며, 권말에 후손 사범(思範)의 발문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과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부(賦) 22편, 사(辭) 16편, 시 120수, 소(疏) 1편, 계(啓) 4편, 서(書) 1편, 잡저 12편, 발(跋) 2편, 명(銘) 4편, 잠(箴) 3편, 찬(贊) 5편, 제문 4편, 묘비명 3편, 묘갈명 3편, 묘갈음지(墓碣陰誌) 1편, 묘지명 2편, 행록 1편, 부록으로 세계·연보·신도비명·묘표·행장·묘갈명·묘지명 각 1편과 만사 19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편(附篇)에는 아우 해익(海翊)의 『호산유고(湖山遺稿)』가 있다.
시의 대부분은 생활을 소재로 한 것인데, 「석추란부(惜秋蘭賦)」·「민기부(悶己賦)」·「발도사(發棹辭)」·「망미인사(望美人辭)」 등과 같이 한인풍(漢人風)의 작품도 상당수 있다. 이는 당시 유행하던 고문운동(古文運動)의 일단으로 보인다.
칠언율시의 「기몽(記夢)」과 잡저의 「기몽」은 모두 자신이 꾼 꿈과 현실 세계와의 기이한 결합을 서술한 것이다. 작자의 풍부한 상상력과 자유분방한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
잡저의 「서한비세난편후(書韓非說難篇後)」에서는 교묘한 논리의 결합으로 남을 설득하기 어려운 점은 인정하지만, 이윤(伊尹)과 태공(太公)은 입을 열지 않고 은(殷)·주(周)를 얻었고, 공자와 맹자는 천하를 주유하고도 얻지 못한 것을 보면, 변설(辯說)만으로는 명(命)을 좌우할 수 없다고 하였다.
「청백안설(靑白眼說)」에서는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두고 주관적으로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 없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