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직지사의 말사인 청암사(靑巖寺)의 부속 암자이다.
859년(헌안왕 3)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수도도량으로 창건한 사찰이다. 도선은 청암사를 창건한 뒤 수도처로서 이 터를 발견하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여 7일 동안 춤을 추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 뒤 이 절은 수도승들의 참선도량으로 그 이름을 떨쳤으나 6·25전쟁 때 공비 소탕작전을 펼치면서 전소된 뒤 최근 들어 크게 중창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적광전(大寂光殿)·약광전(藥光殿)·선원(禪院)·관음전(觀音殿)·나한전(羅漢殿)·노전(爐殿) 등이 있으며, 1969년 도림당 법전대종사(道林堂 法傳大宗師)가 대적광전 등의 당우를 중건하였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약광전석불좌상과 동서 삼층 석탑(2기),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등과 함께 창건 당시의 것으로 보이는 기단석과 초석이 남아 있다.
이 중 약광전의 석불좌상은 도선이 조성한 것으로 전해지며, 금오산 약사암과 직지사 삼성암에 있는 약사여래와 함께 방광하였다 하여 3형제 불상으로 불린다. 특히 머리 부분에 보관(寶冠)을 장식했던 흔적이 있어 주목된다. 이는 약사여래의 머리에 금속관을 설치했던 것으로 흔하지 않은 예이다.
석조비로자나불상은 석굴암 불상보다 80㎝ 작으며, 9세기에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북석리에서 제작하였다고 한다. 당시 이 불상 운반에 골몰하고 있을 때 한 노승이 나타나서 등에 업고 이 절까지 운반하였는데, 절에 다 와서 칡덩굴에 걸려 넘어졌다고 한다. 당시 노승은 산신령을 불러 크게 꾸짖고 칡덩굴을 모두 없애게 하였는데, 지금까지도 이 절 근처에는 칡덩굴이 없다. 또 3층 석탑은 도선이 창건 당시에 이 절터가 마치 옥녀(玉女)가 베를 짜는 모습을 갖추고 있는 지대라 하여 베틀의 기둥을 상징하는 뜻으로 두 탑을 세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