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계주(朴啓周)가 지은 장편소설. 1938년 ≪매일신보 每日申報≫의 장편소설 현상모집에 당선되어 1939년 1월 1일부터 6월 17일까지 연재되었고, 같은 해 10월 매일신보사에서 단행본으로 간행하였다. 당시 박계주는 박진(朴進)이라는 가명으로 응모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1941년에는 극단 ‘성군(星群)’에서 극화되어 상연되었다. 1940년대와 1950년대에 대중적인 인기를 모았으며 1958년 영화화되기도 하였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부친은 간도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다가 암살되고 그를 어렵게 교육시킨 홀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최문선(崔文善)은 원산으로 와 김영호(金永鎬)의 집에 의탁하게 된다.
문선은 원산 해수욕장에서 익사 위기의 인순(仁順)을 구출해주는데 인순은 곧 문선을 흠모하게 된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는 우연히도 부친끼리 친구였던 윤 목사의 딸 명희(明姬)와 해후하고 둘은 쉽게 가까워진다.
명희 오빠 명근의 청에 의해 그 집안의 사회사업도 도울 겸 문선은 서울로 돌아온다. 그러나 야학교의 조선어 작문 시간에 의기(義妓) 계월향(桂月香)에 대한 글을 읽어준 것이 탈이 되어 문선은 10개월의 옥고를 치른다.
직장에 사표까지 낸 명희와 윤 목사댁의 옥바라지에 못지 않게 인순도 지성으로 생명의 은인인 문선에게 보답한다. 최문선은 두 여인 사이에서 고심하나 명희와 더욱 가까워지고, 이를 안 인순은 집요하게 접근한다.
출옥한 뒤 인순의 간청에 못 이겨 그녀의 집을 방문하러 갔다가 갑작스런 타격에 그는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 다음날 신문에는 그가 짝사랑하던 여인을 살해하고 피해자의 저항에 상해를 입었다는 기사가 크게 실린다.
그는 강간살해범으로 기소되고 그날의 상처로 실명하게 되자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런데 몰래 한 젊은이가 찾아와 자신이 진범임을 고백하고 용서를 빈다.
문선은 이미 실명한 자신보다 진범을 구하겠다는 결심으로 법정에서 거짓 자백을 해 사형선고를 받기에 이른다. 이에 감복한 진범의 자수로 문선은 방면된다.
출옥하는 날 그는 서울을 떠나 함경도에서 과수원을 하는 친구집에 의탁하게 되고, 문선의 무고함을 알게 된 명희는 그의 행방을 찾아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문선의 소재를 알고 함경도로 달려온다.
두 사람은 감격적인 재회를 하고 혼인한다. 혼인 뒤 명희는 문선에게 헌신하고 문선은 ‘순애보’라는 소설을 신문에 연재한다는 것으로 이 작품은 마무리된다.
이 소설은 사건 전개가 지나치게 우연성에 의존하고 있으며, 작가의 자의적인 삽화가 부자연스럽게 처리되는 등 작품 구성이나 기법에서 미흡한 점이 드러나고 있는 작품이다. 1930년대 장편소설의 일반적인 경향에서 볼 때 소재도 새롭다고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통속성이 두드러진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대중적인 독자층의 열렬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던 까닭은, 작가가 의도한 지순한 사랑의 요구가 독자층의 갈망과 부합하였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표면으로 내세운 기독교적 휴머니즘과 통속적인 애정 행각의 괴리는 이 작품의 의도를 약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