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첩

의생활
물품
조선시대에, 색실 · 수본 · 헝겊 조각 따위를 넣어두기 위하여 종이를 배접하여 접어 만든 첩(帖).
이칭
이칭
실합, 색실첩, 실상자
물품
재질
한지|색지|비단
용도
실을 담는 수납구|바느질용품
소장처
국립민속박물관
제작 시기
조선
관련 의례
혼례
내용 요약

실첩은 조선시대에 색실이나 수본 및 헝겊 조각 등을 넣고자 종이를 배접하여 책처럼 접도록 만든 수납구이다. 실패가 나무를 깎아 실을 감아 보관하는 것과 달리 실첩은 종이로 지갑처럼 만들고 책처럼 접어서 보관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백지를 두껍게 배접하여 반으로 접고 안쪽에 칸을 만드는 단순한 형식이다. 이것을 두세 번 접고 그 안에 칸칸이 갑을 만들어 여러 색실을 분류하여 넣기도 한다. 표면에 색지로 좋은 의미를 지닌 여러 길상 문양을 오려 붙여 장식한다. 납작한 책 형태의 실첩은 직육면체의 나무로 심을 넣은 실상자로 발전하였다.

정의
조선시대에, 색실 · 수본 · 헝겊 조각 따위를 넣어두기 위하여 종이를 배접하여 접어 만든 첩(帖).
연원

실을 담아 두는 실첩이 언제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실첩을 만드는 재료가 쉽게 삭거나 헤지는 물질이어서 남아 전해지는 경우가 적기 때문이다. 다만 인류가 옷을 지어 입기 시작하면서 실첩은 바느질 관련 도구의 하나로 발전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현존하는 실첩 유물의 대다수는 조선 후기나 말기의 것이어서 조선시대에는 실첩이 널리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형태와 제작 방식

실첩은 실을 넣어 보관하는 수납구로 겉보기에는 보통의 책처럼 되어 있으나 펼치면 여러 개의 칸막이 실갑이 생긴다. 일반적으로 무명실처럼 바느질에 사용되는 실은 물레를 돌려 길이가 긴 것을 실패에 감아 쓰고, 명주실처럼 일정한 길이로 색색이 염색을 해서 자수에 사용되는 색실은 엉키지 않게 실첩에 넣어 보관하였다.

실첩은 오늘날 국립민속박물관을 비롯한 각급 박물관에 조선 후기 침선 도구로 다수가 소장되어 있어 그 형태나 색채와 문양, 그리고 제작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실첩은 한지를 여러 겹 배접하여 책과 같이 접어서 직사각형의 형태로 만든다. 실첩의 재료는 형태를 이루는 바탕과 그 위의 무늬도 대부분 한지를 사용한다. 한지의 얇고 질기고 잘 접히는 재료적 특성을 이용한 것이다. 종이는 자르기 쉽고 반듯하게 접히며 풀을 붙여 연결하기 쉬운 재료여서 다양한 구조로 바꾸어 사용할 수 있다.

한지를 사용해서 실첩을 만드는 방법은 여러 겹의 한지를 붙여 두껍게 합지(合紙)하여 직사각형의 형태를 만들고 위쪽의 무늬 부분은 얇은 한지를 오색으로 물들여 문양대로 오려 붙인다. 간혹 문양 부분에 색 헝겊을 오려 붙인 것이 있는데, 색 헝겊은 두께도 한지보다 두툼하고 가장자리의 올이 풀리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실첩은 각종 색실을 색깔대로 분류하기 위해 여러 칸으로 나누고, 부피를 줄여 가볍고 꺼내 쓰기 편하게 접는 방법을 고안한 것이다. 단순하게 한 번 접는 경우도 있으나 대개 두 번, 세 번 접어 여러 칸을 만든 후 칸칸마다 각기 다른 색실을 넣게 만들기도 한다. 내부를 여러 칸으로 접어서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칸칸이 펼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구조적으로 볼 때 작은 칸은 8칸, 다시 연결되어 4칸이 형성되고 다시 2칸이 되고 최종적으로 넓은 1칸의 면적으로 이뤄지는 지공예품이다.

현존 유물 중 색실첩은 마치 책처럼 표지와 마지막에 비단으로 옷을 입힌 후 왼쪽을 오방침으로 꿰매고 제목을 쓴 주1 종이까지 붙인 책의 형태로 되어 있다. 19세기 초 순조의 셋째 딸인 덕온공주(德溫公主)가 사용하던 실첩 유물은 가로 · 세로 28㎝, 두께 2㎝인 정사각형이며 두 번 접어서 만든 것이다. 이것을 펼치면 28㎝의 정사각형 면이 셋으로 구분된다. 한 면의 맨 위에는 작은 갑[小匣]이 2개씩 짝지어 4개, 다음 층에는 중간 크기의 중갑[中匣] 2개, 맨밑 층에는 큰 갑[大匣] 1개, 총 7개가 있다. 이것이 한 면마다 똑같은 3층의 갑이 모두 7개씩 반복되어, 두 번 접은 실첩을 모두 한꺼번에 펼치면 소갑 12개, 중갑 6개, 대갑 3개로, 모두 합해 총 21개의 갑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 밖에 대부분의 실첩은 형태가 대체로 납작한 직사각형으로 두세 번 접어 겉보기에 얇은 책처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접힌 상태의 실첩은 딱지처럼 접혀져 있는 그대로 네모이지만, 한 겹을 펼칠 때마다 각각에 얇은 칸이 만들어져 있어 실이나 수본 및 작은 헝겊 조각 등을 넣을 수 있다. 납작한 지갑 속에 더 납작한 지갑이 중첩되어 있는 모양새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실첩의 겉모양은 가로 16cm∼20cm, 세로 27cm∼28cm, 두께 2cm∼5cm 가량의 얇은 책처럼 되어 있다. 이것을 펼치면 여러 개의 사각형으로 칸이 나뉘어져 있고, 2개씩 짝을 지어 세우면 지갑형의 실갑으로 되는 방식이다.

이렇게 실첩의 형태를 만든 다음 표면에는 박쥐 · 나비 · 꽃잎 등의 무늬를 색지로 오려 붙인다. 박쥐는 복을, 꽃과 나비는 부부간의 화합을 뜻하는 문양으로서, 이 유물은 부부가 화합하여 복 받고 오래오래 살라는 주3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관련 풍속

실첩은 전통 의생활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용품이다. 옷감을 마름질하고 꿰매어 일정한 형태로 완성시키기 위해 여인들은 바느질과 관련된 일곱 친구[閨中七友]를 항상 곁에 두는 풍습이 있는데, 바늘 · 실 · 골무 · 가위 · 자 · 인두 · 다리미가 그것이다. 이 일곱 가지 도구를 의인화한 글에는 『규중칠우쟁론기(閨中七友爭論記)』가 있다.

이러한 자질구레한 주2 도구들을 잘 간직하기 위해 한꺼번에 넣어 두는 반짇고리가 있으며, 각각을 분류하거나 담아 두는 개별적인 수납구도 마련하였다. 머리카락보다 가느다란 바늘은 특히 잘 챙기지 않으면 잃어버리기 십상이어서 주4 · 주5 · 주6 · 주7 등에 꽂거나 넣어서 정리하고, 실은 길고 부드러워 자칫 헝클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실패에 감거나 실첩이나 실상자 등에 따로따로 챙겨서 보관한다. 인두는 불을 달구거나 간수하기 위해 화로에 꽂아 두고 사용할 때에는 주8을 사용한다.

침선 도구는 여성들이 늘 곁에 두고 함께한 용품이기 때문에 비록 물건이지만 감정이입을 하여 문학적으로 승화하기도 했는데, 19세기 초 순조 때 부러진 바늘을 의인화하여 애통해하며 지은 『조침문(弔針文)』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실을 실패 등에 잘 감아서 정리해야 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는 "실패에 실이 감겨 있지 않으면 부모가 일찍 죽는다."라거나 "실패에 실을 넓게 감으면 남편이 바람피우게 된다."는 등의 속담을 통해서도 침선 도구의 풍속을 엿볼 수 있다.

변천 및 현황

한지의 질기고 강한 성질을 이용하여 면과 면을 접어 칸과 칸을 만드는 원리로 다양하게 만들어진 실첩은 오늘날 여러 박물관뿐만 아니라 가전으로도 전해지고 있다. 특히 실첩의 표면에는 부부가 화합하여 자식들을 많이 낳아 복을 많이 받고 잘 살라는 길상적인 의미를 지닌 문양들을 배치하여 당시 사람들의 소망을 반영하였다. 이렇게 조선시대 여인들이 생활하면서 늘 곁에 두었던 실첩은 작고 아담하여 반짇고리에 들어가는 크기이지만, 색상이 화사하고 구조가 섬세하여 그것을 만들고 사용한 이의 생활 속 지혜와 감정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실첩과 유사하면서 기술적으로나 형태적으로 발전한 것이 실상자[絲函]이다. 실첩이 한지를 여러 겹 겹치거나 두꺼운 장지를 사용하여 만들었다면 실상자는 속심으로 합판을 넣고, 그 위에 색지를 발라 직육면체의 상자 형태로 만든 것이다. 일반적으로 실상자는 납작한 직사각형의 실첩과 달리 직육면체의 형태를 가지며, 가로 27cm∼30cm, 세로 15cm∼19cm, 높이 12cm∼16cm 정도이다.

실상자의 내부는 위 아래 칸으로 나뉘어져 있다. 아래 칸의 좌우는 서랍 2개를 배치하고, 위 칸은 16개의 사각형으로 구획한 다음 2개씩 짝지어 세워 하나의 실갑이 되도록 고안되어 있다. 실상자 중에는 내부 형태는 바닥부터 층층이 접어 그 안에 색실을 보관하도록 되어 있는 것도 있다. 이처럼 실상자는 실첩보다 규모나 부피가 커졌지만, 내부 구조는 실첩과 유사하여 색지로 칸을 나누고 색실을 종류나 색상에 따라 구분하여 넣을 수 있는 것이 공통적이다. 이러한 실상자를 실함[絲函]이라고도 부르며, 반짇고리와 함께 혼례 때 친정에서 시집 갈 처녀들에게 평생의 친구로 만들어 주는 풍습이 있었고, 이 풍습은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참고문헌

원전

『규중칠우쟁론기(閨中七友爭論記)』
『조침문(弔針文)』

단행본

석주선, 『한국복식사』(보진재, 1978)

논문

오설중자, 「우리나라 바느질용구에 관한 연구」(숙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0)
유재선, 「조선조 민예품에 나타난 실첩 실상자의 조형적 특성」(이화여자학교 석사학위논문, 1984)
이미석, 「조선시대 규방문화와 침선소품에 관한 연구」(숙명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22)
주석
주1

액자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씀. 우리말샘

주2

바늘과 실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3

운수가 좋을 조짐. 우리말샘

주4

바늘을 몇 개 넣어 몸에 달고 다니는 조그마한 갑. 우리말샘

주5

바늘 스물네 개를 종이나 납지로 납작하게 싼 뭉치. 우리말샘

주6

바늘을 쓰지 아니할 때 꽂아 두는 물건. 우리말샘

주7

바늘을 담아 두던 통. 청동기 시대의 유적에서 나온 것으로, 둥근 동물 뼈의 한쪽 끝을 막아서 만들었다. 우리말샘

주8

인두질할 때, 다리는 물건을 올려놓는 기구. 직사각형의 널조각 위에 솜을 두고 종이나 헝겊으로 싸서 만든다.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장경희(한서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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