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0년(충선왕 2) 작.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419.5㎝, 가로 254.2㎝. 일본 가가미신사(鏡神社) 소장. 이 그림은 손상은 더러 있지만, 제작 연대·화사(畫師)·봉안 인연 등을 알 수 있는 고려 불화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몸을 틀고 앉아 있는 관음상의 자세가 독특하다.
구름 모양으로 된 바위 절벽과 쌍죽을 배경으로 암반 위에 걸터앉은 관음상의 자세는 방향만 다를 뿐 일본 후지이사이세이회유린관(藤井齊成會有鄰館) 소장 양류관음도와 비슷하다.
그리고 발 아래 연못이나 맞은편의 선재동자(善財童子 : 求道의 보살 이름)와의 대각선 구도, 왼손 옆에 놓인 정병에 꽂은 버들개지 등의 배치도 역시 놓여진 방향만 다를 뿐 매우 비슷하다. 그러나 이 보살의 자태는 서구방(徐九方)이 그린 양류관음도보다는 풍만하며 보다 덕성스러운 점이 눈에 뜨인다.
풍만한 얼굴에 시원한 눈매, 작고 예쁜 입, 매력적인 코 등의 묘사는 보다 부드럽고 보다 자비스런 표정을 나타낸다. 또한 풍만하고 넓은 가슴, 둥글고 미끈한 어깨의 굴곡, 다리나 팔의 미묘한 흐름 등에서 보여 주는 이 보살의 매력은 우리를 관음의 세계로 끌어들이고 만다.
관음보살을 우러러 쳐다보는 대안(對岸)의 선재동자는 귀염성 있는 얼굴에 초롱초롱한 눈매, 작은 입의 묘사로 귀여운 동자의 얼굴을 잘 나타내었다. 천의 자락 같은 옷자락이나 옷에 묘사된 필선은 활기차고 숙달된 것으로 달마도(達摩圖) 같은 선종화(禪宗畫)의 필선에 필적할 만한 것이다.
투명한 사라의 흰색이나 귀갑 무늬로 새겨진 의상의 밝고 선명한 붉은색 장신구나 선묘(線描 : 선으로만 그림)의 찬란한 금색은 서로 조화되어 전 화면의 분위기를 호화찬란하고 밝은 분위기로 만들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후기(後記 : 1812년 伊能忠敬의 기록)에 의하면, 이 그림은 1310년 화원 소속의 화원으로 생각되는 김우문(金祐文)·이계(李桂)·임순(林順)·송련(宋連) 등이 제작한 일종의 궁정화(宮庭畫)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그림은 고려 말 왜구들의 노략질에 의하여 약탈된 것으로 양각(良覺)·양현(良賢)의 두 사제(師弟)에 의하여 가가미신사에 바쳐져 진보(珍寶)로 숭앙되어 오던 기구한 운명을 겪은 작품이다. 따라서 당시 고려 불화들이 왜구의 대거 약탈로 일본으로 건너갔던 사정을 명백히 알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