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류관음도 ()

목차
회화
작품
고려시대의 불화.
목차
정의
고려시대의 불화.
내용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227.9㎝, 가로 125.8㎝. 일본 다이도쿠사(大德寺) 소장. 여러 가지 면에서 일본 후지이사이세이회유린관(藤井齊成會有鄰館) 소장 관음도와 비견되는 작품이다.

하지만 설화성(說話性)이 보다 풍부한 점이 두드러진다. 즉, 머리 위에 고드름같이 늘어진 바위는 암굴을 나타낸 것이다. 이 암굴의 천장이 시작되는 입구에는 꽃을 입에 문 청조(靑鳥)가 관음을 향해서 내려오는 모양을 그리고 있다.

이 새는 관음의 화신으로 생각되는데 ≪삼국유사≫ 낙산이대성조(洛山二大聖條)에 언급되어 있다시피 의상(義湘)에 이어서 원효(元曉)가 관음성굴을 참배하러 갈 때 인도한 관음의 화신인 청조라 할 수 있다. 관음보살이 절벽과 쌍죽을 배경으로 대각선으로 비스듬히 앉아 있는 구도는 앞 그림들과 동일하다. 하지만 대안(對岸)에 배치된 인물들과 연못 등이 독특하다.

즉, 관음을 에워싸고 연못이 계속 이어지는 것처럼 묘사하였다. 이 대안의 선재동자(善財童子 : 求道의 보살 이름)가 서 있는 자리에 대왕의 모습을 한 천(天)과 보주를 들고 있는 용(龍) 등 팔부중이 관음을 향해 공양을 바치는 자세들이며, 기를 들고 가는 인물상과 공양물을 가지고 가는 여인상 등이 묘사되고 있다. 선재동자는 왼쪽 모서리 연못 가운데의 섬에 엉거주춤한 자세로 합장하고 있다.

천과 용 등 팔부중과 시종 등은 청조와 관음의 손목에 걸고 있는 염주·쌍죽 그리고 암굴 등과 더불어 ≪삼국유사≫에서 전하고 있는 낙산관음성굴의 관음보살과 그 친경 광경을 도상화시킨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 그림은 낙산성굴의 양류관음도의 대표적인 예로 손꼽을 수 있다.

바위에 비스듬히 걸터앉아 있는 관음상은 풍만한 얼굴, 부드러운 어깨의 곡선, 젖가슴까지 표현한 부드러운 가슴의 굴곡, 유연한 팔다리의 처리 등에서 서구방(徐九方)이 그린 관음도와 흡사하다. 또한 신체까지 담홍색으로 표현한 밝고 선명한 색감 등은 일본 후지이사이세이회유린관 소장 관음도와 닮아서 이와 친연성이 가장 강한 동일 양식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그보다 부드러운 얼굴 표정 등에서 가가미신사(鏡神社) 소장 <양류관음도>의 특징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서구방 필 <양류관음도>보다는 약간 앞서 제작된 것이 아닌가 한다.

이 그림은 서구방 필 양식 계통에서도 대표적인 걸작품이다. 그리고 ≪삼국유사≫ 낙산성굴의 설화 내용을 매우 적절히 표현하고 있는 점에서 감동적인 양류관음도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한국의 미 7-고려불화-』(이동주 감수, 중앙일보사, 1981)
『高麗佛畵』(菊竹淳一·吉田宏志, 東京 朝日新聞社, 1981)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