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로 105.5㎝, 가로 54.3㎝. 비단 바탕에 채색. 일본 후지이사이세이회유린관(藤井齊成會有鄰館) 소장. 구도·형태·색채 등에서 1323년(충숙왕 10) 서구방(徐九方)이 그린 양류관음도와 가장 유사한 작품이다. 그보다는 화면이 훨씬 밝고 선명하여 궁정 귀족의 양류관음의 특징이 가장 잘 표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기암(奇巖)의 암반 위에 비스듬히 걸터앉아 대각선적으로 아래쪽의 선재동자(善財童子 : 求道의 보살 이름)를 내려다보고 있는 자세며, 배경이 되는 구름 같은 절벽, 오른손 옆의 벼랑 위에 얹혀 있는 투명한 수반 위에 놓인 버들개지가 꽂혀 있는 정병, 발 아래 연못의 기화(奇花)·연꽃·산호, 보석들이 수놓인 굴곡 있는 언덕들은 약간의 변화를 제외하면 바로 서구방필 양류관음도의 구도와 같다.
그러나 구름 모양 바위는 관음의 신체의 배경을 이루면서 하늘로 치솟아 머리 위로 위태로운 절벽을 이루고 있다. 이것은 물론 일본 다이도쿠사(大德寺) 소장 관음도와 함께 관음굴을 표현한 것이 분명하다. 이와 함께 쌍죽(雙竹)이 바위 전면으로 나와 연못가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점 등은 좀 다른 구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풍만한 얼굴에 날카로운 눈, 근엄한 표정은 물론 흰 사라 속에 투명하게 비치는 가슴의 풍만함, 부드러우면서도 탄력 있는 어깨의 굴곡선, 손이나 발의 날렵한 모양 역시 서구방 필 「양류관음도」 그대로이다. 하지만 금색과 녹색의 배합은 붉은 기가 감도는 신체의 살색과 조화되어 호화찬란함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는 서구방 필 양류관음도가 결코 따를 수 없다.
이런 모든 점을 감안한다면 서구방 필 양류관음도와 비슷한 연대에 제작된 이른바 1320년 전후의 작품이다. 하지만 좀더 호화찬란한 점에서 이 불화의 아름다움이 한결 돋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