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연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이다. 신라하대 창건됐다고 전하며, 15세기 이후 중창됐으나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되고 다시 재건되는 것을 반복했다. 통도사의 사리가 옮겨 오면서 금강계단이 조성됐다.
914년(신덕왕 3)에 보양화상(寶壤和尙)이 창건하였고, 1419년(세종 1)에 천일(天日)이 중건했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자 1603년(선조 36)에 사명대사(四溟大師)가 인잠(印岑), 탄옥(坦玉), 경천(敬天) 등에게 명하여 주1 했다.
1621년(광해군 13)에 범종각을 건립했는데, 1650년(효종 1)에는 불이 나서 법당과 요사 등이 모두 소실됐다. 다음 해 계환(戒環), 여휘(麗輝) 등이 설선당(說禪堂)과 심검당(尋劍堂)을 건립했고, 다음 해에는 일언(一彦)과 학신(學信)이 동상실(東上室)과 서상실(西上室)을 건립했다.
1653년에는 홍묵(弘默)이 대웅전을, 승안(勝安)이 명부전을 건립했으며, 다음 해에는 일주(一珠)가 만월루(滿月樓)를 건립했다. 1655년에는 희감(熙鑑)과 홍묵이 함허당(含虛堂)과 관정료(灌頂寮)를 건립하였고, 다음 해에는 청진(淸振)이 관음전을 건립했다.
1657년에는 계홍(戒弘)이 반상료(返常寮)를, 1658년에는 도행(道行)이 명월당(明月堂)을, 1659년에는 학신이 주2을 건립했고, 1660년(현종 1)에는 일순(一淳)이 약사전을, 1661년에는 계홍이 두월료(斗月寮)를 건립했다. 1668년에는 대종(大鐘)과 금구(金口)를 주3, 1670년에는 주4 앞의 주5가 완성됐고, 1672년에는 법고(法鼓)를 완성했다. 1673년에는 자진(自珍)이 세존부도(世尊浮屠)와 비석을 건립했다.
1674년에는 부도암을, 1675년(숙종 1)에는 사리각(舍利閣)을 건립했으며, 또 용문교와 법당의 중종(中鐘)을 차례로 완성했다. 1682년에 천왕문을, 1688년에 응진전(應眞殿)과 주6을 조성했으며, 1693년에 영류당(咏流堂)을, 1695년에는 일주문을 건립했고, 1711년에 시왕탱(十王幀)을 주7 명부전을 주8.
1722년(경종 2)에는 찬화(粲和)에 의해 대웅전과 주9이 주10. 이들 전각은 무려 200여 칸에 달하였으며, 거주하는 승려는 500여 명이나 됐다. 1726년(영조 2)에 대웅전과 동 · 서 별실, 좌 · 우 승당이 다시 불탔으나, 1728년 혜조(惠照)가 찬화와 더불어 중건했다.
국가유산으로는 주11를 봉안한 1971년 보물로 지정된 달성 용연사 금강계단이 있다. 이 계단에 모신 사리는 원래 통도사에 있던 것으로, 사명대사가 제자 청진(淸振)이 다시 통도사로 옮길 때 용연사의 승려들이 그 일부를 모셔 와 이곳에 봉안하였다 한다. 통도사 불사리계단(佛舍利戒壇)의 형태를 본떠 만들었는데, 석가여래비에 따르면 이 계단은 광해군 5년(1613)에 완성됐다.
1655년 조성된 목조 아미타여래삼존 좌상 및 복장유물은 2014년 보물로 지정됐다. 복장 주12을 비롯하여 조성발원문, 복장전적 등 조성 당시의 원형을 갖추고 있어 불교 조각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은 영조 4년(1728)에 다시 지은 건물로 이 극락전 앞에 있는 삼층석탑과 함께 1995년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