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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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숙종 때, 노론 4대신과 함께 연잉군을 지지하다 소론 측이 일으킨 신임사화를 계기로 처형된 문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722년(경종 2)
본관
전주
목차
정의
조선 숙종 때, 노론 4대신과 함께 연잉군을 지지하다 소론 측이 일으킨 신임사화를 계기로 처형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전주(全州). 김춘택(金春澤)의 사위이다. 숙종 말년 세자의 대리청정 때 소론연령군(延齡君)을 지지했지만, 노론경종의 아우인 연잉군(延礽君, 후의 영조))을 지지하였다. 이 때 숙종은 노론의 거두인 좌상 이이명(李頤命)주1해 세자에게 왕위를 맡길 수 없다고 말하자 이이명이 만류해 두 왕자의 장래를 이이명에게 부탁하였다. 이에 이이명은 김용택(金龍澤)과 이천기 두 사람을 추천해 숙종의 뜻을 그들에게 전하였다. 이천기 등은 이이명의 부탁을 받고 그의 주2이희지(李喜之) · 이기지(李器之)김창집(金昌集)의 손자 성행(省行) 등과 모의해 무사와 술객을 비밀리에 길러 비상 사태에 대비하였다.

경종이 왕위에 오른 1720년 8월 김창집 · 이이명 · 이건명(李健命) · 민진원(閔鎭遠) 등 이른바 노론 4대신이 중심이 되고, 이천기 · 김용택 · 심상길(沈尙吉) · 서덕수(徐德修) · 정인중(鄭麟重) 등 5인과 더불어 연잉군을 왕세제로 세우려고 강행하려다 실패해 주3로 함께 처형되었다.

영조가 즉위한 뒤 대사성 송인명(宋寅明)이 어전에서 이천기 등은 숙종 말년부터 은으로 뇌물을 써서 내시 · 궁녀들과 결탁했으므로 처벌은 당연하다고 주청하였다. 그러나 영조는 임인옥안(壬寅獄案)을 불태우고 친히 ‘대훈(大訓)’이라는 글을 지어 종묘에 고한 뒤 노론 4대신에게는 시호를 다시 주고, 이천기 등 5인에게도 벼슬을 다시 주려 하였다.

이에 박문수(朴文秀) · 이종성(李宗城) 등의 반대하자, 왕은 ‘대훈’의 글자를 수정하면서까지 모두 주4하게 하였다. 즉, 노론 4대신의 주5나 이천기 등 5인의 음모가 모두 영조를 위한 것이니 이것이 곧 나라를 위한다는 단안이었다. 식견이 높고 가벼운 의리라도 태산같이 여겼으며, 성품이 곧고 강직했다 한다.

참고문헌

『영조실록(英祖實錄)』
『정조실록(正祖實錄)』
주석
주1

왕명으로 임금과 대면하여 정사에 대한 의견을 상주하던 일. 우리말샘

주2

아들과 조카를 통틀어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3

역적을 처벌하는 법률. 우리말샘

주4

가슴에 맺힌 원한을 풀어 버림. 우리말샘

주5

‘연명 차자’를 줄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집필자
조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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