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은 목가구나 건조물에 장식·개폐용으로 부착하는 금속이다. 결구나 모서리의 보강을 위한 것이지만 개폐 장치인 자물쇠도 여기에 포함된다. 장석은 목공예의 발생과 궤를 같이한다. 고대에는 기능 위주의 철제 장석이 주로 제작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황동제 장석이 가구의 구조에 따라 부착되어 최소한의 장식 구실을 겸하였다. 조선 말기부터는 수요층이 저변화되어 벽사·기복적인 상징성을 지닌 문양이 등장하였다. 장석의 종류는 경첩·들쇠·고리·감잡이·귀장식·자물쇠 등 다채롭다. 현재 장석의 제작 분야는 국가무형유산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있다.
결구나 모서리의 보강을 위한 것이지만 개폐장치인 자물쇠도 여기에 포함되며, 번거로운 치장을 절제하던 조선시대 가구에서는 최소한의 장식 구실을 겸하였다. 본래 두석(豆錫)이라는 말을 사용하여왔으나 근래에는 장석으로 불리는 것이 더욱 일반적이다.
조선시대의 관영수공업체인 경공장에 소속되어 장석의 제조를 담당하였던 분야명인 두석이라는 용어는 그들 장인이 주로 썼던 구리합금속 재료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두석을 이루는 합금속에 관해서는 아직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다.
두석을 “ 주석(朱錫), 황동과 동의어”라고 정의하였던 유희(柳僖)도 『물명고(物名考)』에서 다시 연성하지 않은 아연의 별칭일 가능성을 상정함으로써 조선시대 후기까지 두석이라는 용어의 해석에 혼선을 빚고 있었음을 알게 한다. 조선시대에 장석의 주재료로 사용하였던 황동은 일반적으로 구리와 아연의 합금속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단조기법을 주로 사용하는 장석의 제조에는 아연보다는 오히려 상납[錫]을 합금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구리와 아연의 합금으로는 주조(鑄造)기법으로밖에 제작할 수가 없고, 특히 두드리면 깨지기 쉬운 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석의 제작에는 구리에 상납의 합금, 즉 방짜쇠를 사용하여야 이상적이다. 그러나 그 경우 생산단가를 높여 비경제적이기 때문에 주석장석은 70%의 구리에다 상납과 아연을 각각 15%씩 섞어 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실제로 조선시대의 장석들에는 상납이 합금성분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을 황동으로 주조하였다고 하는데, 이 종에도 상당량의 상납이 섞여 있음은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두석이 조선시대에 주로 썼던 장석재료의 명칭에서 비롯되었다면 구리에 아연이나 상납 등을 합금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장석에 두석뿐만 아니라 거멍쇠 · 백동 등도 병용하였고, 더욱이 조선 말기에는 구리와 니켈의 합금인 백동이 장석 재료의 대종을 이루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두석이 특정 재료에 국한하지 않고 장석 재료의 포괄적인 지칭으로 정착되었다고 하겠다.
장석은 목공예의 발생과 궤를 같이하는 오랜 역사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다뉴세문경 등 청동기시대의 금속 유물들이 보여주는 높은 기술과 최근의 다호리(多好里) 출토 칠기는 이를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예이다.
삼국시대 이후부터는 옥봉(玉峰)7호분 벽화의 금속장석 그림이나 화엄사 사리탑에 부조된 자물쇠, 백제 부소산성 출토의 자물쇠 등 여러 자료를 통하여 그 대체적인 윤곽이 밝혀지고 있다. 고대에는 기능위주의 철제 장석이 주로 제작되었고,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후기까지 황동제 장석이 가구의 구조에 따라 간결하고 조화 있게 부착되었다.
조선 말기 이후부터는 수요층이 크게 저변화되고 민간의 정서를 반영하는 벽사 · 기복적인 상징성을 지닌 각종 문양들이 등장하면서 재료도 백동으로 바뀌는 새로운 경향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무절제한 사치풍조를 바탕으로 하여 은(銀) · 오동(烏銅) 등으로 문양을 상감하거나 불필요한 장석을 다량 부착하여 장식 과다에 빠짐으로써 오히려 질적인 쇠퇴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장석은 쓰임새와 부착되는 가구의 종류에 따라 다른 형식을 보이고 있으며, 그 종류 또한 경첩 · 들쇠 · 고리 · 감잡이 · 귀장식 · 자물쇠 · 앞바탕 · 광두정 등으로 다채롭다. 경첩은 장 · 농 · 왜 궤(倭櫃) · 문갑 · 반닫이 등 문이 달린 가구의 몸체와 문판을 연결하여 문의 여닫이 기능을 담당하는 장석이다.
경첩은 목가구뿐만 아니라 건축물의 문에도 같은 구실을 한다. 그 종류에는 암수 두 개의 쇠붙이를 끼워 맞추는 돌쩌귀와 날개판의 노출여부에 따라 구분되는 노출경첩 · 숨은경첩이 있다. 조선시대 가구에서는 노출경첩이 대종을 이루는 반면, 숨은경첩은 조선 말기 이후에 제작된 의걸이장이나 문갑 등에서 간혹 눈에 뜨일 뿐이다.
노출경첩은 그 형태에 따라 다시 동그레경첩 · 약과경첩 · 병풍이중경첩 · 제비추리경첩 · 운문경첩 · 불로초경첩 · 난(蘭)경첩 · 卍자형경첩 · 호리병경첩 · 호패경첩 · 수팔련경첩 · 남대문경첩 · 나비경첩 · 박쥐경첩 · 칠보경첩 등으로 분류된다.
이처럼 노출경첩이 주로 쓰였던 것은 조선시대를 중심으로 하여 경첩 등 장석에 최소한의 장식기능까지 아울러 부여하였던 데서 기인한다. 돌쩌귀는 구조적으로 경첩의 가장 시원적인 형식을 띠고 있다. 최근까지도 산간지방에서는 칡끈 등으로 문짝을 매달아 사용하는 경첩의 조형(祖形)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 쇠붙이로 대용하면서 돌쩌귀, 노출경첩, 숨은경첩의 순으로 발전되었다고 하겠다. 들쇠는 가구 전체를 들어올리거나 혹은 서랍 · 문짝을 열 때 잡아당길 수 있도록 부착된 손잡이를 말한다. 가구를 들어올리기 위한 들쇠는 가구의 양쪽 옆널에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나 박천반닫이 등에서는 앞판과 뒷널에 쓰인 예도 있다.
들쇠를 몸체에 고정하는 방법에는 들쇠와 몸체를 잇는 배목을 한 개 사용한 것과 두 개 사용한 것 등 두 가지가 있다. 배목 한 개의 들쇠는 대체로 힘이 적게 드는 서랍이나 문에, 그리고 배목 두 개의 들쇠는 가구 전체를 들어올리는 데 쓰인다. 배목 한 개의 들쇠가 조선 후기 이전의 가구에서 주로 눈에 띄는데, 이는 배목 두 개의 들쇠보다 시기가 앞서는 것임을 말해준다.
배목 한 개의 들쇠 종류에는 달지개쇠 · 환들쇠 · 방환들쇠 · 맷들쇠 · 봉수선화들쇠 · 칠보들쇠 · 박쥐들쇠 · 나비들쇠 등이 있다. 배목 두 개의 들쇠에는 반달들쇠 · ㄷ자들쇠 · 卍자들쇠 · 운문들쇠 · 활들쇠 · 초롱들쇠 · 죽절들쇠 · 붕어들쇠 등이 있다. 또한, 움직이는 들쇠가 가구의 몸체에 직접 닿지 않도록 바탕에 다양한 문양으로 오려 붙이기도 한다.
고리는 문짝을 개폐할 때 잡아당기거나 다른 문짝의 배목에 걸어서 자물쇠를 채울 수 있게 연결하는 장석이다. 고리는 특히 자물쇠의 개폐장치의 일부로서 이를 보강하는 구실을 하기 때문에 힘을 받쳐주도록 앞바탕 위에 부착하는 등 구조적으로도 배려되었다.
그 종류에는 둥근형을 기본으로 하여 네모고리 · 방환고리 · 칠보고리 · 편목고리 등 기하학적인 형태의 다양한 형식을 보이고 있으며, 여러 가지 장석 가운데 가장 시원적인 것 중의 하나이다. 감잡이는 기둥과 판널들을 서로 잇댄 결구 부분이나 모서리를 구조적으로 보강해주는 장석이다.
따라서, 기능적인 제한이 비교적 적어 형태가 다양하고 장식성이 풍부한 것이 특징이다. 쓰임새에 따라 허릿대감잡이 · 개판감잡이 · 굽통감잡이로 나뉘며, 허릿대감잡이는 다시 약과감잡이 · 고춧잎감잡이 · 망두감잡이 · 칠보감잡이 · 엽전감잡이 · 반달감잡이 · 제비추리감잡이 · 운문감잡이 등으로 분류된다.
천판의 보강제로 쓰이는 개판감잡이에는 불로초감잡이 · 비녀감잡이 · 나비감잡이 · 박쥐감잡이 · 거멀감잡이 · 수팔련감잡이 · 이화감잡이 등이 속한다. 그 밖에 다리 쪽에 쓰이는 굽통감잡이와 매우 가늘고 장식적인 세발감잡이가 있다. 귀장식도 감잡이와 같이 가구의 모서리 부분을 보강해주는 장석이다.
다만 감잡이가 가구의 각 부분에 걸쳐 폭넓게 쓰였다면 귀장식은 세 면에 만나는 귀부분에 국한하여 사용된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그 종류 또한 당초문귀장식 · 연밥귀장식과 박천반닫이에만 별도로 사용된 거멍쇠로 된 투각문양의 박천반닫이 귀장식 등을 제외하면 감잡이와 대체로 공통된다.
자물쇠는 자물통과 자물쇠, 열쇠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며, 문짝이나 서랍 등에 부착하여 개폐를 제어하는 장석이다. 그 종류는 자물통의 형태에 따라 ㄷ자형자물쇠 · 선(線)자물쇠 · 은혈자물쇠 등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특히 ㄷ자형자물쇠는 장 · 농 · 반닫이 등 대형가구에 주로 쓰이는 가장 보편적인 형태로서 삼국시대 이전부터 사용되었던 가장 오래된 형식이다. 자물통의 형태에 따라 붕어자물쇠 · 쌍룡자물쇠 · 거북자물쇠 등 다양하고 조형성도 잘 갖추었다.
선자물쇠는 가구에 자물통이 부착된 붙박이형으로서 고리에 비녀장을 끼워 시정(施錠)하는 것의 총칭이며, 의걸이장 · 책장 등 위아래가 긴 형태의 가구에 주로 쓰인다. 은혈자물쇠는 자물통이 외부로 노출되지 않고 시정 장치가 자물쇠의 앞바탕 속에 내장된 것을 말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몇 단계의 조작을 통하여서 열쇠 구멍을 찾을 수 있도록 고안된 것도 있다. 서안(書案)에 주로 쓰였다. 특히 은혈자물쇠는 자물쇠의 고유 기능인 시정 장치를 보완하여 발전시킨 예로서 주목된다.
앞바탕은 배목 · 고리 · 들쇠 · 자물쇠 등을 가구에 견고하게 부착하거나 가구몸체와 그것이 직접 닿지 않도록 보완하는 기능의 얇고 넓은 장석이다. 따라서, 그 종류는 자물쇠용과 들쇠용, 배목과 고리용 등이 있다. 또는 가구의 구조와 기능에 관계없는 장식용 앞바탕 등이 있다. 형태는 기하학적인 단순한 것에서 각종 동식물 형태가 정교하게 투각된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광두정은 시선을 거스르기 쉬운 못자국을 감추거나 허전한 공간에 배치하여 전체의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는 데 사용된다. 반구형의 작은 크기인 광두정은 장석 가운데서 도드라진 입체감을 주는 특징적인 것이다. 적절한 공간에 박힌 광두정은 가구에 중량감과 함께 견고한 느낌을 배가시키는 효과도 아울러 지닌다. 이상과 같은 장석은 동식물 · 자연 · 기하 · 길상문자 등이 선각(線刻)이나 투각 · 칠보 · 입사 등의 다양한 기법으로 새겨진다.
특히 조선 말기 이후에는 기복 · 벽사 등 길상적 의미를 지닌 문양이 주로 등장하고 있어 당시의 일반 공예품의 문양 형식과 깊은 관련을 맺으면서 전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장석의 제작 분야는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1980년~1996년 김덕룡(金德龍)이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있었다. 2000년 7월 22일 김극천(金克千)과 박문열(朴文烈)이 두석장 기능보유자로 새로 지정되어 현재까지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