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뉴세문경 ()

공예
유물
초기 철기시대에 제작된 청동제 거울.
이칭
이칭
정문경(精文鏡), 잔무늬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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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초기 철기시대에 제작된 청동제 거울.
개설

일본 중요문화재. 도쿄[東京]국립박물관 소장 정문경(精文鏡)은 복잡한 기하학 무늬를 거울 뒷면에 정교하게 표현한 거울이다. 손잡이가 여러 개 달려 있어 다뉴세문경(多鈕細文鏡)이라고도 한다.

내용

일본인 오구라[小倉武之助]가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에서 수집해 간 한국문화재의 하나로 일본에서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바 있다. 거울의 지름은 14.3㎝로 손잡이가 2개이며, 경상남도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진다. 거울 뒷면은 원형의 선을 둘러 두 개의 공간으로 분리하였는데 안쪽에는 가로 5줄, 세로 16줄의 선을 교차시켜 여러 개의 사각형을 만든 후, 그 안을 삼각형의 집선문(集線文)으로 세밀하게 새겨 장식하였다. 그 위로 두 개의 손잡이가 약간 위쪽에 배치되었다. 거울의 기본 무늬인 삼각집선문(三角集線文)은 다른 청동기에서도 볼 수 있는 공통적인 문양이다. 빛이 발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반사 기능과 함께 의식용 도구로서 옷에 매달아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거울은 청동기시대 최전성기에 만든 정문경보다 무늬 및 주조 상태가 약간 거친 편이나 여전히 정교한 제작 기법을 보여 준다.

특징

다뉴경(多鈕鏡)의 형태는 원래 기원전 1000년경, 요하(遼河) 서쪽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주변 지역으로 확산되었는데 무늬가 거칠고 정교하지 못한 거친무늬거울 즉 조문경(粗文鏡)이 정문경보다 먼저 제작되었다. 중국 동북 지방과 한반도의 여러 지역 즉 길림, 연해주, 대동강 유역, 아산만- 금강 유역을 중심으로 여러 유형의 조문경이 제작되었다. 이후 청동기 후기인 기원전 3~2세기로 넘어와 정문경이 한반도의 고유한 양식으로 정교하게 발전하였다. 현재 우리나라 대동강 유역, 금강,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발견되며 일본 열도에까지 전파되었다.

의의와 평가

한국식 동검과 함께 우리나라 청동기 문화의 고유한 제작 기술과 발전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중국 동북 지방에서 서북한 지역을 통해 유입된 초기 철기시대의 문화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참고문헌

『다뉴경과 고조선』(이청규, 단국대학교 출판부, 2015)
『다뉴세문경 종합 조사 연구』(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숭실대학교, 2009)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오구라 컬렉션 한국 문화재』(국립문화재연구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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