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옥대 설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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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1권(49, 50, 51, 52, 53, 54) / 천사옥대설화
삼국유사 1권(49, 50, 51, 52, 53, 54) / 천사옥대설화
구비문학
작품
신라 진평왕이 하늘로부터 받은 옥대에 관한 설화.
목차
정의
신라 진평왕이 하늘로부터 받은 옥대에 관한 설화.
개설

『삼국유사』 권1 기이편(紀異篇) 천사옥대(天賜玉帶)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진평왕의 성은 김씨로 백정왕(白淨王)이라고도 하였는데, 신장이 11척이었다. 왕이 천주사(天柱寺)에 행차할 때 오르는 돌계단을 밟으니 돌기둥 세 개가 한꺼번에 부러졌다. 왕은 시중한 신하들에게 일러 이를 옮기지 말고 뒷사람에게 보이게 하였는데, 이것이 성중 오부동석(五不動石)의 하나가 되었다.

진평왕이 왕위에 오르던 해에 한 천사가 하늘로부터 옥대(玉帶)를 가지고 내려와 상제의 명을 받들어 이를 왕에게 바쳤다. 왕이 친히 두 무릎을 꿇고 공손히 받자, 천사는 곧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그 뒤 천지에 제사하거나 종묘에 제사할 때는 으레 왕이 이 옥대를 띠었다.

그 뒤 고려 태조 20년(937) 경순왕이 이 띠를 태조에게 바쳤다. 길이가 10위(圍)이며, 띠쇠[銙]가 62개였다. 태조는 이를 받아 내고(內庫)에 간직하여 보물로 삼았다. 고려왕이 신라를 침범하려 할 때 신라에는 천사옥대를 비롯한 세 가지 보물이 있어 침범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일연(一然)의 찬문, “하늘이 주신 긴 옥대는 임금의 곤의(袞衣)에 알맞았네. 우리 임금 이로부터 몸 더욱 중하니 다음에는 쇠로써 섬돌을 지으려 하네.”는 석제설화(石梯說話)와 옥대설화를 이어 진평왕의 지위를 더욱 신성화시켜 주고 있다.

그 뒤 고려왕이 신라를 치려 할 때 신라에는 황룡사의 장륙존상(丈六尊像)·구층탑, 진평왕의 천사옥대 등 세 가지 보물이 있어 침범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고려사(高麗史)』
집필자
소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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