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의 손자인 희익(羲益)이 쓴 발문에 의하면, 저자 사후에 아들인 운연(運淵)과 기연(起淵) 형제가 상자 속에 쌓여 있는 원고를 수습하여 직접 베껴 쓰고 교정하여 4권 2책으로 편집하고 인행(印行)하려 하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자 자신이 부친의 뜻을 이어 이규호(李奎鎬)에게 서문을 받아 간행하였다고 하였다.
4권 2책, 석인본이다.
1책 권두에 이규호(李奎鎬)의 서문과 목차가 수록되어 있고, 2책 권말에 이희익(李羲益)의 발문이 있다. 1책은 권1과 권2로 이루어져 있는데, 권1에 시 94수, 서(書) 25편이, 권2에 잡저(雜著) 5편, 유사 6편, 묘표 4편, 고유문 3편, 기(記) 6편, 설(說) 1편이 수록되어 있다. 2책은 권3과 권4로 구성되어 있는데, 권3에 제문(祭文) 15편, 상량문 3편이, 권4에 「경성록(警省錄)」과 부록으로 행장 · 묘갈명 · 묘지명 각 1편, 제문 9편, 만사 46수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국가 또는 사회적인 문제에 대하여 울분을 표현한 것이 주목을 끈다. 「경술칠월이십오일국가유사옥지변운운(庚戌七月二十五日國家有社屋之變云云)」은 칠언율시인데, 경술국치를 당하여 통분한 심사를 읊었다. 「학교탄(學校歎)」은 장편 고시로, 유교의 전통이 날로 주1을 한탄조로 표현하였다. 「상전가(傷田家)」 · 「춘창즉사(春窓卽事)」 · 「관가(觀稼)」 · 「자조(自嘲)」 등은 모두 빈곤한 농촌 생활을 배경으로 자신의 현실적 고민이나 갈등을 표현하였다. 「사선음(四仙吟)」은 문선(文仙) · 주선(酒仙) · 가선(歌仙) · 조선(釣仙) 등을 칠언절구로 읊은 것으로, 현실의 괴로움을 떠나 환상의 세계로 비약하고자 하는 희망을 나타내고 있다. 잡저의 「학교해(學校解)」는 신교육제도인 학교에 대하여 분석, 비판하고 전통적인 유교식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 내용이다. 「경성록」은 음양호생(陰陽互生) · 지경(持敬) · 위학(爲學) · 명의논성(明義論性) · 자경(自警) · 독서 · 제사 · 계자손(戒子孫) · 간문자(看文字) · 변의리(辨義利) · 대인(待人) 등 19개 항목으로 나누어 수신제가(修身齊家)에 필요한 내용을 정리, 기록한 것이다. 유교적 이상을 실천하고자 노력하였던 흔적이 보인다.
저자의 가문은 농암 이현보(李賢輔)를 비롯하여 대대로 영남에서 학문 연마에 힘쓴 사림 집안이다. 저자는 한평생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당시 영남의 저명한 학자들과 교유한 인물이기에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영남 사림의 학문사상을 보여주는 자료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