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호유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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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
문헌
문인, 퇴호 이정렬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54년에 간행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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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문인, 퇴호 이정렬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54년에 간행한 시문집.
내용

6권 3책. 석인본. 1954년 아들 이용성(李用聖)이 편집, 간행하였다.

『퇴호유고』의 권두에 이용태(李用泰)의 서문이 있다. 권말에 이용성의 발문이 있다. 권1은 부(賦) 3편, 시 36수, 소(疏) 14편, 책(策) 14편, 권2는 서(書) 29편, 잡저 10편, 서(序) 11편, 기(記) 2편, 제발(題跋) 8편, 찬(贊) 1편, 상량문 1편, 제문 6편, 고축(告祝) 15편, 권3은 신도비명 3편, 비문 3편, 묘갈명 30편, 권4는 묘지명 3편, 묘표 15편, 행장 3편, 부록 권1은 세계·연보, 권2는 본전(本傳)·행록·가장·행장·묘표·묘지 각 1편, 찬 3편, 칠은사서(七隱社序) 1편, 제문 10편, 만사 36수, 축유고간행운(祝遺稿刊行韻)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퇴호유고』의 부와 시에는 왕실과 관계된 송축의 글이 많다. 소의 「진시폐소(陳時弊疏)」는 모두 24조로 열강의 동점이 점차 강화되어가던 당시 나라의 재정과 백성들의 동태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음을 지적하였다. 군사훈련이나 철도의 부설 등에서 인삼·세금문제에 이르기까지 국내의 여러가지 폐단의 시정을 건의한 내용이다.

「협상조약시탄핵외부대신이지용소(協商條約時彈覈外部大臣李址鎔疏)」에서는 외부대신의 자격으로 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林權助]와 한일의정서를 협정하고 조인하여 사법권을 일본에 넘겨준 이지용의 탄핵을 비분강개한 어조로 주청하였다.

「고종황제밀사고영근어일본명참우범선지두시연명상소(高宗皇帝密使高永根於日本命斬禹範善之頭時聯名上疏)」는 고영근이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하였던 우범선(禹範善)을 일본에서 죽여 일본경찰에 잡혀간 일을 기록하였다.

고영근이 이전 독립협회 해산 이후 정부요인의 암살을 꾀하다 발각되어 일본으로 망명갔던 죄와 국모를 죽인 범인을 처단한 공을 맞바꾸어 살려줌으로써 충의의 정신을 진작시킬 것을 주청한 글이다. 중추원부의장 김가진(金嘉鎭) 등과 연명으로 올린 것으로 2편이 있다.

『퇴호유고』 14편의 책문은 정시의 대책에서 그때그때 물음에 따라 대답하여 올린 글이다. 경학에서 인재등용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여러 견해들이 개진되어 있다.

『퇴호유고』의 잡저에는 「갑오시요(甲午時擾)」가 있다. 내용은 1894년 갑오농민전쟁을 빌미로 일본군이 인천항을 통하여 들어와 내정을 간섭하던 갑오경장을 전후한, 당시의 여러 상황을 주로 수구적 입장에서 정리하고 기록한 것이다. 아버지 이상규(李相逵)가 명성황후의 이제(姨弟)였던 연유로 갑신정변 당시에 명성황후 세력인 보수당이 개화당에 의하여 축출될 때에 죽임을 당한 것에 대하여 통분하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산중문답(山中問答)」은 망국의 임금은 종사(宗社)의 죄인인데 이를 섬겨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객과 토론한 내용이다. 망국의 울분과 비통이 은연중에 나타나 있다.

『퇴호유고』 잡저에 있는 「사친(事親)」·「순명(順命)」·「계손설(戒孫說)」·「계설(戒說)」·「훈몽선지(訓蒙先知)」 등은 모두 수신입도하는 마음가짐을 일깨우려는 목적에서 쓴 교훈적 내용의 글들이다. 국립중앙도서관도서에 있다.

집필자
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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