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김진하(金鎭河, 1786~1865)의 자는 치청(穉淸), 호는 황암(篁巖), 본관은 함창(咸昌), 출신지는 경상북도 영천(榮川)이다. 평생 퇴계 이황의 학문을 익혔으며, 1841년(헌종 7) 문과 급제 후 관직에 나아가 병조판서(兵曹判書) 등을 역임하였으며, 품계는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편자는 저자의 손자 김세상(金世相) 등이다.
1932년 김세상 등이 편집 · 간행하였다. 권두에 유도헌(柳道獻)의 서문, 권말에 권상규(權相圭) · 김사진(金思鎭) · 김세상의 발문이 있다. 1996년 경인문화사에서 한국역대문집총서 No.1612 『황암선생문집』으로 재간행했다.
권1에 시 225수, 권2에 소(疏) 2편, 서(書) 26편, 잡저(雜著) 2편, 권3에 서(序) 6편, 기(記) 11편, 발(跋) 6편, 잠(箴) 1편, 상량문(上樑文) 2편, 권4에 축문(祝文) 1편, 제문(祭文) 24편, 권5에 묘갈명 1편, 묘지 1편, 행장(行狀) 5편, 권6에 부록으로 가장 · 행장 · 묘비명 · 묘갈명 각 1편, 제문 11편, 만사 42수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의 형식은 7언율시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시 제목에 병서(幷序)를 함께 수록해 두어 시에 대한 이해를 돕도록 한 작품들이 다수 보인다. 시 가운데 「벽서성경자이우자경(壁書誠敬字以寓自警)」은 벽에 ‘성경(誠敬)’ 두 글자를 써 붙여 두고 이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유자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진 것이다. 「목면자(木棉子)」는 목화를 들여온 문익점(文益漸)의 덕을 기린 내용이다. 「성학십도십수(聖學十圖十首)」는 이황이 찬정한 『성학십도』에 각 한 수씩 얹어 후손의 감계로 삼으려 한 것으로, 각 도마다 압축된 의미와 자신의 소감을 적어 두었다. 「경차주부자원유편(敬次朱夫子遠遊篇)」은 평생을 회고하는 만년의 감개를 주자의 시 「원유」에 기탁해 노래한 것이며, 「의고(擬古)」 2수 또한 주자의 시를 주1 것이다. 서정적 낭만보다는 실리적 내용의 시가 주조를 이룬다. 그밖에는 관직 생활을 하면서 연말연시에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드러낸 작품, 지인들이 지어 보내준 시의 운자를 차운한 차운시, 지인들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시 등이 주를 이룬다.
소의 「청경모궁전례소(請景慕宮典禮疏)」는 영남 사림이 경모궁(景慕宮)의 보갑년(寶甲年)을 맞아 종묘에서의 전례를 요청한 일로 양사의 탄핵을 받게 되자, 이에 격분해 올린 글이다.
서(書)는 주로 벗들과 안부를 주고받은 것들이고, 특별한 학문적 내용은 없다.
잠의 「사본재잠(四本齋箴)」은 선유(先儒)의 격언 가운데서 근검 · 경신(敬愼) · 시서(詩書) · 충효 네 가지를 취해 일상생활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라 하고, 여기에 각각 자경(自警)과 감계의 뜻을 담아 지은 것이다.
잡저의 「병산김선생절혜사정수의청계장(缾山金先生節惠事呈繡衣請啓狀)」은 저자가 어사(御史)에게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충재(冲齋) 권벌(權橃) 등의 간악한 무리에게 수차례 배척을 당하는 등 우여곡절을 보내면서도 뛰어난 도학(道學)과 충절(忠節)을 드러낸 문신 김난상(金鸞祥, 1507~1570)에게 늦었지만 포상이 내려지도록 임금에게 장계를 올려줄 것을 청하는 내용이다.
서의 「송정산권시랑(재대)부적임도서(送晶山權侍郞(載大)赴謫荏島序)」는 권재대(權載大)가 시랑(侍郞) 재임 시절 장헌세자(莊獻世子)를 추숭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80세 가까운 나이에 전라도 영광(靈光)의 임도로 유배갈 때 전송하며 지은 것이다.
기의 「두릉서당중건기(杜稜書堂重建記)」는 퇴계 이황의 제자 중 한 사람인 물암(勿巖) 김융(金隆, 1549∼1594)이 후진 양성을 위해 세운 두릉서당이 오랜 세월로 퇴락하자 중건하고 지은 기문이다. 1991년 경상북도 지정문화재 문화재자료 253호로 지정된 두릉서당에 대한 역사를 알 수 있는 작품이다. 그밖에는 저자의 조부가 기거하던 남포헌(南浦軒), 저자의 중부(仲父)가 기거하던 삼수와(三守窩) 등에 대한 기문이 있다.
발의 「경제읍학헌괴석(敬題挹鶴軒怪石)」은 영주(榮州)의 읍학헌(挹鶴軒)에 있는 괴석은 퇴계 이황이 단양군수로 있다가 돌아오면서 갖고 와 학문을 강론할 때 서손(壻孫)인 물재(勿齋) 박려(朴欐, 1550~1592)에게 준 것인데, 그 괴석을 볼 때마다 퇴계의 의(義)를 생각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평생 존경하는 퇴계 이황의 학문을 익힌 조선 후기 문신의 문집을 통해 퇴계 이황과 관련된 다양한 인물들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