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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문헌
조선시대 때의 문신 · 학자, 김응조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76년에 간행한 시문집.
정의
조선시대 때의 문신 · 학자, 김응조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76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776년(영조 52) 김응조의 후손 김서필(金瑞必) 등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이상정(李象靖)의 서문과 권말에 이세택(李世澤)의 발문이 있다.

서지적 사항

9권 6책. 목판본. 규장각 도서·국립중앙도서관·연세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내용

권1·2에 시 372수, 권3에 교서(敎書) 2편, 소(疏) 10편, 권4에 차(箚) 4편, 계(啓) 3편, 서(書) 14편, 권5에 잡저 4편, 서(序) 4편, 기(記) 10편, 발(跋) 28편, 권6에 명(銘) 4편, 전(箋) 2편, 상량문 6편, 제문 41편, 권7에 여표(閭表) 3편, 묘갈명 28편, 권8에 묘지명 17편, 권9에 묘비명 3편, 행장 10편, 외집(外集)에 묘갈지명(墓碣誌銘) 24편과 부록으로 세계·연보·행장·묘지·뇌사(誄詞) 각 1편, 만사 10수, 제문 12편, 봉안문 2편, 상향축문(常享祝文) 2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서(書) 가운데 「상여헌선생문목(上旅軒先生問目)」은 두 차례에 걸쳐 『가례(家禮)』 가운데 의문나는 부분 31사항에 대해 스승인 장현광(張顯光)에게 질의·문답한 내용이다. 예학(禮學)에 대한 저자의 남다른 관심을 알 수 있다. 「여조용주(與趙龍洲)」는 조경(趙絅)과 빙산서원(氷山書院)의 묘향위차(廟享位次)를 논란한 내용의 글이다.

잡저의 「서애유선생변무록(西厓柳先生辨誣錄)」은 스승 유성룡(柳成龍)이 1592년(선조 25)에 일본과 화친을 주장했던 일에 대해, 여러 보조 자료를 근거로 그 시말을 상세히 적어 후인의 오해를 막으려는 목적에서 지은 것이다. 임진왜란을 전후한 당시 상황을 이해하는 데 참고자료가 된다.

「학사삼곡서(鶴沙三曲序)」는 자신의 학도지성(學道之誠), 연궐지침(戀闕之忱), 상시지탄(傷時之歎)을 노래한 「학사삼곡」의 서문이다. 도에 몰두하고, 임금을 생각하며, 시대를 근심하는 자신의 마음가짐을 보였다.

「학사정사기(鶴沙精舍記)」에서는 만년에 벼슬에서 물러나 학문을 강도(講道)하며 보낸 학사정사의 주변 경관과 만년 생활의 자취를 그렸다. 「사례문답발(四禮問答跋)」에서는 자신의 선현의 예에 대한 논설을 모아, 그 차례와 절목이 번다해 지리한 것을 추려 4권 1책으로 묶어 『사례문답』을 엮게 된 경위를 밝혔다.

「청우재수성소(請遇災修省疏)」는 왕의 교서에 따라 1648년(인조 26) 거듭된 가뭄으로 민생이 도탄에 빠진 현실을 적시하고, 왕의 근검수성을 자못 격렬한 어조로 직설한 것이다. 「청주이이첨소(請誅李爾瞻疏)」는 간신 이이첨의 죄상을 낱낱이 열거하고, 그를 죽여 종사와 백성에 보탬이 되도록 청한 상소문이다.

시 가운데 「빈가사시사(貧家四時詞)」 4수에서는 가난한 농민의 사계절을 사실적으로 노래해 애민의 뜻을 보였다. 「화전가사시사(和田家四時詞)」 4수는 농가의 사계절마다의 정경을 차례로 읊었다. 이밖에 여러 작품에서 수심독행(收心篤行)하는 선비의 마음가짐을 읽을 수 있다. 문장은 당시 명백하고 간엄(簡嚴)하다는 평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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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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