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고법 (판소리)

목차
관련 정보
국악
개념
국가유산
판소리를 반주하는 고수의 북 연주법.
시도무형유산
지정 명칭
판소리고법(판소리鼓法)
분류
무형유산
지정기관
광주광역시
종목
광주광역시 시도무형유산(1995년 04월 20일 지정)
소재지
광주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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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판소리고법은 판소리를 반주하는 고수의 북 연주법이다. 1995년 4월 20일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초대 예능 보유자로 감남종이 지정되었고, 1997년 천대용이 예능 보유자로 추가 지정되었다. 두 보유자가 작고한 후, 전승 교육사 양신승이 그 명맥을 이어 나가고 있다.

목차
정의
판소리를 반주하는 고수의 북 연주법.
내용

판소리는 한 명의 창자가 한 명의 고수의 북 반주에 맞춰 소리하는데, 이때 사용하는 고수의 북을 ‘ 소리북’ 또는 주1’이라고 한다. 소리북은 지름 37cm, 너비 27cm 정도의 통을 짜서 북통 양면과 북통에 소가죽을 씌운 뒤, 못으로 고정하여 만든다. 북채를 쥔 오른손으로 주2의 복판을 치며, 대점과 소점 및 매화점은 북채를 들어 내려치거나 굴려서 연주한다. 왼 손바닥으로는 북 왼편의 주3를 쳐서 울린다.

고수는 소리의 속내를 훤히 꿰뚫고 있어야 하며, ‘내고 · 달고 · 맺고 · 푸는’ 소리 선율의 전개에 따라 반주를 해야 한다. 또한 속도와 선율의 높낮이, 셈여림 및 가사말의 붙임새 변화에 따라 적절한 북가락으로 대응해야 한다. 극적 상황에 따른 변주를 통해 즉흥적이고 변화하는 음악에도 민첩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효과적인 반주를 위한 고수의 응용 기법으로는 각내기, 거두기와 늘이기, 등배 가려치기, 반각치기, 틈메우기, 따라치기, 이끌어내기, 붙임채 가려치기, 북가락, 음색 바꾸기 등이 있다. 이외에도 북장단을 이용하여 극적 효과를 나타내거나, 적당한 추임새로 소리꾼의 기운을 북돋우며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등 반주자로서의 구실 외에도 다양한 역할을 담당한다. 소리의 빈틈을 북가락과 추임새로 메우기도 하고, 때로는 소리꾼의 상대역이 되어 극의 전개를 돕거나 관객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이에 더해 소리의 빠르기를 조절하며, 북가락과 추임새로 소리꾼의 소리를 적극적으로 끌어내기도 하여 소리판을 이끌어 가는 지휘자의 기능을 수행한다.

판소리고법과 고수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조선조 고종 때 이후의 일로, 이 무렵, 박판석(朴判石) · 오수관(吳壽寬) · 장판개(張判介) · 한성준(韓成俊) · 오성삼(吳聖三) 등의 명고수들이 등장하며 정통적인 고법의 체계가 세워지기 시작했다. 해방 후에는 김재선(金在先) · 김명환(金命煥) · 이정업(李正業) · 김득수(金得洙) · 김동준(金東俊)과 같은 고수들이 활동하였고, 1978년 판소리고법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김명환이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판소리고법은 1995년 4월 20일 지정되었다. 초대 예능보유자로 감남종(19312022)이 인정되었으며, 1997년 7월 3일 추가로 천대용(19302001)이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감남종은 1931년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에서 출생했다. 어릴 적부터 국악을 좋아하던 그는 일찍이 소리에 뜻을 두었으나 집안의 반대로 꿈을 접었다. 14세 무렵, 국창 임방울의 반주를 맡은 고명진의 북 연주에 매료되어 그의 문하에서 4년간 북을 배웠다. 본격적인 고수의 길로 접어든 뒤로도 목포 국악원의 장월중선에게 학습을 이어나갔다. 28세가 되던 해, 아버지 감선월이 주지로 있던 전라남도 해남군 대흥사에 요양 차 내려와 있던 일산(一山) 김명환을 만나 사제의 연을 맺었다. 김명환에게 4년간 북을 배웠으며 ‘내 고법을 이으라’라는 의미로 이산(二山)이라는 호를 받았다.

1984년 제4회 전국고수대회 명고부 장원을 수상하였고, 경주 신라국악예술단 상임 수석 단원(19811984)과 광주시립국극단 상임 수석 단원(19891990)을 역임하였다. 1987년부터 전국의 고수 대회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며, 공대일, 박동진, 이임례, 성창순, 박춘성 등의 고수로 활약했다. 2022년 91세를 일기로 작고하였다. 전승 교육사 양신승이 그의 고법을 잇고 있다.

천대용은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군곡리 출신으로, 10대부터 유랑 극단을 따라다녔다. 명창을 목표로 17세 무렵부터 정응민에게 심청가를 배웠고, 1965년 서울로 상경 후에도 박봉술에게 적벽가수궁가 등을 배웠다. 김명환에게 고법을 학습하였고, 후에 이정업, 김성권 등을 스승으로 모시면서 고수로 전향했다. 1950~1960년대 크게 인기를 얻은 여성국극단의 햇님달님 전국 순회공연의 고수를 맡기도 했으나, 1980년대 조상현의 지정 고수로 활동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이후 국립창극단의 고수로 활동했다.

1990년 중반 광주에 정착하여 광주시립국극단의 수석 단원으로 재직했다. 한승호, 박동진, 안채봉, 오정숙, 조상현 등의 완창북을 맡았으며, 1993년 제13회 전국고수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김명환, 이정업, 김성권의 가락을 엮어 본인만의 북가락을 완성했다. 운암동에 판소리고법연구원을 열어 후학들을 양성하다 2001년 타계하였다. 호방하고 시원한 북이라는 평이 많다.

참고문헌

단행본

정화영·김광섭, 『한국의 정악과 민속악장단』 (민속원, 2017)

논문

김혜정,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이보형, 『중요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123: 판소리 고법』 (문화재관리국, 1976)
이보형, 「판소리 고법」 Ⅰ·Ⅱ·Ⅲ (『문화재』 10·11·12, 문화재관리국, 1976·1977·1978)

인터넷 자료

광주문화재단 전통문화관(http://gtcc.or.kr/user)
디지털광주문화대전: 판소리고법(http://www.grandculture.net/gwangju/toc/GC60000916)
주석
주1

판소리 반주에 쓰는 북. 남부 지방에서는 흰 북, 중부 지방에서는 단청 북을 주로 쓴다. 우리말샘

주2

판소리 장단에서, 채로 치는 북의 오른쪽 가죽 자리. 악절의 시작에 이 자리를 크게 친다. 우리말샘

주3

판소리 장단에서, 왼 손바닥으로 북의 왼쪽 가죽을 치는 자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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