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순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후기 죽림고회의 일원으로 활동한 문인.
이칭
자진(子真)
이명
함수(咸修)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양근(楊根)
주요 관직
상식직장동정(尙食直長同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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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함순은 고려 후기 죽림고회(竹林高會)의 일원으로 활동한 문인이다. 그는 진사에 급제하여 익령현위를 지냈지만, 문인으로서의 재능을 더 평가받았다. 하지만 그의 관직이 상식직장동정(尙食直長同正) 외에는 찾아지지 않으므로 크게 출세하지는 못하였는데, 그것은 무신정권이라는 시대적 한계 때문으로 평가된다. 그는 이인로·임춘·오세재·조통·황보항·이담지 등과 더불어 죽림고회를 조직하여 시와 술을 즐겼다.

정의
고려 후기 죽림고회의 일원으로 활동한 문인.
가계 및 인적 사항

함순(咸淳)의 본관은 양근(楊根), 자(字)는 자진(子真)이다. 아버지는 상서(尙書) 함유일(咸有一)이다. 「함수묘지명(咸修墓誌銘)」의 함수(咸修)와 동일 인물로 평가된다. 「함수묘지명」에 자세한 행적이 전하는데, 대경(大卿) 민지령(閔志寧)의 딸과 혼인하여 3남 3녀를 두었다고 한다.

주요 활동

함순은 진사(進士)에 입격하여 익령현위(翼嶺縣尉)가 되었는데, 재직 기간 치적을 쌓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관직이 상식직장동정(尙食直長同正) 외에는 보이지지 않으므로 크게 출세하지는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그가 문인으로서의 재능이 있었지만, 무신정권이라는 시대적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신정권에서는 문인을 숙청하는 분위기였으며, 많은 문인이 산림에 은거하거나 불교에 의탁하기도 하였다. 이들 중에는 서로 의를 맺어 '나이를 가리지 않고 벗으로 삼고〔망년지우(忘年之友)〕', 시와 술을 즐기기도 하였다. 함순 또한 이인로(李仁老) · 임춘(林椿) · 오세재(吳世才) · 조통(趙通) · 황보항(皇甫沆) · 이담지(李湛之) 등 일곱 명의 문인과 더불어 ‘ 죽림고회(竹林高會)’라는 시회(詩會)를 조직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보한집(補閑集)』
『서하집(西河集)』
『파한집(破閑集)』
「함수묘지명(咸修墓誌銘)」

단행본

김용선 편, 『역주 고려묘지명집성』(한림대학교출판부, 2006)

논문

서주영, 「함순의 생애에 대한 고찰」(『영남학』 68,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2019)
여운필, 「임춘의 생애에 대한 재검토」(『한국한시연구』 4, 한국한시학회,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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