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순은 진사(進士)에 입격하여 익령현위(翼嶺縣尉)가 되었는데, 재직 기간 치적을 쌓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관직이 상식직장동정(尙食直長同正) 외에는 보이지지 않으므로 크게 출세하지는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그가 문인으로서의 재능이 있었지만, 무신정권이라는 시대적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신정권에서는 문인을 숙청하는 분위기였으며, 많은 문인이 산림에 은거하거나 불교에 의탁하기도 하였다. 이들 중에는 서로 의를 맺어 '나이를 가리지 않고 벗으로 삼고〔망년지우(忘年之友)〕', 시와 술을 즐기기도 하였다. 함순 또한 이인로(李仁老) · 임춘(林椿) · 오세재(吳世才) · 조통(趙通) · 황보항(皇甫沆) · 이담지(李湛之) 등 일곱 명의 문인과 더불어 ‘ 죽림고회(竹林高會)’라는 시회(詩會)를 조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