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천사 극락보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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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천사 극락보전
흥천사 극락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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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서울특별시 성북구 흥천사에 있는 조선후기 에 창건된 사찰건물. 불전. 시도유형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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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서울특별시 성북구 흥천사에 있는 조선후기 에 창건된 사찰건물. 불전. 시도유형문화재.
내용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지붕건물. 1985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흥천사는 남쪽과 북쪽이 높고 동서 방향으로 터져 있는 경사진 골짜기에 축대를 쌓아 층단식으로 사역(寺域)을 조성하고 북동향으로 건물을 배치한 절로서, 극락보전은 사역의 중심부 제2단에 북동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정면에 있는 대방(大房)과 동일한 중심축 위에 배치되어 절의 중심부를 형성하고 있는데 극락보전보다도 대방이 훨씬 큰 규모로 지어져 있어서, 19세기 도성 주변 사원의 특징적인 배치형식을 보여 준다. 대방으로 감싸인 대방 뒤쪽 마당 뒤로 높다란 축대를 2단으로 쌓고, 윗 축대 전면에 바싹 붙여 세웠다.

지금은 극락보전의 정면보다 너비가 더 넓은 계단(너비 : 12m)이 2단으로 조성되어 있고 계단 맨 윗단이 건물 기단과 맞닿아 있으나, 이는 1962년에 개축하면서 원래의 모습을 크게 변형시킨 것이며, 원래는 상하 축대의 중앙에 폭 2∼3m 안팎의 계단을 설치하였었다.

건물의 주춧돌은 높이가 1자나 되는데 밑은 사각형, 위는 원형으로 다듬은 모습으로 조선시대 관아 건축에서 쓰이던 돌다듬기 기법을 보이고 있다. 기둥은 모두 원기둥으로 약간의 민흘림을 두었다.

기둥 상부에는 창방과 평방을 짜맞추되 귓기둥의 창방뺄목과 평방뺄목은 아무런 조각 없이 직절되어 있고, 정면 어간 좌우 기둥 상부에만 용신형(龍身形) 안초공[按草工 : 기둥 상부의 공포를 받는 부재]을 끼워 장엄하고 있다.

벽체와 창호의 구성을 보면 창호를 낸 부분은 정면 3칸과 향좌측면 앞툇간뿐이며 나머지는 모두 판벽으로 처리되었다. 다만 뒷면 3칸은 중방으로 각 칸을 양분하고 위쪽을 판벽, 아래쪽을 화방벽(火防壁)으로 마감하였다.

정면 3칸에는 모두 4짝 꽃빗살문, 향좌측면 앞툇간에는 외짝 꽃빗살문을 달았는데 이는 근래에 개조된 것이어서 원래의 창호가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다. 공포(栱包)의 포작은 안 삼출목, 밖 이출목이며, 공간포는 정면과 배면에서는 칸마다 2구씩, 측면에서는 칸마다 1구씩 배치되었는데 다만 뒷면 어간에서만 생략되었다.

살미첨차는 외부에서는 연꽃이나 연봉오리를 윗면에 새긴 앙서와 봉두형(鳳頭形) 한 대로 구성되어 있고, 내부에서는 연속된 연화당초각 한 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마구리를 직절·사절한 교두형[翹頭形 : 밑면 끝을 활모양으로 깎아냄] 첨차와 함께 19세기적 특징을 보여준다.

내부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는데 거기에 고주를 세우지 않았다. 내부에서 불단을 뒷벽에 붙여 설치함으로써 예불에 필요한 면적을 최대한 확보하고, 불단을 뒷벽뿐 아니라 좌우 측벽에도 설치하며, 불단의 중대를 5단으로 높이는 등 19세기적 특징을 보이고 있다.

다만 전체 12칸 가운데 창호를 4칸에만 내고 나머지 8칸은 벽으로 처리함으로써 내부를 어둡게 처리한 것은 언제인가 내부를 중수하면서 생긴 변형으로 보인다. 중앙 불단은 상대와 하대를 얇게 하고 중대를 5단으로 크게 높인 형식으로서, 윗면을 층단형으로 만들어 앞쪽의 아랫단에는 공양 법구를 배설하고, 뒤쪽의 윗단에는 불상을 봉안하였다.

현재 소형 아미타불좌상과 따로따로 조성된 대형 협시보살상이 삼존(三尊)을 구성하고 있으나, 이는 건물 중창 당시에 봉안되고 1867년(고종 4)에 개금된 아미타삼존불이 없어지고 나서 새로 봉안된 것이다. 불상 봉안부 위에는 2층 亞자형 천개(天蓋)를 설치하였다.

지붕 가구는 무고주5량가(無高柱五樑架)로서 대들보 위에 충량 4개를 설치하고 그 위에 동자기둥을 세워 종량을 받치고 다시 그 위에 사다리꼴 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치도록 짠 간략한 구조이다. 천장은 중앙부는 우물반자, 둘레는 빗반자로 마감하였다. 지붕 용마루에는 관청에서만 쓰이던 용두가 설치되어 있다.

기록에 따르면, 이 건물은 1853년(철종 4)에 건립되고 1854년에 단청되었다. 그 후 1867년에는 3존불상이 개금되는 동시에 상단탱·중단탱·신중탱·현왕탱·산신탱·독성탱·칠성탱 등 불화가 조성·봉안되었으며, 탁자도 마련되어 불전 내부가 화려하게 장엄되었다. 그 후 1900년에도 단청공사가 있었으며 1945년에는 내부 수리공사가 있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흥천사실측조사보고서』(서울특별시,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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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이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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