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고적기』는 유식학자 태현이 『법화경』의 제 학설의 자취를 서술한 불교서이다. 태현은 통일신라 경덕왕대의 유가조로 꼽히는 유식학자로 경장, 율장, 논장의 다양한 분야에 대한 저술 52부를 남겼다. 법화, 정토, 화엄, 계율, 중관반야, 인명학 관련 저술에서 고적기의 형식으로 서술하였다. 『법화경』 관련 저술은 『법화경고적기』 4권 1부(일실)로 이러한 저술 경향으로 보아, 역대 법화 사상가들의 자취를 따라 다양한 법화 학설을 제시하고 자신의 법화 사상을 피력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태현은 경(經) · 율(律) · 론(論) 삼장(三藏)에 대한 저술을 남겼는데, 경에 관한 저술은 화엄(華嚴), 법화(法華), 반야(般若), 열반(涅槃), 정토(淨土), 미륵(彌勒), 방등에 이르는 대부분의 대승경에 대해 이른바 '고적기(古迹記)'의 형식으로 저술하였다. 율장은 대승 유일의 율전 『범망경』 저술 3부가 있고, 논장으로는 다양한 분야의 많은 논서가 보인다. 특히 다수의 인명론(因明論)에 대한 저술과 유가 · 유식론 저술이 있다. 그가 유식학자로 알려져 있는데 『해심밀경』에 대한 저술은 보이지 않지만 유식론 저술 외에 다수의 유가론을 남기고 있어서 유가조(瑜伽祖)로 꼽히는 유식학자로 평가받는다. 태현의 유식학(唯識學)은 원측법사(圓測法師)와 도증(道證)의 학통을 계승했다. 태현은 처음에는 화엄을 공부하고, 뒤에 법상 유식을 익혔다. 도증법사는 692년(효소왕 1) 신라로 귀국했는데, 태현 역시 그때 법상 유식을 수학했다. 오직 신라에서 수학하고 활동했으므로 중국에 알려지지 않아 『고승전(高僧傳)』에 전기가 실리지 않았다. 제자에 회암, 운권, 구암 등이 있다.
『법화경고적기』라는 제목을 볼 때, 이 책이 『법화경』의 교의를 해설한 것이라는 점은 짐작할 수 있지만 명확한 내용은 알 수 없다. 다만 고적기란 이름을 사용한 이유로 조원(照遠)의 『범망경고적기술적초(梵網經古迹記述迹抄)』에서는 “여러 학자들이 해석한 종적에 의지하여 그 요점을 취해 기록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여러 학설을 종합, 검토, 비판한 뒤에 최선이라 생각되는 학설을 추종하되, 자신의 견해를 고집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경에 대해서는 고적기로 주소(註疏)한 예에 따라 『법화경고적기』로 주소하였으므로 다양한 역대 법화 학설을 기술하였을 것으로 보이며, 당대의 법화 사상을 이해하는 주요한 저술이 되었을 것이다.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편집한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대정장 제55권)에 ‘대보(大寶) 기술’이란 내용이 보이지만 이것은 대현(大賢)을 잘못 기록한 것으로 본다. 태현은 많은 저술을 남겼는데, 그중에서 『약사본원경고적기(藥師本願經古迹記)』, 『범망경고적기(梵網經古迹記)』, 『범망경보살계본종요(梵網經菩薩戒本宗要)』, 『성유식론고적기(成唯識論古迹記)』, 『기신론내의약탐기(起信論內義略探記)』 등이 남아 있다. 신라시대에 원효를 제외하면 가장 많은 저술이 남아 전한다.
『법화경고적기』는 책의 이름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당대까지의 학설을 종합한 해설서임을 알 수 있다. 중국을 중심으로 전개되던 동아시아 불교계에서 법화 사상의 이해를 심화시키기 위한 노력과 겸허한 학문적 자세를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법화경』의 치밀한 교의를 소개하고 전개했을 것이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