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우( 김진규 분)는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부상을 당한 뒤 하반신 마비로 인해 성불구가 된다. 그는 소설가가 되어 자신의 부부 관계를 모티프로 한 소설을 신문에 연재하고 있다. 그러나 성불구자 남편과 헌신적인 아내라는 소설의 설정이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는 독자들의 비판을 받는다. 지연(문정숙 분)은 몸이 불편한 남편을 대신해서 가끔씩 원고를 전달하러 서울의 신문사에 다녀온다. 집을 떠나 도시의 이곳저곳을 방문하는 그 시간은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한 채 인내하며 살아가는 지연이 잠깐이나마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신문사에 갓 입사한 강 기자(김정철 분)는 이런 지연에게 호감을 가지고 접근한다. 어느 날 기차를 놓친 지연은 강 기자와 데이트를 하게 되고, 최동우는 우연히 이 광경을 본 여동생(전계현 분)에게서 이 사실을 전해 듣는다. 하지만 아내와 헤어질 용기가 없는 그는 직접적으로 내색하지 못한 채 소설 속 여주인공의 행동을 조금씩 변화시킨다. 부부 사이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상황 속에서 강 기자는 지연에게 남편과 헤어지고 자신과 다시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외면적으로는, 성불구이자 하반신 마비의 남편을 충실하게 보살피는 여성의 황폐하고 고독한 내면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다. 이 영화가 단순한 멜로드라마로 남지 않았던 것은 인물 내면의 욕망과 풍경을 특유의 공간 구성과 미장센으로 담아낸 이만희만의 연출 역량 때문이다. 여기에 주인공 부부의 관계가 영화 속 소설에서 재현되는 일종의 극중극(미장아빔)적 구조라는 점도 영화의 형식적 실험성을 더한다.
「귀로」는 오랫동안 한국영화사에서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였으나, 1960년대 한국영화의 모더니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재발견되었다. 2000년대 초 부산국제영화제와 한국영상자료원의 이만희 회고전 등을 거치면서 이만희 감독의 대표작 중 한 편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여주인공은 10년이 넘는 시간을 성불능의 남편을 성실하게 보좌하며 지내왔지만, 한계에 이르고 있다. 이때 자신에게 접근하는 매력적인 젊은 남성을 만나고, 그와 육체적 관계를 맺은 후, 그에 대한 스스로의 징벌로 음독자살한다.
한계적인 상황과 그 상황을 돌파하는 인물의 선택,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감수하는 자기충족적 윤리는 그 인물이 여성이건 남성이건, 장르가 전쟁영화건 범죄영화건, 멜로드라마건 이만희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형적인 이만희적 여주인공의 내면과 풍경은 예컨대 인천의 답답한 부르주아적 이층집과 탁 트인 서울이라는 도시 공간이라는 대비를 통해 탁월하게 외화되었다.
플롯의 전개 이전에 인물의 심리와 공간에 대한 묘사에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 이만희식 모더니즘의 진가를 보여 주는 대표작이다. 서울역을 중심으로 한 영화 속 서울의 풍경이 돋보인다. 「만추」가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만희식 모던 멜로드라마의 진경을 보여주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