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옥 ()

영화
인물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으로, 1955년 「미망인」을 연출한 인물.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여성
출생 연도
1923년 2월 24일
사망 연도
2017년 4월 8일
출생지
경상북도 경산
주요 작품
미망인
주요 경력
영화감독 영화잡지발행인 기자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박남옥은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으로, 1955년 「미망인」을 연출한 인물이다. 1960년 창간된 영화잡지 『씨네마팬』의 발행인 겸 주간이기도 하였다. 박남옥은 오랜 기간 한국영화사에서 잊힌 이름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말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미망인」을 공개하고 여성영화인모임이 만들어지는 등 여성영화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최초의 여성 감독으로서 위치를 확고히 하게 되었다.

정의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으로, 1955년 「미망인」을 연출한 인물.
가계 및 인적 사항

박남옥(朴南玉)은 1923년 2월 24일 경상북도 경산군 하양면(지금의 경산시 하양읍)에서 포목상을 하던 아버지 박태섭과 어머니 이두리 사이에서 10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2017년 4월 8일 사망하였다. 1930년대 말 경북여자고등학교 재학 중 투포환 선수로 활동하며 23년간 전국체전에서 우승하였다. 이화여자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44년 중퇴하고 지인의 소개로 『대구일일신문』(지금의 『 대구일보』) 기자로 입사하였다. 1953년 5월에 극작가 이보라와 혼인하였으나, 34년간의 짧은 결혼 생활 후 이혼하였다.

주요 활동

박남옥은 어렸을 때부터 영화와 예술을 좋아하였고, 특히 영화배우 김신재의 팬으로, 여러 차례 팬레터를 보내기도 하였다고 한다. 1946년 「 자유만세」(최인규) 제작 당시에 촬영소를 오가며 영화계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새로운 맹서」( 신경균, 1947)의 기록을 맡는 등, 극영화와 뉴스영화의 제작에 관여하였다. 이때 본격적인 미술이나 영화 공부를 위해 몇 차례 일본에 밀항을 시도하기도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국방부 촬영대에서 전쟁 뉴스의 제작에 참가하였고,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영화 연극인들과의 교분을 이어 갔다.

한국전쟁이 끝나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는 언니에게 제작비를 후원받아 1954년에 영화 「 미망인」을 제작 및 연출하면서 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미망인」의 제작사명이 ‘자매영화사’인 것은 그 때문이다. 갓 태어난 아이를 등에 업고 스태프의 식사까지 책임지며 제작과 연출까지 도맡아야 했던 고난의 과정이었다. 이 영화 속 나애심의 목소리는 박남옥에 이어 한국 2호 여성 감독으로 기록된 홍은원이 담당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전쟁에 남편을 잃고, 젊은 남자와 사랑에 빠진 미망인 ‘신’(이민자 분)이 딸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자신을 떠나려는 남성에게 칼을 빼 드는 영화의 내용은 지금에 와서도 놀랍다. 1955년 1월 녹음할 때는 “연초부터 16㎜에다 여자 작품을 녹음할 수 없다.”라고 녹음실 스태프가 작업을 꺼렸다는 일화도 있다. 이 영화는 1955년 4월 2일 중앙극장에서 개봉하였다. 서울에서의 개봉 이후 박남옥은 영화의 필름을 가지고 다니며 전국에서 직접 흥행하였다.

1959년 말에서 1960년에 동아출판사에서 일하면서 『씨네마 팬』이라는 영화 잡지를 발간하고, 1960년 도쿄에서 개최된 아시아영화제를 참관하였다. 한국영상자료원에 보존된 『씨네마 팬』 1960년 3월호 및 5월호의 판권지에는 사장은 강인순, 주간 겸 발행인으로 박남옥이 표기되어 있다(8월호에는 발행인). 1959년 12월 3일에 허가를 받았고, 3월호가 통권 3호인 것으로 보아 1960년 1월호가 창간호로 추정된다. 『씨네마 팬』은 1960년 10월호부터 『씨네팬』으로 제명을 바꾸었는데, 이때 강인순이 발행 편집 겸 인쇄인으로 이름을 올렸고, 박남옥은 제작진에서 빠져 있다. 이로 보아 박남옥은 창간호부터 8월호(혹은 9월호)까지 이 잡지를 운영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형부가 운영하던 동아출판사에서 재직하던 박남옥은 1980년에 유학 간 딸과 함께 살기 위해 미국으로 이민하였다.

평가 및 의의

오랜 기간 한국영화사에서 잊혔던 박남옥이 재발굴된 것은 1997년 제1회 서울여성영화제에서 「미망인」이 상영되면서부터였다. 한국영상자료원에 보존된 판본은 결말부 영상과 일부 사운드가 유실된 채였지만, 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의 영화가 40년이 지나 공개된다는 의미가 컸다. 이와 함께 한국영화사 속 여성 영화인들의 활동상이 새롭게 조명되었다.

당시 이 작업을 주도한 여성 영화인들은 사단법인 여성영화인모임을 조직하였고, 『여성영화인사전』과 다큐멘터리 영화 「아름다운 생존- 여성 영화인이 말하는 영화」(임순례, 2001)를 공개하였다. 박남옥은 자서전을 통해 자신이 하루라도 더 살고 싶은 이유가 “우리나라 여성 영화인들이 좋은 작품을 만들고 세계로 진출하는 것을 보고 싶어서”라고 밝히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미망인」(박남옥, 1955)

단행본

박남옥, 『박남옥 한국 첫 여성 영화감독』(마음산책, 2017)
조준형, 「1950년대 전후의 풍경」(DVD 박스 세트 소책자, 한국영상자료원, 『전후의 풍경』, 2011)
주진숙·장미희·변재란, 『여성영화인사전』(소도, 2001)

인터넷 자료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영화인][구술로 만나는 영화인] 박남옥- 감독(https://www.kmdb.or.kr/story/76/1618)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테마연재] 김신재를 동경하던 '영화소녀' 박남옥(https://www.kmdb.or.kr/story/8/2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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