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문오(신성일 분)는 어느 날 한 바에서 젊은 여인 경아(안인숙 분)를 만난다. 이후 문오는 술집에서 일하고 있는 경아를 다시 만나 친해진다. 과거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경아는 첫사랑(하용수 분)에게 버림받은 아픔을 이겨내고 전처와 사별한 부유한 중년 남자 이만준(윤일봉 분)과 결혼한 과거가 있다. 남편 만준은 전처에 대한 집착과 의심으로 그녀를 자살로 몰고 간 전력이 있다. 그러한 남편에게 낙태한 과거가 밝혀지고, 경아는 이만준과 헤어지게 된다.
이후 경아는 폭력적인 애인 동혁(백일섭 분)으로 인해 호스티스로 전락한다. 경아는 문오와 만난 후 그와 동거를 시작하고, 나름대로 행복한 삶을 보낸다. 그러나 동혁이 경아를 찾아오고, 동혁의 협박에 불안에 빠진 경아는 문오를 떠난다.
이후 경아가 심한 알코올 중독과 자학에 빠져 지내자 동혁마저 경아의 곁을 떠나고, 문오는 경아를 찾는다. 경아의 집에서 새벽이 되도록 잠든 경아를 지켜보던 문오는 돈을 머리맡에 놓아두고 피폐해진 경아를 남겨둔 채 방을 나온다. 술과 남자를 전전하던 경아는 눈 내리는 어느 날, 산속에서 수면제를 먹고 눈밭에서 잠이 든다. 문오는 죽은 경아의 재를 강에 뿌리며 경아를 떠나보낸다.
한국영화사상 가장 성공적이고 놀라운 데뷔작 가운데 하나다. 「바보들의 행진」(하길종, 1975)과 함께 1970년대의 독보적인 대표작으로, 산업적으로나 창조적으로 급격히 쇠퇴하고 있던 1970년대 한국영화계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킨 작품이기도 하다. 2014년 한국영상자료원이 선정하여 발표한 한국영화 100선에서 6위에 오르기도 하였다. 경아가 겪는 네 남자들의 이야기, 그녀에게 가해지는 남성들의 직간접적 폭력이 이 영화의 중심 서사가 된다.
이 서사는 시간순으로 이어지지 않고 문오와의 만남에서 출발하여 간헐적 플래시백으로 경아의 과거를 드러내는 방식을 취한다. 이와 같은 비연대기적 플롯은 에코 효과를 입힌 사운드와 발랄하고 감각적인 몽타주 쇼트 등과 함께 당대 영화계에서는 매우 혁신적인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최인호는 이 소설을 기획 당시부터 ‘도시가 죽이는 여자의 이야기’로 규정하였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도시는 남성적인 문화, 남성적인 폭력성의 은유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 영화는 당대 젊은층이 자주 드나들던 음악 감상실, 비어홀, 화려한 단독주택과 새로 지어진 아파트, 화려한 도시의 거리 등 말 그대로 도시의 활력을 함께 전달하기도 한다. 여기에 더해 당대 청년 문화의 주역이었던 강근식과 이장희의 음악은 젊은 관객의 인기를 끄는 요인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