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진고성 ()

고대사
유적
북한 황해남도 옹진군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포곡식 토성혼축 성곽. 산성. 북한문화재.
이칭
이칭
옹천성, 화산산성(花山山城), 본영읍성(本營邑城), 본영토성(本營土城)
정의
북한 황해남도 옹진군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포곡식 토성혼축 성곽. 산성. 북한문화재.
개설

옹진고성은 평지성과 산성이 결합된 평산성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중간에 성벽이 있어 내성과 외성으로 구분되어 있다. 옹천성(옹천홀)이라고도 불리는 데, 성이 독을 눕혀 놓은 모양 같고 성밖은 급경사로 되어 있는 성의 특징에 따라서 옹천[독벼루]이라고 하였다. 옹진고성은 해안방어의 요새로서만이 아니라 바다를 통한 해상군사활동을 벌이기 유리한 자연지리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

역사적 변천

옹진고성은 황해남도 옹진군 옹진읍에서 약 10㎞ 떨어진 본영리에 있다. 본영리는 조선시대에 황해도 수군의 본영이 있었던 데서 유래된 이름이며, 당시에는 세 면(북쪽, 서쪽, 남쪽)이 바다와 강으로 막혀 있어 하나의 작은 반도로 되어 있었다.

성의 축조 방식과 성안에서 나온 기와무늬 등으로 보아 고구려 시기에 축조된 성으로 볼 수 있다. 3세기 말~4세기 초엽에 고구려가 황해도 지역을 차지한 뒤 나라 남쪽에 쌓은 7성의 하나로 추정되고 있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평지성이었던 외성의 북쪽에 옹진고읍성을 쌓았고, 조선시대에는 외성의 남부에 옹진읍성을 쌓았으며, 산성과 읍성을 별개로 인식하기도 하였다.

내용

옹진고성은 멸악산 줄기의 하나인 불타산 줄기 남쪽 끝에 있는 광대산의 여러 봉우리와 그 사이에 있는 비교적 넓은 골짜기를 포괄하고 있으며 서남쪽의 일부에는 평지까지 성벽이 이어지는 포곡식 토석혼축 산성이다. 성은 중간에 성벽을 쌓아 외성인 평지성[본영읍성]과 내성인 산성[본영토성]으로 구분하고 있다.

내성 안은 약간의 경사지대로 여러 군데 집터들이 보이며 기와류들도 있다. 외성 안은 비교적 평탄한 지대로 두 개의 성터와 함께 얼음창고를 비롯한 유적들과 옛날 기와류, 성돌, 벽돌, 문확돌 등이 널려 있다. 성벽은 진흙과 막돌로 쌓은 곳도 있고 다듬은 돌로 쌓은 곳도 있다. 성돌은 이 지방에서 보기 드문 화강석을 4각추형으로 가공한 것이 많다. 성돌의 규격은 각기 다른데 대체로 맨 밑에 쌓은 성돌들은 장방형이다.

성문터는 리소재지에서 성 안을 통하여 구곡리로 가는 소로길과 수척동에서 옹진-태탄 사이 도로로 연결되는 소로길에 각각 1개씩 남아 있으며 조선시대 읍성부분에 남문터, 동문터, 서문터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문루와 함께 옹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성돌들이 무너져 그 구체적 규모는 알기 어렵다. 옹진-태탄 간 도로와 연결되어 있는 내성의 서문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데, 옹성구조로 되어 있다.

성 안에는 수원이 풍부하며 지금도 성 안의 가운데로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다. 현지 조사에 의하면 현재 고읍성터 부근에 우물이 4개, 읍성터의 남문 부근에 우물이 1개, 못이 1개 있다. 장대는 성의 서북쪽 제일 높은 봉우리(140m)와 학교 뒷산봉우리, 금산봉우리 세 곳에 있었다. 또한 성 안에는 내성 부근에 큰 집터를 비롯하여 여러 개의 건물터들이 있으며, 유물로는 기와, 벽돌, 문확돌 등이 있다. 기와는 붉은색, 회색의 암기와 조각과 수막새다. 벽돌은 검은 회색인데 겉면에는 아무런 무늬도 없다. 크기는 20×22×6㎝이다. 문확돌은 성의 동쪽벽 부근에서 알려졌는데 크기는 30×41×22㎝ 정도이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황해도 지역 고구려 산성』(동북아역사재단, 2015)
「황해도 일대의 고구려 관방체계와 남부전선의 변화」(신광철, 『선사와 고대』 35, 2011)
「고구려의 성곽」(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조선고고학전서』 27, 진인진, 2009)
「4세기말~5세기초 고구려의 국남7성과 국동6성에 대하여」(최창빈, 『력사과학』 1990-3, 1990)
「옹진고성(고구려의 옹천성)에 대하여」(최창빈, 『력사과학』 1986-2, 1986)
국가지식포털 북한지역정보넷(www.cybernk.net)
집필자
정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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