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신(曺伸)
조신은 김종직, 김안국(金安國), 남효온(南孝溫), 정여창(鄭汝昌), 박상(朴祥), 이행(李荇), 권민수(權敏手), 이항(李恒), 홍언필(洪彦弼) 등 당대의 학자들과 폭넓게 교류하였다. 비록 서얼 출신이지만, 빼어난 문장과 탁월한 외국어 실력으로 중국 사신이 올 때마다 외교 문서 전문가로 활동하였다. 이에 성종은 여러 차례 조신을 불러 시를 짓게 하고 학문을 논하면서 상을 주었다. 1479년(성종 10)에 내시 교관(內侍敎官)이 되었고, 같은 해에 통신사 군관(通信使軍官)에 선발되어 통신사행의 역관으로 참여하였다. 당시 통신사행은 정사 이형원(李亨元)·부사 이계동(李季仝)·서장관 김흔(金訢) 등이 파견되었는데, 이 사행은 일본 국내의 병란(兵亂)과 정사 이형원의 사망으로 결국 교토[京都]까지 가지 못하고 쓰시마[對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