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광찬(尹光纘)
1748년에는 충청도암행어사에 임명되어 민정을 시찰하였다. 세자시강원문학, 사헌부장령, 사간원헌납·사간, 홍문관교리 등의 요직을 역임하고, 1751년에는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으로 북경에 다녀왔다. 그 뒤 홍문관수찬, 시강원익선, 겸사서, 함경도북평사, 홍무관교리, 시강원보덕 등을 두로 역임하고, 당상관인 승지로 발탁되었다. 1753년(영조 29) 시강원보덕 등을 두루 역임하고, 당상관인 승지로 발탁되었다. 신임옥사 때 목호룡(睦虎龍)의 고변과 관련하여 증직을 받은 외조 이익주(李翊周)의 벼슬을 호적에 기록한 일이 발각되어, 해남현으로 유배되었다가 뒤에 거제도로 이배되었다. 1758년 석방되었고, 1765년(영조 41) 왕이 서용을 명령하였으나 신하들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하였다.